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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기행

백두대간 인문기행

설악산 이야기( 신종석)

작성일 : 2025.03.11 11:52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설악산 이야기

 

나는 산이 좋더라

파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하는

나는 산이 좋더라

멀리 동해가 보이는

,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산에는 물, 나무, . . .

아무런 오해도

법률도 없어

네 발로 뛸 수도 있는

원상 그대로의 자유가 있다.

고래 고래 고함을 쳤다.

나는 고래 고래 고함을 치러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른다.

 

산에는

파아란 하늘과 사이에

아무런 장애도 없고

멀리 동해가 바라 뵈는 곳

산과 하늘이 융합하는 틈에 끼어 서면

무한대처럼 가을 하늘처럼

마구 부풀어 질 수도 있는 것을 . . .

정말 160cm라는 건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을 . . .

 

도토리를 까먹으며

설악산 오솔길을 다리쉼 하느라면

내게 한껏 남는 건

머루 다래를 실컷 먹고 싶은

소박한 욕망일 수도 있는 것을 . . .

자유를 꼭 깨물고

차라리 잠 들어 버리고 싶은가

 

깨어진 기왓장처럼

오세암 전설이 흩어진 곳에

금방 어둠이 내리면

종이 뭉치로 문구멍을 틀어 막은

조그만 움막에는

뜬 숯이 뻐얼건 탄환통을 둘러 앉아

갈가지가 멧돼지를 쫓아 간다는

포수의 이야기가 익어간다

이런 밤엔

칡 감자라도 구어 먹었으면 더욱 좋을 것을

 

백담사 내려가는 길에 해골이 있다고 했다

해골을 줏어다가 술잔을 만들자고 했다

해골에 술을 부어 마시던 빠이론이

한 개의 해골이 되어버린 것 처럼

철학을 부어서 마시자고 했다

· · · · . . . .

 

나는 산이 좋더라

영원한 휴식처럼 말이 없는

나는 산이 좋더라

꿈을 꾸는 듯

멀리 동해가 보이는

, 설악, 설악산이 나는 좋드라      -진교준-

 

권두시, 설악산 이야기는 1958년 서울고 2년 재학 중인 진교준秦敎俊(서울고 12)무전여행으로 설악산을 처음 가보고 단번에 쓴 시다. 이 설악산 이야기는 시인 조병화가 뽑은 제1회 경희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설악을 다녀온 후 설악 병을 심하게 앓던 진교준은 성인이 되어 버스 기사로 일하다, 20031117일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세상에! 이른 병에 걸린 사람이 여럿 있었단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다 아는 매월당 김시습· 만해 한용운· 육당 최남선·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 설악산 이야기의 진교준· 부산 산 사나이 송준송 등 여러 사람이 있었다. 모두 백두대간 설악 병을 심하게 앓은 사람들이다. 필자도 젊은 시절 한 때 설악 병을 앓은 적이 있어 그 증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증상은 하나 같이 첫눈에 설악에 빠져들었고, 언젠가 전생 혹은 전전생에 뼈를 묻고 살았던 고향집 뒷산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모두 회고했다. 이 산, 저 산 다 올라 보아도 백산이 무효. 오직 설악에 다시 와야만 낫는 병이다. 모두 들 안 오고는 배길 수 없었다고 실토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마구 뛰고 어머님 품속에 안기는 듯한 산, 들머리에 들어서면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 같이 절로 날 듯 가벼워지는 산. 다른 산으로는 대체 불가한 산.

백두대간 산신령 왈, “상사병과 유사한 증후군 설악 병이니라!” 라고 진단을 내렸다.

 

백두대간 한계령에서 진부령까지 자리 잡은 설악산(雪嶽山 1,708m)은 남한 땅에서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으로 아름답기로 금강산 못지않다.

예로부터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란 뜻에서 설산 혹은 설봉산으로 불렸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추석 무렵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다음 해 여름이 되어야 녹는다고 하여 설악이라 이름 붙였다.

대청봉을 중심으로 북서쪽의 공룡능선 마등령 미시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서쪽의 귀때기청· 대승령으로 이어지는 서북주능, 북동쪽의 화채봉· 칠성봉으로 이어지는 화채능선 등 3개의 주능선으로 크게 지형 구분한다. 이들 능선을 경계로 서쪽은 내설악, 동쪽은 외설악, 남쪽은 남설악으로 불린다.

