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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등대이야기 연재> 2.하얀 탑과 두 개의 노을/조경호

작성일 : 2025.03.04 12:06 수정일 : 2025.03.04 12:19

2. 하얀 탑과 두 개의 노을

/조경호

 

등대원의 하루 업무는 바다에서 저녁노을을 맞이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아침노을을 바라보면서 일과를 마무리한다. 이 말은 등대의 중요성이 밤바다를 운항하는 선박의 지표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등대원들은 일정하게 정해진 근무시간이 있다. 24시간 등대 구내 숙소에서 대기하면서 8시간씩 교대 근무하고 있다.

기상 조건에 따라 24시간 근무하면서 꼬박 밤을 지새우는 날도 있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당직자를 세워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주· 야간 교대 근무를 한다. 주간에는 등대 시설과 장비를 점검 관리하고 축전지 충전을 위한 발동 발전기 운전, 등대 부근을 운항하는 선박의 동태 파악 기록, 기상관측(기상대 : 풍속, 풍향, 기온, 기압, 파고) 및 연안의 수온 측정(수산과학원 및 수로국)업무를 하며, 특히 인천지방항만청과 15차례 무선통신으로 업무 사항과 등대의 이상 유무를 보고하고 지시사항 등을 받으며, 관내 다른 등대와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야간에는 등명기의 전구와 회전 장치를 점검하고 등대불을 켜고 수시로 섬광 주기를 확인하고 인근 등대의 불빛을 감시하고 있다.

기상관측업무는 해상의 낙도에서 기상요원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등대에서 관측한 해양·기상 관측자료는 해상기상 예보와 어족자원 연구자료에 활용되고 있다.

등대는 선박에 항로표지 역할뿐이 아니라, 선박의 피신처를 제공하고 긴급 조난 구조역할도 하고 있다. 지금은 전파 통신시설(항로표지 AIS : Aida to Navigation Identification System 항로표지 자동식별장치)로 등대의 명칭과 위치를 선박에 자동으로 알려 준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는 등대와 선박 간에 국제 해상신호기를 이용하여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등탑 옆에는 큰 깃대봉이 있다. 깃대봉 한쪽에는 등대가 위치는 섬이 대한민국 영토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태극기를 계양하고 그리고 한쪽에는 등대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국제 해상신호기를 계양하여 부근을 운항하는 선박에 알려준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세계 10권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1950년대에는 전세계 200여 개국 중 195위였다. 우리나라의 발전 속도는 일본이나 독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들은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로 전투기, 순양함, 항공모함, 잠수함등의 군사 과학 기술과 경제적 자본에 여력이 있는 상태였다. 우리나라는 자동차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몰랐다. 맴 꼴찌에서 50년 만에 선진국이라는 그들과 어깨를 같이하게 되었다. 희망이 없는 나라에서 세계 20위 국가 정상들의 나라에 끼어 있다.

이러한 일은 우리들의 나이에 있던 사람들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그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나라를 일군 역군들 중에 우리의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최일선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조국을 잃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6·25전쟁 중에 가장 많은 목숨을 잃은 세대이며, 전쟁의 페허에서 선 일꾼 중 가장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국제 자유시장 체제이다. 무역으로 지금의 경제 대국을 이루었다. 그 경제의 최전선에 등대가 서 있고 등대원이 있다. 그 등대원들 중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늘 수만 톤이나 되는 무역선이 인천항을 드나드는 길목에서 나는 수신호로 그들에게 인천항의 수로를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1) 등대로의 첫 부임

 

소청도는 소공독각 부근 대청군도의 소도이며, 인천에서 거리가 223.6Km, 섬의 면적은 2.96, 섬의 최고 높이는 174m이다. 형태는 분바위가 있는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누운 누에 형상이다. 소청도 남서쪽 끝단에 등대가 설치되어 있다.

19524월에 소청도 등대에 부임하게 되었다. 소청도 등대는 동경 124° 44북위 37° 46에 위치하는 우리나라 최서북단에 위치하는 등대이다.

19081월 건립 점등되었으며 등탑은 원형 콘크리트조(10m), 등명기는 프리즘 렌즈 3등급 대형 중추 회전식, 등고 86m, 광달거리 23마일이며, 대 중국 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의 지표 역할을 하고 있다.

