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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 81.탄성의 양면, 말과 글의 이면

작성일 : 2022.11.10 12:15

 

 

탄성의 양면, 말과 글의 이면

/윤일현

 

 

최근 온 국민이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탄성을 연발했다. ‘이태원 참사라는 참혹한 죽음과 봉화의 기적이라는 인간 승리를 보며 우리는 모두 탄성을 터뜨렸다. 어떻게 전혀 다른 사건을 두고 탄성이라는 낱말을 같이 사용하는가. ‘탄성(歎聲)’한숨짓는 소리, 감탄하는 소리모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탄성이라는 한 단어 속에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듯이 생과 사, 희망과 절망, 성공과 실패, 참사와 기적도 동전의 앞뒤처럼 한 몸체의 다른 이면인지 모른다. 행복과 미담에는 책임 공방이나 요란한 말이 필요 없다. 불행과 악담에는 해괴한 변명과 거친 설전이 오간다. 정치권은 진심 어린 추모나 재발 방지책 마련보다는 정략적 이해관계가 내포된 가시 돋친 말, 영혼 없는 빈말 등 품격 없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영상과 지면을 통해 표현되는 말과 글의 힘과 영향력을 다시 생각해 본다.

 

221시간 만에 생환한 봉화의 기적을 두고 무수한 기사와 인터뷰가 쏟아졌다. “구조대원들을 보자마자 구조된 두 명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울었다.” 구조 관계자의 말이다. 구조 당국은 천공기를 통해 가족들이 쓴 편지와 음식, 음료, 보온덮개 등을 내려보냈다. “아버지, 힘들겠지만 힘내시고 밖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견뎌주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 삼촌을 구하기 위해 백방팔방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힘 잃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가족들의 편지에 나오는 말이다. “동료를 구해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철야로 근무했습니다. 그분들이 거의 모든 작업을 주도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구조팀장의 말이다.

 

이태원 참사는 전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자연재해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 때문에 수없이 희생된 현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주로 건강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으니까 위험이 닥쳐도 스스로 신속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을 했던 것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생존자의 증언 중에 친구는 지금 세상에 없고, 저만 살아 있잖아요. 이 자체가 죄책감을 느끼게 합니다.” 사고 현장에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경찰관도 있었다. “안 돼요. 가면 안 돼요. 다 빠지세요. 얼른, 사람이 죽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다급하고 절박한 절규다.

 

매몰자가 구조대를 처음 봤을 때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울었다는 말을 듣고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감사의 마음에 가슴이 울컥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조금만 더 견뎌주세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이 말에는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이보다 더 간절한 말이 있을 수 있을까. “작업자들이 거의 모든 구조작업을 주도했습니다.” 자기 공을 내세우지 않는 구조팀장의 말은 온몸에 행복한 기운이 감돌게 했고, 인간에 대한 한없는 신뢰감이 생겨나게 했다. “친구는 없고 저만 살아 있잖아요.” 이보다 기막힌 표현이 있을 수 있을까? 저 친구가 어떻게 살아갈지,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사람이 죽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이보다 절박하고 다급한 말이 있을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항상 글쓰기를 어려워했다. 그는 진실한 문장을 하나 쓰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다시 이어서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정직하고 진실하게 쓸 것, 비유와 수식어를 남발하지 말 것, 생략과 압축의 묘미를 살릴 것, 돈벌이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말 것, 정치색을 드러내기보다는 글쓰기 자체에 충실할 것을 글쓰기의 신조로 삼았다. 그는 그 무엇보다도 뭔가를 과시하려 하지 말고, 복잡한 무늬와 장식을 잘라내고 진실한 평서문 하나로 시작하라고 강조했다. 절박하고, 절실하고, 간절한 순간에 쓰는 말과 글은 수식어가 필요 없다. 군더더기를 붙일 겨를도 없다. 단순하고 평범한 문장이 사람에게 힘을 주고 감동을 유발한다. 사회 지도층의 말은 더욱 그렇다. 쓸데없는 수사와 비열한 저의 없이 진심만을 담은 간결한 말이 국민 단결과 사회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여야정치권과 진보·보수 시민 단체는 말과 글을 쏟아내기 전에 자가 검열을 해 보라. 경제 불황과 고물가, 상시적인 안보 위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국민들을 바라보라. ‘한숨짓는 탄성이 아닌, ‘감탄하는 탄성을 자주 발하게 할 수는 없는가.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