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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윤일현 칼럼 /국민 통합 방법 찾아야

작성일 : 2025.03.11 11:14

국민 통합 방법 찾아야

/윤일현

 

 

한평생 상아탑에서 책 읽고 글 쓰며 지낸 친구를 만났다. 대화 중 그가 자조적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요즘처럼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없다.” 우리 사회는 집단 사고와 행동이 지나치게 힘이 강해 양 진영의 장단점을 비판하며 개인 의사를 개진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스마트폰과 인터넷도 끊고 반문명적 칩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상반되는 쟁점을 두고 무조건 어느 한쪽에 동조하길 강요받는 상황에 자주 직면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 ‘내 편 아니면 적’, ‘대박 아니면 쪽박같은 이분법이 위세를 떨치는 사회에서는 사태 진전을 지켜보며 합리적 대안을 찾으려는 사람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생각은 언제나 옳다. 우리를 비난하고 비판하는 자들은 사탄이다. 설혹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두머리와 패거리의 이익을 지키는 것은 신성한 의무다라는 집단 최면에 걸리면 학식과 나이에 상관없이 특정 사고의 틀 안에 갇힌다. 합리적 성찰을 건너뛴 근거 없는 사명감은 독버섯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특정 정치 집단과 정치인을 무조건 지지하거나 배척하는 정치 팬덤은 일종의 폐쇄적 결사 항전 집단처럼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정치인은 손쉽게 열혈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 팬덤의 과격한 언행을 방관하거나 심지어 부추기기도 한다. 특정인을 광적으로 지지하는 팬덤은 상대를 기겁하게 하는 협박과 일사불란한 공격으로 반대 의견을 묵살하며 양식 있는 사람들을 침묵시킨다. 그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성찰 없이 특정인이나 집단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근거 없는 혐오증 같은 반사회적 악성 바이러스를 생산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중립성을 포기한 언론과 극단을 부추기는 유튜브 같은 매체는 맹목적으로 적개심을 확대재생산 하며 갈등과 대결을 부추긴다. 혐오와 조롱, 저주가 그들의 수익 창출 수단이기 때문이다. 형제자매 사이도 이념의 문제가 개입하면 서로 등을 돌린다. 우리는 지금 생각이 다르면 얼굴을 맞대고 사는 이웃에게도 악담을 퍼부으며 냉정하게 돌아서는 세상에 살고 있다.

 

레프 톨스토이는 차르의 군대에 동원된 평범한 러시아 농민들이 차르의 명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아버지이자 형제이기도 한 다른 농부들을 죽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의문과 사회 정의에 관한 회의 때문에 그는 화려한 도시 생활을 접고 시골로 은퇴했다. 거기서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정치활동을 하던 한 젊은 인도인의 편지를 받았다. 그는 청년에게 답장을 보낸 후에도 계속 인도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그는 인도 동인도회사의 인도 예속을 설명했다. “한 상업회사가 2억 명이 살고 있는 한 국가를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이성적인 사람에게 말해보십시오. 그러면 그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운동선수들도 아니고 그저 나약하고 평범한 3만 명의 사람들이, 쾌활하면서도 영리한, 자유를 사랑하는 2억 명의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수치는 영국인이 인도인을 노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도인들 스스로 노예가 되었음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 아닙니까?” 톨스토이와 편지를 주고받은 그 청년은 간디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소수의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을 당파적 이익과 이념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노예는 자신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고 결심하는 순간, 그의 족쇄를 끊을 수 있다고 간디는 말했다. ‘특정 팬덤에서 해방되기 범국민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상식과 이성, 합리적 사고에 근거해 현실을 인식하고 공격받을 두려움 없이 다양한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기꺼이 경청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오늘의 심리적 내전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탄핵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탄핵 결론이 났을 때의 국민 통합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의식 대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