평균수면에서 76m 지점에 붉은 암벽을 평탄하게 하여 176평의 부지에 등탑을 건축하였으며, 등탑 좌측에는 등탑과 일체 되게 사무실과 동력실이 건축되고 등탑 우측에는 무신호사(공기 싸이렌) 및 등탑 주변은 방풍벽을(석축 높이 1m, 25cm) 쌓고 백색 석회 칠을 하였다. 또한 등탑 출입구 앞에 해시계(콘크리트조 팔각형)를 설치하고 우측에 해면 쪽에 깃대봉(철조)이 설치되어 있다.

 

등탑에서 20m 아래에는 암석으로 되어 있는 부지 220평을 마련하여 일본식 가옥 숙소 3(등대장 1, 직원 2세용 1, 3세대용 1)과 창고 및 욕실과 등대장 숙소 앞에 음용수 저수조(우수)를 설치되었다. 등대의 등탑, 무신호사, 사무실 및 석축과 관사 건물은 석회로 칠하여 주간에 육안으로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낮에는 하얀 등탑과 절별 위로 쌓은 흰 돌담장으로 등대를 알리는 항로표지 역할을 했다. 해무(바다 안개)만 끼면 일은 수월했다. 이 하얀색의 건물은 선박에서 육안으로 등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항해사는 등대를 보고 수로의 방향을 잡기도 하지만 선박이 해상에 위치하는 좌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무가 끼는 날은 종일 종을 치거나 무신호(공기압축기로 공기를 생산하여 나팔로 소리를 내는 음파표지)를 불어서 등대의 위치를 알려야 했다.

 

우리나라 서해에는 봄철에는 안개가 심하게 낀다. 1m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지금은 선박들이 레이다 등 전파 탐지기로 섬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지만(전파 탐지기도 방향을 잡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전파가 발사되어도 섬이나 암초의 윤곽조차 잡히지 않을 때 있다.) 1950년대 당시에는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으면 선박을 운항할 수가 없다.

밤에는 석유불로 어두움을 밝혀 등대의 위치를 알렸다. 등불을 켜는 점등의 시점은 일몰 직전이다. 그리고 소등은 일출 직후이다. 항로표지관리소(등대) 직원(등대원)들은 시간과 기상에 민감한 생활을 한다. 지금은 발동 발전기를 돌리거나 태양전지로 전기를 생산하여 축전지에 저장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1950년대 등대 시설은 열악했다.

 

 

19524월에 소청도 등대에 부임하고 보니 등대의 광원은 석유 백열등이며, 등명기는 3등 대형 프리즘 렌즈(4)을 수은조에 띄워 중추를 감아 회전(40초에 4섬광)을 시켰다. 등불은 석유를 연료로 하는 것이였으며, 백열이라는 것은 석유등의 불빛이 밝으면 태양 빛에 가깝다. 이러한 자연 빛을 말하는 것으로 불빛이 백색이라는 것이다. 수은조식이란 수은의 성질을 이용하여 무거운 렌즈를 쉽게 회전시키기 위해 렌즈를 등명기 아래에 설치한 수은통에 띄워 회전 장치와 연결하였다.

등대의 불빛은 석유등을 렌즈 안 초점 위치에 놓아 프리즘의 원리를 이용한 렌즈의 중앙렌즈로 빛을 발사하여 광달거리를 늘린다. 렌즈는 영국에서 생산되었으며, 렌즈는 황동 주물의 고정틀에 거치되었으며, 렌즈는 상당히 무거웠다.

회전 방식은 무거운 추를 등탑 안 중앙에 쇠밧줄로 감아놓고 태엽을 푸는 방식이다. 추의 밧줄로 푸는 태엽은 밤새 풀어지면서 기어를 돌려 등명기를 회전하는 것이다. 태엽은 하룻밤에 2회 감아 준다. 등명기의 렌즈는 4면으로 1면은 황동을 문을 설치하였다. 4면의 렌즈가 회전하는 것을 밤에 바다 멀리에서 보면 반짝거리는 별빛처럼 보인다. 소청도 등대는 40초에 1회전 하면서 20초를 격하여 20초간 4섬광 주기로 4면의 렌즈에서 불빛을 발사하며, 등대 불빛을 보고 소청도 등대라는 것을 선박들은 아는 것이다.

 

야간 근무자는 먼저 등탑 1층에서 등명기를 회전시키는 중추의 태엽을 감는다. 그리고 등명기 상부에 설치된 석유통에 석유를 보충하고 일몰 직전에 등탑 상부로 올라가 증발식 석유등에 불을 붙이고 시계 방향으로 40초에 1회전하면서 4면의 렌즈가 정확하게 회전하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맞지 않으면 태엽의 추를 다시 조정하여야 한다. 그럴때는 등대 전 직원(해봐야 4)이 달라붙어 중추를 조정하며 쇠밧줄을 수십번 감아서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중추의 무게는 온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추는 바벨의 원반 형태이며, 주물로 작고 크게 등급별(무게)로 구분되어 있다.

