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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기행

백두대간 인문기행

천상의 계곡에 핀 산솜다리꽃(에델바이스) 신종석

작성일 : 2025.03.11 12:00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천상의 계곡에 핀 산솜다리꽃(에델바이스)

굽이쳐 흰 띠 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던 계곡의 여운을

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저 멀리 능선 위에 철쭉꽃 필 때에

너와 나 다정하게 손잡고 걷든 길

내 어이 잊으리오 꿈 같은 산행을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이정훈-

대한민국에는 애국가가 있고, 설악산에는 설악가가 있다. 원래는 설악 병으로 뼈를 설악에 묻은 사람을 추모하고 기리는 노랜데, 설악 병에 걸린 사람들이 향수를 달래며 흥얼거리다 보니 설악 병에 걸린 사람들의 애창곡이 되어버렸다.

성장기의 청년들은 누구나 사춘기를 거치면서 어른이 되고, 사춘기 증후군은 아름다운 성장통으로 기억된다.

설악에 와 본 산 사람이면 누구나 격는 설악 병. 다수는 성장통으로 넘어가지만, 여기 설악에 뼈를 묻은 사람이 있어 악우들의 넋을 기리는 뜻에서 고인의 이름을 다시 불러 본다.

설악에 악우들이 뼈를 묻은 곳을 모두들 죽음의 계곡이 아니라고 부르는데, 필자는 천상의 계곡이라 부른다. 천상의 계곡은 대청봉 북쪽 능선 사이에 계곡으로, 양폭대피소에서 소청봉으로 오르는 무너미고개 방향으로 돌지 않고 대청봉까지 건폭골을 직선으로 오르는 길이다.

설악가를 지은 이정훈의 회고에 의하면, 달빛 고요한 천불동을 홀로 걷다가 한국산악회 10 동지가 죽음을 맞은 천상의 계곡을 바라보는 순간 이상한 격정이 끓어올랐고, 달빛에 반사되는 선능을 바라보는 순간 적흥적인 감흥으로 흥얼대다 보니 노래가 만들어졌다. 그때의 감흥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와 흰띠 두른 듯한 달빛 아래 선릉을 떠 올리며 기타로 대강 선율을 그려본 후 피아노로 음을 확인하며 음을 완성했다고 회고했다.

 

韓国山岳会한국산악회 海外遠征訓鍊해외원정훈련팀 10雪嶽山설악산서 눈사태로 遭難조난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해외 등반 훈련을 하고 있던 한국산악회 훈련대장 이희성(43)씨를 비롯한 대원 10명이 실종, 18일 새벽 2시 현재 생사를 모르고 있다. 이들은 지난 13일 오전 10시부터 14일 정오 사이 베이스캠프가 있던 이 계곡을 덮은 거대한 눈사태에 묻힌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텐트와 식량, 장비가 있던 이 베이스 캠프는 눈사태에 완전히 덮여 흔적이 없었으며 언 폭포에는 그들이 훈련했던 것으로 보이는 로프만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이들은 70년도의 해외 원정 등반을 앞두고 지난 6일부터 설악산에서 훈련중이었다.

-1969218, 산악인의 조난사건 조선일보 1-

 

이 사건은 한국산악인 사이에서 통칭 '10동지(열 동지) 사건'으로도 불린다.

히말라야 원정을 위해 당시 현역 육군 중령이자 등반가인 이희성(1926 ~1969)이 이끄는 스키 등반 훈련에 참가한 한국산악회 소속 등반대원 18명 가운데 대청봉 일대에서 훈련하던 8명을 제외하고, 건폭골에서 훈련 중이던 10명 전원이 1969214일경 사망한 사고이다. 이들은 주간훈련을 마치고 야영하던 도중 텐트를 덮친 눈사태로 모두 숨졌다. 연일 계속되는 폭설로 구조가 어려워 시신은 보름 뒤에 수습되었다.

우리나라 등반사상 최대의 조난사고였으며, 이 사건 이후 외설악적십자구조대가 창설됐고 희운각 대피소가 문을 열었다.

천상에서 한 송이 산솜다리(에델바이스)가 되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희성 김동기 남궁기 박은명 박명수 변명수 김종철 임경식

이만수 오준보

 

온통 외롭고 버려진

어떤 절벽에

푸른 하늘 아래 고상하게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네.

난 충동을 이기지 못해

그 꽃을 꺾었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사랑스러운 아가씨에게 그 꽃을 선물했다네

그 꽃은 에델바이스 한 송이였다네.

작은 에델바이스 한 송이   -헤름스 닐의 에델바이스-

 

눈사태

겨울 산이 주는 최악의 재앙은 눈사태다. 우리나라 눈사태는 대부분 한라산이나 설악산에서 발생한다. 설악산의 발생지역은 토왕골, 좌골, 죽음의 계곡, 오련폭, 양폭, 공룡능선 등이다.

