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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전나무 숲속에서
작성일 : 2025.02.28 11:42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오대산 전나무 숲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
자꾸 미루는 것 어찌 알고
숲속의 시냇물이
나를 따라오며 재촉하네
나도 흐르는데
너도 흘러라
어서 움직여라
친구하고 어떤 일로
꽁해 있는 내 마음 어찌 알고
숲속의 나무가
고요히 말을 거네
속상해도 웃어라
자꾸자꾸 웃다 보면
마음이 넓어져서
고운 잎사귀도
열매도 달게 된다고...... < 이해인 숲속에서>
백두대간 허리에 우뚝 솟은 오대산은 불교의 성지로 비로봉(毗盧峰1,565m) 호령봉(虎嶺峰:1,531m)· 상왕봉(上王峰:1,491m)· 두로봉(頭老峰:1,422m)· 동대산(東臺山:1,434m) 다섯 산봉우리가 오목하게 원을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꼭 다섯 개의 연꽃잎에 싸인 연꽃 모양을 하고 있다. 중·동·서·남·북의 5대五臺에 각기 석가· 아미타· 관음· 지장· 문수의 부처와 보살이 머문다고 하여 오대란 이름이 붙여졌다. 다섯 봉우리에는 각각 사자암 · 관음암 · 수정암 · 지장암 · 미륵암의 다섯 암자가 자리 잡고 있다.
중대 사자암은 신라의 자장慈藏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봉안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다.
다 아시다시피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은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오대산 사자암獅子庵,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가 있다.
오대산 소금강과 청학동은 율곡 이이李珥가 오대산 일대를 둘러보고 ‘소금강’이라 하고,「청학산기」를 남긴 데에서 유래한다. 소금강은 무릉계를 중심으로 천하대 · 십자소 · 연화담 · 식당암 · 삼선암 · 청심대 · 세심대 · 학유대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구룡연이라고 하는 구폭구담의 구룡폭포와 만물상 일대는 당장 용이 승천하며 신선이 학을 타고 오를 것 같은 풍경이라, 보는 이의 넋을 빼놓는다.
구룡폭포의 아미산성은 고구려와 신라가 한때 일전을 거듭하던 싸움터였고, 연화담 주변에는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들이 모여 사는데, 오대산 장수 하늘소 성충은 몸길이가 12㎝ 넘는 것도 있단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광릉의 소리봉 주변과 오대산 소금강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매우 귀한 곤충이다.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으로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전라북도 부안 내소사, 경기도 포천 광릉 수목원을 꼽는다.
오늘은 그중 단연 으뜸이라는 백두대간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과 내려오는 길로 선재길을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 동자 모양 걸어 보기로 한다.
들머리에서 월정사까지 약 1km 전나무길은 양쪽으로 수령 100년 넘은 전나무 1,7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잘 아시다시피 전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침엽수로, 젓처럼 하얀 액체가 흘러나와서 젓나무라고도 불렀다. 전나무의 잎은 같은 소나뭇과의 주목이나 구상나무에 비해 길고 뾰족하여 찔리면 아프다. 전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큰키나무로 높이가 20~40m, 지름 1.5m 가량으로 고산지대에서 잘 자란다.
같은 소나무과의 한라산 지리산에서 잘 자라는 구상나무는 세계에서 Korean fir 즉 한국 전나무란 이름을 달고 가장 아름답고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용 추리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전나무 숲에는 무엇보다 피톤치드Phytoncide 향기가 나무에서 자연 발생하는데, 피톤치드는 식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생하는 항균성· 살충성 물질이다. 소나무· 편백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에 피톤치드 발산량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우리가 숲길을 걸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자연에 쉽게 동화되는 것은 피톤치드의 효과다. 전나무 피톤치드는 오전 10시에서 11경에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숲속은 오후보다 오전에 걷는 것이 상쾌함을 더 느끼는 것 같다.
나도 몰래 합장하고 사방을 둘러봐도 늘푸른큰키나무 전나무뿐이다.
난 고개를 들고 전나무와 키재기를 하듯 코를 하늘로 향하여 가슴을 펴고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켜본다. 그러자 내 몸이 허공에 붕 떠 걸음이 절로 걸어지는 느낌이다. 귀가 트이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물소리 스치는 바람 소리는 트인 사람에게만 들리는 오케스트라의 협주다.
일전 낙동정맥 영남알프스 영축산 통도사 19 암자 순례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오르막이 없고 총길이 약 10km로 매우 쉬운 편이다. 특히 녹음이 우거진 7·8월 여름에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고, 적설기 쌓인 눈길을 뒤돌아보면 몰랐던 자아를 발견할 수도 있다.
백두대간 인문기행에서는 일반 기행 글이 아니라, 가능한 소요 시간을 가늠하지 않는다. 누구나 걷고 싶으면 걷고, 힘들면 쉬어가면 된다. 자신의 걸음걸이에 따라 걸으면 된다. 혹 동행이나 일행이 있으면 가장 늦은 사람 기준으로 걸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빠른 사람은 조금만 양보하면 늦게 같이 갈 수는 있지만, 늦은 사람은 결코 빨리 갈 수는 없다. 항상 약자 느린 사람을 기준으로 해야 동행이 되고 화합과 소통이 된다는 또 다른 진리다.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이란 현판이 걸린 월정사 일주문을 합장하고 들어선다. 일주문은 산문에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을 말하며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데, 이는 일심一心 한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세속의 번뇌를 불법으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정진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월정대가람 현판은 탄허 스님께서 쓴 글이란다.
합장하고 일심으로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온갖 번뇌를 내려놓고 구도를 향한 선재 동자가 된 양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그러자 일순간 거대한 전나무 숲이 날 반긴다. 아니 내가 전나무 숲 바다에 풍덩 빠져버린 순간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체험하는 순간이다. 일체유심조는 화엄경의 중심사상으로, “만약 어떤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관하라,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라는 말이다.
아니 전나무숲에 들어와 내 마음이 바뀐 것인가? 우리는 보통 전나무 숲에 들어와 내 마음이 바뀌였다고 한다. 그 말도 맞는 말이다. 그럼 여기서 이 전나무 숲을 영원히 내 곁으로 가져갈 방법은 없는가? 있다. 수행을 통해 깨우치면 아주 간단해진다.
선지식은 말했다. 향을 싼 종이에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는 생선 비린내가 난다고. 그래서 구법승들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산속에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일체유심조와 깨우침이란 화두를 안고 포행하듯 전나무 숲의 세계로 점점 빠져들어 가고 있다.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얼굴 표정이 백 점 받은 시험지를 흔들며 집으로 뛰어가는 아이들같이 해맑고 천진난만하다.
먼저 인사하기!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난 산에서만큼은 먼저 인사하기와 일회용품 안 쓰기를 반듯이 실천한다.
길을 가다 아름드리 전나무를 안아 본다. 혼자서는 어림도 없다. 두 명이 안아야 할 것 같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뒤도 돌아다보는 여유를 가진다. 숲속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아하! 숲속에는 오대천이 흐르는구나.
<소설가 신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