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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재미로 보는 주역> 36.용이 개천에 내려오면, 무신불립(無信不立)

작성일 : 2022.11.05 10:39

 

용이 개천에 내려오면, 무신불립(無信不立)

/양선규

 

 

동화든 우화든 주역이든 동물들이 주된 이야기의 소재가 될 때는 반드시 어떤(분명하고 원초적인) 교훈(敎訓)을 남기고 싶을 때입니다. 누군가에게 한 소식전하고 싶은 욕구가 절실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남의 동네까지 가서 비유를 구할 일이 없습니다. 격하게 칭찬하거나 모질게 깎아내릴 용도로 모셔오는 그들 비유가 되는 동물들은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현실의 인간을 배제하고 오직 하나의 관념’, ‘하나의 알레고리’, ‘하나의 전경화(前景化) 된 사건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런 차원에서만 이야기에 고용(雇用)됩니다. 그들이 비유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의 성격이나, 비중이나, 역할이나, 소용(효용)뿐입니다. 여우는 교활한 마음을, 돼지나 곰은 욕심 많고 미련한 속내를, 용이나 호랑이는 걸출한 재능이나 용맹을, 전갈이나 독사는 무지비한 악한 성격을, 개나 닭은 하찮은 사회적 역할을, 새나 물고기는 전조(前兆)유무나 재화(財貨)의 들고 남을 비유합니다. 앞의 동물들만큼 흔하게 등장하는 경우는 아니지만 벼룩이나 개미, 사마귀 같은 곤충들은 하찮은 소인배 인간이나 만용(蠻勇)을 일삼는 인간을 비유할 때 종종 사용됩니다.

 

몇 가지 동물 비유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용이 개천에 내려오면 새우가 놀리고, 호랑이가 저잣거리에 내려오면 개들이 짖는다.”, “개와 닭이 집을 나가면 공들여 찾으면서 자신의 마음이 집을 나가면 찾지 않는다.”,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주랴?”, ‘여우 같은 X’, ‘돼지 같은 놈’,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X놈이 번다.” “당랑거철(사마귀가 수레바퀴에 대든다)”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것으론 대중은 개, 돼지입니다.“가 있습니다. 흔히 듣는 동물 비유의 빈번한 예들입니다. 근자에 올수록 인간의 좋은 면보다는 나쁜 면을 표 나게 드러낼 때 동물 비유가 자주 사용됩니다. 옛날이야기, 특히 신화와 같이 시원적인 사회역사적 맥락을 중시해야 하는 이야기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 있고 가치 있는 동물 배역들은 요즘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민족 단위 토템의 표상이 되거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숙이나 변화의 주체로 기용되는 일이 통 없습니다. 단군신화의 곰할머니나 로마신화의 늑대 부모 같은 경우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없습니다. 인간의 조상이 되는 동물, 특별한 하늘의 은사가 내리는 지상의 존재, 감화를 입어서 인간으로 화하는 존재로 동물이 묘사되는 일은 이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여튼 동물 비유법은 인류의 오래된 페다고지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의 주역 읽기에서도 그런 동물 페다고지가 등장하는군요. 주역 예순한 번째 풍택중부’(風澤中孚), 중부괘(中孚卦)에는 돼지와 물고기가 나옵니다.

 

....중부(中孚)는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믿음이 미치면 길하니, 큰 내를 건넘이 이롭고, 곧음이 이로우니라. (中孚豚魚吉 利涉大川利貞) -- 믿음이 선 후에 나라가 교화된다. ()가 안에 있고 강()이 가운데를 얻으니 각기 제자리를 잡았다. 강이 득중하면 곧고 바르게 되고, ()가 안에 있으면 조용하고 유순해진다. 화열(和悅)하면서 공손하면 싸움이 일어나지 아니한다. 이와 같으면 사람들에 교묘히 다툼이 없어지고 돈실한 행실이 나타나고 신뢰가 그 가운데 피어나게 된다.[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 456~457]

 

크게 좋은 일이 생기는 이섭대천(利涉大川)’의 전제조건이 돼지와 물고기에 까지 믿음이 미치는 일이라고 주역의 저자는 강조합니다. 그렇지 않고 대중(민중)에 대한 교화의 노력도 없이 섭대천(涉大川)하다가는 어디까지 흉하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합니다. ‘돼지와 물고기가 등장하는 소이는 이렇게 설명이 됩니다. "물고기는 보이지 않는 동물이요, 돼지라는 것은 미천한 짐승이다. 다투어 경쟁하는 도가 일어나지 않고 마음속으로 받는 도가 순박하게 드러나면, 비록 은미한 사물일지라도 믿음이 다 미치게 된다."(457)

 

중부괘(中孚卦)가 작금의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목전의 현실에(특히 정치 현실에) 모종의 교훈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화 없이 하늘의 별을 따겠다는 이들이 서로 강을 건너겠다고 앞을 다투고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흉적에게 크게 유린당한 살림과 민심을 시급히, 돈독히, 복구해야 하는 때입니다. '커다란 하나의 에로스'가 작동되어야 하고 돼지와 물고기에게까지 위정자들의 교화가 미쳐야 합니다. ‘도가 순박하게 드러나’, 믿음으로 어려움들이 다 해결되어야 하는 때입니다. 모두가 스스로를 단속할 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주역을 펼치면 그날그날 들어오는 글귀가 다릅니다. 좋은 것이 들어올 때도 있고 나쁜 것이 들어올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변화시키는 내용이 심금을 울립니다. 저 같은 물고기 인생에게도 한가득 감화를 안겨줄 용이, 하늘에서만 놀지 말고, 부디 이 땅의 개천에 내려오기를 고대해 보는 아침입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