사면에 쌓인 눈이 받는 중력이 밑면의 마찰저항보다 커질 경우, 갑자기 대량으로 미끄러져 내리는 현상이다. 외국 페루의 경우 후아스카란(Huascaran) 산에서 발생한 눈사태는 마을을 덮쳐 7분 만에 4천 명이 매몰되어 죽은 일도 있었다.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발생한 눈사태의 중력은 8톤 트럭이 시속 80Km로 받는 충격이라 하니 뼈도 추리기 어렵다.

설악산 비선대에서 정상쪽으로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뚫고 3시간여를 올랐다. 8부능선 지점인 해발 1,275m 속칭 공룡능선 좌골계곡의 눈 쌓인 바위 사이를 헤집자, 조그마한 추모 동판이 꽁꽁 언 채 모습을 드러냈고, 그 옆에 하얀 털이 소복한 산솜다리꽃이 세 송이가 피었다.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을 꿈꾸던 세 산 사나이가 눈사태로 이곳에 그 젊음을 묻다. 동지들의 원혼을 달래려 여기 비문을 세우다.’

한국산악회 10 동지가 설악에 묻힌 7년 후, 이번엔 대한산악연맹 소속 설악 병에 걸려 설악의 품에 잠들고 천상에서 한 송이 산솜다리(에델바이스)가 된 또 다른 세 사나이가 여기 있다.

최수남 송준송 전재운

한국일보사와 대한산악연맹이 공동 주관했던 ‘77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 30명은 출발을 앞두고 마무리 훈련을 하던 76216일 설악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6명이 한 조를 이뤄 훈련을 하던 최수남 대장조는 전날 1m 가량 폭설이 내린 터라 일렬로 늘어서서 하산을 시작했다. 산위에서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눈덩이가 일행을 덮쳐 6명의 대원은 100m 아래쪽으로 휩쓸려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졌고 유일하게 의식이 있던 박훈규가 이기용과 김호진를 구조했다. 나머지 3명은 다음날 차례차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망자 부산 산사나이 송준송은 갓 결혼한 새신랑이었고, 필자가 존경하는 선배이기도 했다, 당시 필자는 군 복무 중이라 조문도 하지 못했다.

전재운는 만기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현역 군인이고, 젊은 청춘의 죽음은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77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77915일 낮 1250분 기어이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 한국인 최초로 정상을 밟았던 고상돈은, 설악산에서 숨진 악우 3명의 영정을 태극기와 함께 에베레스트에 묻었다.

 

산이 좋아 산에서 진 꽃아

산을 닮아 아무 말 없네

가슴에 타는 불은 오늘도 더 높은 곳에

악우여 듣는가 그때 따르는 발걸음을 -송준행 추모비-

 

송준행은 부산청봉산악회 소속으로 1972년 마나슬루에서 눈사태로 숨겼다. 필자에게 금정산 나비바위와 쌍계봉 무명암에서 암벽등반과 알프니즘을 가르쳐준 선배다.

필자가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며 산을 찾은 지도 어언 50, 산은 결코 두발로 오르지 않고 겸손과 성찰로 올라야 한다는 것과 흔적도 없이 아니 온 듯 다녀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는 설악에 악우들이 뼈를 묻은 곳을 죽음의 계곡이 아니라 천상의 계곡이라 부른다. 천상에서 한 송이 산솜다리(에델바이스)로 다시 피어나라는 뜻이다.

 

조시

쓸어 안으나 차가운 몸들 내 체온을 가르고 싶다

숨소리가 왜 없나 내 호흡을 불어넣었으면

그대들 흔들어 보다 못해 눈 쌓인 산만 바라본다

아까운 그대들이라 거치른 세상에 오래 안 두고

깨끗한 그대들이라 먼지 속에 차마 못묻어

하늘이 설악명산을 골라 흰 눈 속에 감추시든가.

한밤에 그대들을 그려 산 아래 홀로 섰노라니

천봉만학이 달도 희고 눈도 흰데 어데서 귀익은 목소리 들리는 것만 같다.

못다 푼 그 의욕, 다 못 태운 그 정열,

젊은 동지들 야호소리 들리거든 그 속에 같이 섞여서 마저 풀고 태우게

눈 속에 꿈을 묻은 채 깨지 못한 원혼이라

산에 들에 눈이 내리면 그 모습 떠올라 어이할꼬

이산에 눈이 쌓일제 비들고 눈 쓸어 돌아오마

우리는 그대들 통곡으로 목이 메이고

그대들은 이산에서 산 꽃처럼 산새처럼

즐거이 웃으며 노래하며 어깨 겪고 노니리

어제는 우리 동지 오늘은 설악 천사들

수많은 산악인들이 산 뒤에 밟을 적에

발 앞을 이끌어 주는 수호신이 되소서 -196935일 노산 이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