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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간 (신종석)
작성일 : 2025.03.11 11:46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산수간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절로 수水 절로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절로
그 중中에 절로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 송시열 청산도 절로절로 -
백두대간 오대산 두로봉(1,422m)에서 발원하여 한강기맥을 타고 양평군 양수리의 두물머리(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에서 합류하는 '우통수于筒水'는 북한강의 발원지라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는 물맛이 좋고 다른 물과 섞이지 않고 흐르기 때문에, 우통수의 물이 한강의 복판 줄기가 되어 흐른다고 해서 한중수漢中水 또는 강심수江心水라 불렸다.
백두대간 13 정맥에는 신기하리만큼 골짜기마다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영천靈泉이 많다. 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 물을 마시면 병이 낫고 장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산신도에는 산의 주인인 산신령이나 호랑이 산삼 약초 등이 그려져 있는데, 영천의 물을 마시고 불로장생하는 것을 보고 산짐승들이 먼저 따라 마셨고, 나중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마시기 시작했다.
생수 · 약수는 건강과 병을 다스린다는 치병의 기능을 띠고 있는 물을 말한다. 생수는 샘처럼 땅 밑에서 솟아나거나 개울물처럼 흘러내리는 물인데 사람의 오장 육부의 병을 다스리는 효능을 가진 물이다.
땅속에서 솟아나는 물에는 광물질이 용해되어 있어서 탄산이나 철분 등 함유성분에 따라 독특한 맛을 내며 위장병, 당뇨병 등의 병을 치료하는 데 효능이 있는 광천수 가 있다. 광천수는 약수에 포함된 함유물질에 따라 유황천, 탄산천, 탄닌천, 게르마늄천 등으로 나눈다. 함유성분에 따라 마셔 좋은 물이 있고, 목욕으로 병을 다스리기도 한다.
예로부터 한반도 백두대간 13정맥 전체에 90개소의 탄산 약수터가 전해지고 있다. 그중 남한지역에 50개소, 북한지역에 37개소가 알려져 있다. 남한지역의 경우 강원도 12개소, 경상북도 16개소, 충청도 3개소로 대부분 백두대간의 정기를 타고 밀집되어 있다.
한반도 중심 기운이 모이는 곳, 백두대간 오대산 일대에서 발원하여 한강기맥을 타고 우리나라 사람 반 이상이 마시는 생수의 원천을 한번 찾아보자.
약수가 발견되면 발견자의 이름을 넣어 널리 알리고, 수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권장했다.
세계적인 광천수로 인정된 초정광천수는 세종과 그의 아들 세조가 안질과 소갈증을 고쳤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세종대왕은 눈병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세종대왕이 60일간 머물면서 안질과 질병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 청주목조에 기록되어 있다.
“초정약수는 주의 동쪽 39리에 있는데 그 맛이 후추와 같으면서 차고,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 세종과 세조가 일찍이 여기에 행차한 바가 있다.
椒水在州東三十九里 其味如椒而冷 俗則己疾 我世宗世祖嘗幸于此”
세조는 약수로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속리산 입구의 정일품송의 전설과 39화에서 말한 상원사의 문수동자가 약수로 세조의 몸을 씻겨 피부병을 고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세조가 조카 단종을 죽인 자신의 죄를 참회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세조의 죄를 참회하는데 이처럼 종교와 풍습을 넘어 우리의 높은 문화 의식이 깃들여 있었던 것이다.
백두대간 소백산 부석사 오전약수는 조선시대 최고의 약수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周世鵬은, “이 약수는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약수터 바위에 주세붕이 친히 쓴 ‘人生不老 樂山樂水인생불로 요산요수’란 휘호가 뚜렷이 새겨져 있다.
2011년에 천연기념물 제531호로 지정된 백두대간 인제군 미산리의 개인약수는, 해발 천3백4백의 다섯 봉우리를 담은 소쿠리 모양의 아늑한 산세를 이루고 있는 방태산 아래 있다.
