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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기행

백두대간 인문기행  오대산 선재길

소설가 신종석

작성일 : 2025.02.28 11:45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오대산 선재길

 

진리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으며,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고요함도 아니고 하나인 것도 아니고 여럿인 것도 아니다. 이런 까닭에 진리의 세계는 크고 작은 공간적 상대성, 빠르고 느린 시간적 상대성, 움직임과 고요함이라는 운동적 상대성, 부분과 전체라는 구조적 상대성을 초월해 있다.

도 아니고 다도 아닌 까닭에 한 법이 일체법이고 일체법이 한 법이다.     -원효의 화엄경소-

 

 

올랐으면 반드시 내려오는 법. 산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어렵다고 필자는 앞에서 여러 번 말했다. 오십여 년간 백두대간을 오르고 내려오면서 터득한 진리다. 산을 내려올 때 힘들면 자신이 늙었다는 뜻이고 올라갈 때 힘들면 아직 젊었다는 증거다.

백두대간 오대산 상원사에서 월정사 내려오는 편도 9km의 완만한 숲길은 화엄경에 선지식을 찾아 나선 어린 선재 동자를 따 선재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선재 동자는 보리심을 일으켜 보살행을 구족具足하기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나 53인의 선지식을 찾아다녔다. 처음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마지막 실천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의 가르침을 받는다. 선재 동자의 스승은 바라문· 노예· 장사꾼· 뱃사공· 소녀와 창녀· 온갖 신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진리란 어떤 사람에게도 찾을 수 있다는 대방광불의 가르침을 말한 것이 아닌가?

대방광불화엄경은 29세에 출가한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가 35세인 기원전 589년 음력 128,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완전한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고, 제자들에게 최초로 설법한 말씀을, 석가모니 입멸 후 4차례 결집으로 후대 사람들이 기록해 놓은 것이 화엄경이다.

천축의 용수보살龍樹(150년경 ~ 250년경? 대승불교의 아버지)이 히말라야 설산에서 만난 노비구승을 따라 용궁에 들어가 가지고 나왔단다. 화엄경은 원내 용궁에 상· · 하 본이 있었는데, 상 본과 중 본은 워낙 방대해 가지고 나올 수 없고, 109548자로 된 하 본 만 용수보살이 가지고 나왔단다.

내용은 한마디로 요약해 一切唯心造일채유심조,

만약 어떤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를 알고 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관하라.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화엄경하면 당나라 종남산 지상사 지엄화상에게 8년간 화엄사상을 공부한 의상이 신라로 돌아와 원효와 함께, 대방광불화엄경 109548자를 210자로 줄인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일명 법성게(法性偈)를 지었다. 나중에 신라의 최치원이 다시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을 지어 1082년 고려 대흥왕사에서 판각되어 중국에 역수출되고 일본에도 전파되었다고 필자가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백두대간 해운풍류 참고)

화엄사상은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이 법계연기를 무진연기(無盡緣起)라고도 한다.

사법계란, 현상과 본체와의 상관관계를 사법계 · 이법계 · 이사무애법계 · 사사무애법계 넷으로 나눈다.

먼저, 모든 사물이 제각기 한계를 지니면서 대립하고 있는 차별적인 현상의 세계를 사법계事法界라 하고, 진실에 대한 깨달음의 세계로 언제나 평등한 본체의 세계를 이법계理法界라 한다. 그러나 현상과 본체는 결코 떨어져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어서, 항상 평등 속에서 차별을 보이고 차별 속에서 평등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라 한다. 다시 나아가 현상, 그것도 각 현상마다 서로서로가 원인이 되어 밀접한 융합을 유지한다는 것이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이다.

오대산은 이처럼 불교의 중심인 화엄불국토로 신라시대 때부터 이름을 얻어, 많은 사람들이 자취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는 조선 7대 왕인 세조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다 아시다시피 세조는 조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올랐으나, 인과응보로 평생 피부병이란 고통을 받았다. 세조는 자신의 피부병을 낫기 위해 전국의 유명한 약수터와 온천을 찾아다녔는데, 이곳 오대산 오대천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상원사 계곡에서 자주 등목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세조가 신하들을 물리고 혼자서 오대천 계곡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어린아이가 해맑은 얼굴로 목욕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조는 이렇게 해맑은 아이의 얼굴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산속에 왠 아이? 얼굴이 너무 해맑고 순수하구나?’

말없이 세조의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이 하도 천진난만하여 세조는 자신도 모르게 손짓을 했다. 오라고. 아이는 스스럼없이 물속을 들어왔고, 임금 세조는 피부병으로 부스럼이 잔뜩 핀 자신의 등을 내밀며 말했다.

아가야, 내 등을 좀 밀어줄 수 있겠니?”

아이는 기꺼이 세조의 등을 밀어주었는데, 상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이고, 시원해라!”

세조는 하도 시원해 자신의 몸을 살펴보니, 피부병과 부스럼이 깨끗이 흔적도 없이 나은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며 아이에게 고맙다고 치하해 주었다.

"아가야, 정말 고맙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 문수라하옵니다.“

그래, 다른 사람에게 임금의 등을 밀어주었다는 말을 절대 하지 말거라"

", 그러하오리다. 대왕께서도 문수를 만났다는 말씀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말하고는 아이는 감쪽같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세조는 자신이 보았던 아이가 문수동자임을 뒤늦게 알고, 문수동자의 모습을 화공에게 상세히 설명하여 그 모습을 새겨 상원사에 모시게 하였다.

문수동자상은 지금도 상원사의 문수전에 주불로 모셔져 있고, 그 목조문수동자상은 현재 국보 제2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참회하자 문수동자가 나타나 세조의 피부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이야기? 세조가 병을 고쳤던 길이라 왕의 길이라고 이름 붙였나 보다.

완만한 계곡 따라 내려가면 숲속에 150여 가구 300여 명이 산속에서 벌목하고 살은 화전민 터가 나온다. 강원도 화전민 하면 너와집 굴피집이 단번에 떠오르는데 볼 수가 없어 아쉽다.

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를 건너가자, 거제수나무가 울창하다. 자작나무과 거제수나무는 수액이 매우 많은 나무이다. 싹이 돋고 꽃이 피는 절기 곡우에 나무 수액이 많이 나와 몸에 열이 나는 병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나무껍질은 종이처럼 얇아서 편지지로도 쓰였다.

몸에 좋다고 하면 사람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먹는다. 자작나무나 고로쇠나무에 구멍을 뚫어 수액을 받아먹는데, 얼마나 건강 장수에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백두대간에 자생하는 생물 무생물, 숨을 쉬든, 숨을 쉬지 않든 다 스스로 고귀하게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산이 깊고 백두대간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아 외적의 침략에도 국사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좋은 곳이라 조선왕조실록과 의궤가 여기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 5대 사고 중 하나인 오대산 사고는 교정 사고로 교정 흔적이 남아있어, 실록의 편찬 과정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일제강점기 오대산 일대 나무를 벌채하기 위해 상원사까지 철도가 놓였다. 1927년부터 1945년까지 금강송 전나무 등 질 좋은 나무를 벌채하여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산림이 울창한데, 금강송과 오대산 전나무 같이 질 좋은 나무는 없었나? 아니면 식민지라고 마구잡이로 착취한 것인가?

선지식을 찾아 나서듯 걸어온 선재길은 되돌아보니, 날은 저물고 어둠 속에서 들리는 월정사 종고루 범종· 법고· 목어· 운판 소리가 관세음보살의 구원의 음향音響인 듯 은은하다. --

  소설가 신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