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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11.05 10:58
이 비정하고 냉혹한
/한상준
초등학교 동창인 세연의 권유로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FFF)’ 4차 집회에 처음 가서부터 놀랐다. 또래인 중딩이 고딩보다 더 많아 보여서였지만 주장하는 내용 또한 너무나 신선해서 오히려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다빈은 5차에 이어 6차 FFF부터 함께하기로 했다. 이후, 행동 변화의 요구라고 느끼기에 충분한 몇 가지를 실천하기가 사실 쉽지는 않았지만 실행하려 노력했다. 세연이 37분 정도 걸어서 오지만 다빈은 9분 거리였기에 차를 타지 않고 등·하교하기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수돗)물 아껴쓰기가 또한 어떻게 기후위기와 연관되는지 이해하면서부터 집안의 변기 수조에 벽돌을 넣고 부모님으로부터 호응까지 얻은 터다.
“니네 학교도 매일 고기가 나오잖아. 어떻게 안 먹어?”
6차 집회 뒤 세연, 창호와 분식집에서 떡복이를 먹으며 듣는 창호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다.
학교급식에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식탁에 오르는 고기류를 먹지 않는다는 생각을 다빈은 지금껏 해본 적이 없다. 고기류가 식탁에 오르지 않는 날이 이틀 연속되면 급식의 질이 떨어졌다고 원성이 자자하다. 심지어 부모님들도 들고 나선다. 식단을 미리 꿰고 있는 아이들 몇몇은 고기류가 나오지 않는 날은 일컬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준답시고 학교 밖 분식집, 중국집 심지어 국밥집까지 들락거리곤 한다. 동물성 단백질을 급식에서 섭취하고 보충하는 걸 그동안 마다하지 않은 다빈은 온몸에 심한 타박상을 입은 듯 통증을 느낀다. 논쟁에서 뒤처진 듯한 열등감이 밀려오는 걸 어쩌지 못한다.
“‘고기로 태어난 소는 초원을 본 적이 없다’ⁿ”
창호의 대답에 세연이 다빈을 건네보며 엄지 척을 한다.
”멋지다. 시(詩)네, 시. 안 그래, 다빈아?”
세연이 다빈에게 또 묻는다. 창호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엄연함에 다빈은 더 놀란다. 초딩 때 창호는 또래의 먹잇감이었다. 나약하고 꾀죄죄한 애였다. 다빈은 맞장구치는 세연에게서 시선을 옮겨 괜스레 천장을 올려다본다.
“울 아버님께옵서 <시사in>이란 주간지에서 봤다며, 며칠 전 저녁 밥상머리에서 그 표현을 몇 차례나 읊으시더만.”
“니네 아빠께옵서도 멋진 분이세요, 네.”
“근데, 엊저녁 밥상에 오른 삶은 돼지고기에 맨 먼저 손이 간 분이 누구냐? 울 아버님, 크크.”
세연과 창호가 손뼉을 치며 웃는다.
다빈은 둘과 헤어진 뒤 풀이 죽은 채 집에 왔다. 고기류를 먹지 않기로 한 게 벌써 세연은 5주, 창호는 19일째라 했다. 책상에 앉아 창호가 내뱉은 말을 곱씹는다.
‘고기로 태어난 소는 초원을 본 적이 없다. 고기로 태어난 소는 초원을 본 적이 없다.’
다시 되뇐다.
‘고기로 태어난 소는 초원을 본 적이 없다.’
다빈은 세연에게 딱 한 마디 건네지 못한 게 아쉽게 닿는다. 그건 시(詩)가 아니었다. 인간의 식탁에 오르려 도살당하는 소에겐 비정하고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날 저녁이다. 식탁에 오른 제육볶음에 다빈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학교급식에서도 고기류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 비정하고 냉혹한 표현에 붙잡힌 다빈의 꿈이 시인(詩人)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