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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10.28 10:52
35. 궁하면 통한다, 자력갱생(自力更生)
학창 시절 학생회 일을 하면서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하나 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요즘과 달리 옛날에는 학생회 일이 하나부터 열까지 ‘자력갱생’이었습니다. 적은 예산으로 행사를 치르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노력 봉사로 임해야 했습니다. 경험도 없어서 끝 없는 시행착오와 싸워야 했습니다. 체육대회, 농촌 봉사활동, 전방 위문, 교지 발간, 연극 공연 같은 일에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게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안 좋았던 기억은 학생 일꾼들이 매일같이 싸웠던 일입니다. 처음에는 웃는 얼굴로 만났다가 일이 진행되기 시작하면 시시때때로 으르렁거렸습니다. 출신 지역도 다르고 출신 학교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힘든 일을 하다 보니 틈만 나면 서로 싸웠습니다. 제게는 그 싸움을 말리고 조직의 화목을 조장하는 일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덕분에 좋은 공부를 많이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싸우지 않는 자가 가장 행복하다’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해 주었으니까요. 그 덕분인지 그 이후의 제 인생이 ‘요리조리 싸움을 피해서 살아온 역정’으로 점철되긴 했습니다(한 판 크게 싸운 적도 있기는 했습니다만). 오늘 펼친 주역 책에서는 궁필통(窮必通)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곤(困)은 형통하고 바르고 대인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으니 말이 있으면 믿지 않으리라. (困亨貞 大人吉无咎 有言不信)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358쪽]
주역 마흔일곱 번째 ‘택수곤’(澤水困), 곤괘(困卦)의 경문입니다. 궁하면 반드시 통하고, 곤궁에 처하여 스스로 통할 수 없는 자는 소인이다(窮必通也, 處困而不能自通者, 小人也)라고 해설이 되어 있습니다. 주역(周易) 계사전 하편 제2장에 나오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가 세상사의 보편적인 원리를 밝히는 말이라면 그와 달리 이 구절은 주체의 능동성을 강조한 말이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통하는 일’(自通)이라고 밝혀놓고 있습니다. 그저 궁함에 처해서 변화의 기미만을 기다리고 앉았거나 ‘입만 숭상’하다가는 신의를 얻지 못하고 막혀서 끝내 다시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處困而言 不見信之時也. 非行言之時, 而欲用言以免, 必窮者也)
‘궁해야 통한다’는 사실 저의 좌우명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중학교 시절부터지 싶습니다) 무언가 탈출구가 필요할 때면 자작(自作) 굴을 파고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모든 바깥 것들과 단절하고 공부에 매진하거나 종교에 심취하거나 운동에 몰두했습니다. 그때마다 주변의 친구들은 저의 사회적 실종 상태를 타박했습니다. ‘얼굴 좀 보자’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습니다. 그들은 그 상황을 저의 몰락(沒落)의 처신으로 간주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자초하는 궁함은 항상 새로운 돌파구가 되곤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런 고슴도치 전략이 ‘곤궁에 처하여 스스로 통하기 위한’ 자력갱생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 든 어른이 되고나서도 그 버릇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굴속으로 들어갑니다. 지금 저의 인생 동반자가 되고 있는 페이스북 글쓰기도 그런 자통(自通) 노력 중의 하나입니다. 옛날 청년기 때의 일입니다. 서울살이를 그만두고 지방으로 내려와 새로운 굴을 파고 암중모색 할 때였습니다. 그때가 아마 제가 가장 깊게 굴을 파고 들어앉았을 때였을 겁니다. 고3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직장생활 때문에 멀리 떨어져 살고 있던 문우(文友)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친구는, 지금도 그렇지만, 저에게 늘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편지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고 마치 수학 공식처럼 착실하게 살아가는 자네가 부럽네”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제 나름으로는 울퉁불퉁하기 짝이 없는 고단한 인생인데 ‘수학 공식처럼’이라니, 남들이 보기에는 저의 ‘굴 파기’가 어쩌면 엄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습니다. 그때 “전혀 ‘수학 공식’이 아니다. 오로지 암중모색만 있다.”라고 구구절절이 써서 답장을 보냈습니다만, 지금 와서 보니 그 친구의 말이 맞았습니다. 수학공식처럼 살아온 게 맞았습니다. ‘궁필통’이 저의 ‘수학 공식’이었습니다. 저의 내면에 굵고 깊게 패인 ‘홈’이 바로 그 ‘궁필통’이었습니다. 곤괘(困卦) 초육(初六)의 효사(爻辭)가 그 인생 공식의 의의와 진행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육은 엉덩이가 나무뿌리에 곤궁함이라, 어둔 골짜기에 들어가서 삼 년을 보지 못하도다. (初六 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不覿) -- 가장 밑에 처해 침체되고 비천하게 곤궁하여 거함에 편안한 바가 없으므로 ‘둔곤우주목(臀困于株木)’이라 하였다. 그 응함(九四)에 가고자 하나 이효가 그 길을 막으니 가만히 있으면 나무뿌리에 걸려 곤궁하고, 나아가도 구제받지 못하니, 반드시 은둔할 것이므로 ‘입우유곡(入于幽谷)’이라 하였다. 곤(困)의 도는 몇 년을 지나지 못하는 것이니, 곤궁해져서 숨고 곤궁함이 풀리면 나오므로 ‘삼세부적(三歲不覿)’이라 하였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360쪽]
어제 하루 종일 모종의 ‘싸움’에 참여하고 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자정에 깨서 이 글을 적습니다. 자나 깨나 세상은 늘 곤궁합니다. 어제 그 싸움터에서 만난 여러 ‘곤궁에 처한 자’들도 모두 ‘궁필통’ 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개중에는 자작 굴을 파고 들어앉은 자도 있을 것이고 자신이 곤궁에 처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천방지축으로 싸우고 있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위에 앉은 자나 아래에 앉은 자나 모두 곤궁에 처해 있는 자들처럼 보였습니다만 그들에게도 분명 제가 모르는 ‘구제’와 ‘은둔’이 필경 있을 겁니다. 얼마 전에 직장의 젊은 여자 동료로부터 “요즘 잘 나가시데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마 소문으로 저의 최근 글쓰기 활동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잘 나간다'라는 말이 실소를 짓게 했습니다. 참 재미있는 격려 말씀이었습니다. 굴 파기 전문가에게 ‘너 요즘 잘 나간다’라고 말하는 것은 더 깊이 굴을 파고 들어앉아라는 당부시겠죠? 궁필통! <오래 전 작성. 오늘 아침 일부 수정> <사진은 페북(이정석) 사진>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