필자뿐만 아니고 설악 병에 걸림 사람들 이구동성으로 희운각대피소 무너미고개에 올라 바라본 신선대· 천불동 계곡의 암봉, 양폭 만경대에 올라 본 용아· 공룡· 천화대 리치. 천화대 리치에서 뒤돌아 본 설악. 수렴동 · 가야동 · 구곡담계곡. 12선녀탕의 88. 하늘에서 쏟아지는 대승폭· 소승폭. 한 여름 토왕성 중단에서 알탕을 해보지 않거나, 캉캉 얼은 토왕성 상단을 후론트 포인팅(Front pointing)으로 올라서 봐야 진정한 설악 병을 앓을 수 있다고 실토했다.

설악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로 김오세金五歲라고 불렸던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이다. 다섯 살 때 세종에게 비단을 하사받아 붙여진 별명이다.

조선 후기 학자 이건창의 명미당집明美堂集에는 설악산 오세암 장경비각雪嶽山五歲菴藏經閣記, “설악산에 오세암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김선생의 옛 거주지다. 세상에 전하기를 선생은 신동으로 임금께 나아가서 뵙고 비단을 내려 받아서 이런 이름이 생겼다. 후에 장대해졌지만, 사람들이 오히려 김오세라고 불렀다.”

매월당 김시습은 세종 17년 한양에서 충순위의 벼슬을 하던 가난한 문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 부터 유난히 총명하여 천재로 알려졌다. 세 살 때부터 천자문을 줄줄 읽었을 뿐 아니라 한시도 짓기 시작했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지자, 당시의 재상인 허조가 직접 김시습의 집을 찾아가 시험을 해 보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너는 시를 잘 짓는다고 하던데, 나를 위해 늙을 자를 넣어 시 한 수 지어 보아라" 허조의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시습은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한시를 지었다.

老木開花心不老노목개화심불로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

재상 허재는 크게 감탄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매월당 김시습은 설악산 뿐만 아니라 금강산· 백두산· 묘향산· 오대산· 지리산· 금오산 등 전국의 산하 다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 매월당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이 설악 오세암이기 때문에 그도 설악 병에 걸렸고 설악의 진실이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매월당은 도가에도 조예가 깊어 설악산에선 신선과 같은 행적을 보이기도 했다. 깊은 밤에 골짜기로 내려가선 도인들과 시를 짓기도 했다.

 

10년 동안 떠돌이로 떠돌아 보니

이내 몸은 밭둑가의 쑥대로구나.

세상 살아가는 길 험하고 위태하니

말없이 꽃떨기 냄새나 맡으리라.    -매월당 김시습-

혹자는, 옛날 매월대사가 어린 자기 조카를 데리고 설악의 중턱 용아장성과 공룡능선 깊은 곳에 매월암梅月庵을 짓고 수도에 정진했다. 그러던 늦은 겨울, 대사는 암자의 식량이 떨어지자 4살 된 조카에게,

'아랫마을 양양 큰 절에 식량을 구하러 가서 3일간 있다가 올 예정이니 혼자 잘 기다려라.'하고 떠났다.

대사는 조카가 먹을 3일분 식량을 남겨 놓고 암자를 떠났으나, 양양에서 식량을 구해 돌아올 무렵 폭설이 며칠 내려 다섯 자나 넘게 쌓여 겨울이 다 지날 때까지 암자에 돌아가지 못했다. 대사는 해를 넘겨 이듬해 3월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암자로 돌아오게 되었다.

대사가 암자 가까이 이르자 신기하게도 암자에서 낭랑한 염불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기쁜 마음에 급히 달려가 보니 어린 조카가 불상 앞에 앉아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끊임없이 염불하고 있었다.

대사는 지난 겨울 암자를 떠나기 전에 조카에게,

'너의 어머니는 관세음보살이니라' 라고 일러 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대사는 다섯 살 난 동자가 견성득도한 것을 보고 암자의 이름을 오세암五歲庵이라 고쳐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