 

사시사철 온도의 변화에 따라 등명기의 중추를 재조정하여야 한다. 수은은 증발도 잘 되지만 온도 변화에 부피가 줄어들거나 늘어나 수은의 점액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중추의 무게가 더 무거워야 한다. 그러한 불편한 등대의 점등, 회전 방식은 1954국제연합 한국재건단(United Nations Koren Reconstruction Agency1950121일 국제연합 총회 결의 제410(V)에 의거 설립되었다. 일명 운크라 UNKRA)의 원조로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16마력 일본제 발동기와 8KW 발전기 2대가 설치되었으며, 축전지는 유리 전조 2V- 180A(황산 용액) 52개가 설치되어 발동 발전기로 전기를 생산하여 축전지에 저장하고 등명기 광원도 석유 백열등에서 백열전구 110V- 500W로 교체하여 등대불을 밝히고 등명기 회전 방식도 전기를 이용하는 모터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등대원 관사에도 석유불 대신 전등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인천 항로표지관리소 관내에서는 1954년 소청도 등대와 팔미도 등대에 처음으로 전기시설이 가설된 등대이다.

 

전쟁 중인 1952년과 1953년에는 소청도 등대 남서쪽 바다에 미국 항공모함이 떠 있었다. 앞뒤로 호위 구축함이 있었고 소청도와 대청도 사이 바다에는 대형 유조선이 정박하였으며, 한국 전쟁에 투입된 미국의 전투기는 거의 이 항공모함에서 발진 된 것으로 추측된다. 소청도 등대의 불빛은 그 당시에는 미국 항공모함에서 발진 되는 전투기의 등대 구실을 하였다. 1952년 가을쯤에 미국 항공모함에서 보트를 타고 영관급들이 등대를 찾아왔다. 등대의 점등으로 야간 전투기의 출격과 귀항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등대의 현황을 보러온 것이었다. 그리고는 고마움의 표시를 하고 싶다고 한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물었다. 그래서 등대 점등에 필요한 석유와 경유를 보급하여 주고 간 적이 있다. 이것은 당시 물품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시기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당시 소청도 등대 가족들은 등대장 나상용(39, 부인 29/ 나의 둘째 누님, 12, 아들 8, 딸과 아들은 소청도 큰 동네 예동에 있는 대청도 소학교 분교에서 수학 중이었다.) 황여중(29세 독신), 김영환(27, 부인 25) 그리고 조경호(25, 부인, 큰애 4, 둘째 2) 이렇게 4가족이 소청도 등대에 살고 있었다.

 

 

미국 항공모함에서 미군들이 방문하기 3일 전 인천 항로표지관리소 등대 보급선 군성호가 사선을 넘어 소청도 등대까지 왔다. 군성호는 유엔 재난 구호 식품인 밀가루와 납작 보리쌀, 우유가루, 약간의 식품과 등유와 경유 1드럼씩을 보급해 주고 떠났다. 식량은 그날 즉시 지게로 운반하여 관사로 가져왔지만 유류 2드럼은 선착장(등대 남동쪽)에 올려놓고 왔다. 해안가의 선착장에서 무신호사 까지는 약 500m 거리의 가파를 벼랑길이었다. 드럼통의 유류는 20리터용 스페아 통에 나누워 지게로 지고 올라와야 한다. 그런데 군성호가 오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유류를 운반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군성호는 떠나고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저녁까지 잠잠했던 바다가 큰 풍랑에 휘말렸다. 물이 많이 밀고 들어오지 못하는 조금때였기에 모두 안심하고 물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유류 2드럼을 올려놓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바람이 몹시 불었다. 등대장을 비롯해 직원들 모두가 선착장으로 내려가 보았다. 조금때였고 밀물이 해안선까지 밀고 올라온 만조 시간이었다. 그래도 드럼통을 올려놓은 곳까지는 바닷물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높은 파도가 쳤다. 두 개의 드럼이 바다에 둥둥 떠 있었다. 파도의 높이는 34m 정도 되었다. 드럼통이 파도에 밀리면서 암초에 부딪히고 있었다.