1891년(고종 28) 함경도 포수 지덕삼이 백두대간을 따라 호랑이를 쫓다, 상처를 입은 호랑이가 치료하는 것을 보고 약수를 발견했다. 물맛을 본 포수 지덕삼은 고종황제에게 약수를 진상하자, 고종은 당장 지덕삼에게 말 한 필과 백미 두 가마, 광목 백 필을 하사했다고 한다.
약수터 주변으로는 수령 3백 년이 넘는 가문비나무, 전나무, 피나무, 주목 등의 고목이 우거졌고, 희귀어종인 열목어가 서식하고 금강초롱꽃 · 금낭화 · 참꽃마리 등 많은 종류의 야생화가 자생하고 있다. 수목들이 먼저 땅에서 솟아오르는 약수란 것을 증명해 준다. 약수란 사람보다 동물이나 자연이 먼저 아는 법.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업혀 왔던 불치병 환자들이 움막을 치고 치병 후, 걸어 나갔다고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백두대간 한강기맥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홍천군 삼봉약수를 만난다. 가칠봉·응복산·사삼봉 세 봉우리에 둘러싸여 '삼봉'으로 불린다. 삼봉약수는 실론약수라고도 하는데 이를 발견한 사람은 단종의 외조부인 권대감이다. 권대감이 이 곳에 은거하며 젊은이들에게 실론實論 (realism)을 가르쳤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권대감은 늘 전나무, 주목, 분비나무 등 침엽수와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등 활엽수가 조화를 이룬 울창한 숲을 산책했는데, 하루는 날개가 부러진 학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학은 옹달샘에 들어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안개 속에서 물 튀기며 목욕했고, 부러진 날개를 며칠 동안 치료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며칠 후 그 학이 멀쩡하게 하늘을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권대감은 옹달샘을 떠 마셔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광천수의 약물이 나오는 약수터였던 것이다.
한강기맥 사명산(1,198m)아래 춘천의 추곡약수는 홍천에서 약방을 하는 사람의 아들 김원보가 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였다. 김원보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치병차 삼 년만 객지 물을 먹고 오라고 했다. 김원보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추곡약수 있는 자리에서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원보야, 고생이 많다. 지금 당장 일어나 그 자리를 파보거라!”하고 현몽했다.
잠에서 깨어난 김원보는 당장 땅을 파보니 뽀글뽀글 붉은 물이 솟아 나왔다. 김원보는 그 물을 먹고 고칠 수 없었던 위장병이 나아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느 약수터를 가나 어김없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마을에서 지내는 경우도 있으나 개별적으로 지내는 경우가 더 많다. 이때 약수터의 신령은 산신령 혹은 물의 신 용신龍神이다.
춘천의 추곡약수제는 매년 음력 3월 20일 오전 10시에 행한다. 약수터 주변에 살며 약수에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제물을 마련하고, 추곡사에 있는 스님이 산왕경 경전을 염불하면서 제사를 지낸다. 이때 제사를 받는 신령은 사명산 산신령이다.
백두대간 응복산(1,360m)에서 시작된 좁은 계곡 끝에는 미천골 불바라기 약수가 있다. 불바라기는 약수터 샘에 철분 성분이 많아 붉게 물들어서 불바라기라는 이름 붙였다.
미천골 들머리에는 신라시대 절터인 선종사찰 선림원禪林院터가 있다. 수행승이 많아 쌀 씻은 물이 계곡을 뿌옇게 흘러가 미천米川골 이란 지명이 유래했다. ‘뜸물 흘러간 골짜기’란 뜻이다.
백두대간 아홉마리의 용이 지나간 것처럼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하다는 구룡령( 1,048m)에서 양양으로 내려오는 고갯길 아래 자리잡은 갈천葛川이라는 마을은 칡뿌리에서 나왔다. 화전민이 주로 살았던 산골 마을인 갈천에는 춘궁기가 되면 칡뿌리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에 항상 칡가루가 흘러 갈천, 또는 ‘치래’라고도 불렸다. 칡은 우리 선조 황궁씨가 마고성을 나와 제일 먼저 먹었던 식품으로 산삼에 버금가는 효능이 있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