 

이대로 둔다면 곧 드럼통이 터질 것 같았다. 곧 썰물이 닥칠 것이다. 그리고 등대 전면 바다는 물골은 물 흐름이 무척 센 곳이었다. 절망적이었다. 10월이라 날씨도 쌀쌀했다. 그런데 황여중씨와 김영환씨가 생각할 틈도 없이 밧줄을 잡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파도는 그들을 뜻대로 움직이게 놔두지 안했다. 그들은 물속에서 몸놀림이 대단했지만 밧줄로 드럼통을 묶지는 못했다. 드럼에 유류가 가득 들어 있어 드럼통은 물속에 기핑 잠기어 파도의 노을을 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물속에서 드럼통을 붙잡고 사투를 벌린 지가 3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등대장은 김영환씨의 밧줄을 잡고 있었고 나는 황여중씨의 밧줄을 잡고 있어면서 등대장과 나는 드럼통을 포기하라고 외쳤다. 아마 파도소리 때문에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이제 썰물도 되고 그들도 지쳤나 보다. 드럼통을 잡고 떠밀기 시작했다. 황여중씨가 김영환씨를 부르는 것 같았다. 김영환씨가 드럼통을 놓고 헤엄을 쳐 황여중씨가 붙잡고 있는 드럼통으로 갔다. 두 사람은 파도에 드럼통과 함께 물 위로 솟았다가 물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그러더니 황여중씨가 물속으로 자맥질(잠수)했다. 그리고 머리가 드럼통 너머로 쑥 올라왔다.

그는 밧줄로 드럼통을 묶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짓하길래 나는 밧줄을 잡아 당기기 시작했다. 파도가 바닷물을 말아 올릴 때는 밧줄을 잡고 버티고 파도가 바닷물을 아래로 내리며 드럼을 밀 때는 밧줄을 잡아당겼다. 그런데 그들은 파도를 타고 갯바위 해안의 만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미 멀리 사라지고 있는 또 하나의 드럼을 잡으려고 헤엄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등대장은 붙잡고 있는 밧줄이 다 풀어져 밧줄 끝을 잡고 밧줄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들도 드럼을 포기하고 몸을 돌려 해안선 쪽으로 헤엄쳐 오고 있었다. 그런데 암초 끝에 와서는 암초 끝 뿌리를 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파도가 말아 올리는 물이랑의 물결이 그들의 몸까지 말아 올리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붙잡고 있는 암초의 돌부리를 놓친다면 파도와 함께 그들의 몸은 암초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날 판이었다. 몸은 부서지지 않는다 해도 머리를 암초에 부딪친다면 끝장이다. 그들은 암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와 등대장은 밧줄에 묶인 드럼 한 통을 간신히 물이 썬(썰물) 바위 틈에 붙여 놓았다. 그때 그들은 용케도 파도의 이랑으로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파도의 이랑의 고가 밀려 붙이자, 그 파도의 너울을 타고 암초를 넘어 해안가로 들어왔다. 내가 등대장이 가지고 있던 밧줄을 그들에게 던져 그들은 밧줄을 잡았다. 그리고 나와 등대장은 밧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해안선 자갈밭으로 나온 그들은 이제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 체온이 내려 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왜, 이와 같은 무모한 짓을 했을까 그것은 사명감이었다.

그들을 지게에 앉혀서 나와 등대장이 지고 올라왔다. 그리고 목욕탕 속에 넣고 물을 뜨겁게 뎁혔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50580002.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23pixel, 세로 646pixel

 

 

등대 보급선이 유인 등대에 보급품(유류 등)을 선착장에 하륙 및 등대원 수송광경

소청도 선착장에서 등대에(거리 약 3km 1m내외) 물품 운반(지게)광경

 

 

나는 다시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드럼통에 등 유류를 나르기 위해서다.

오후 늦게까지 져 날랐다. 잃은 유류는 등유였고 건진 유류는 경유 였다. 경유는 무신호 공기압축기를 운전하는 발동기에 사용하고 관사의 곤로에 사용한다. 그런데 잃어버린 유류는 등유로 등대의 등불을 점등하여 밤새 등대불을 밝히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등대에 남은 등유의 양은 34일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는 양이다. 보급선이 다시 오려면 적어도 2개월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 보급선이 온다는 기간은 사실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3일 후 바람이 가라앉자 미군 항공모함에서 유류 4드럼을 가져다 준 것이다. 등유 2드럼과 경유 2드럼이었다. 아마 목숨을 건 사명감이 하늘을 울렸던 모양이다. 낙담과 절망이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50580002.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23pixel, 세로 646pixel

소청도 등대 동쪽 해안가 선착장(몽돌 해변이라 부름) 전경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