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백두대간 기행
소설가 신종석
작성일 : 2025.02.23 02:07 수정일 : 2025.02.23 02:10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김치
시월이라 거센 바람 새벽 서리 내리니
울에 가꾼 채소 거두어들였네.
맛있게 김장 담가 겨울에 대비하니
진수 성찬 없어도 입맛 절로 나네. 권근(1352~1409)의 ‘김장(蓄菜축채)
요즘 과식을 부추기고 만병의 근원인 먹방은 과유불급의 독이요, 우리나라 큰 문제점 중에 하나다. 하지만 인간의 삼욕三慾 중 식욕이 제일 무섭다니, 달리 할 말이 없고 성찰하는 뜻에서 34화의 節量食절량식만 되새겨본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란 말이 있다. 예전의 먹을거리와 지금 먹는다는 개념이 백팔십도 달라져 거론하기가 좀 비논리적이다.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먹었고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먼저 과거를 살펴보면 그 답이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입맛은 유아기 엄마의 젖을 떼고 나서, 무엇을 먹나에 따라 평생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결정된다. 이 말은 필자가 먹을거리 식문화 강연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신라 박제상의 부도지에, 지금으로부터 9500년 전 마고성의 사람들 36,000명은 땅속에서 나는 지유地乳를 먹고 살았다고 했다. 유성 생식에 의한 인구가 늘어나자 마고성 지유의 양이 점점 줄어들자, 황궁씨의 자손 지소씨는 포도를 따 먹기 시작하면서 달고 짜고 쓰고 시고 매운 오미五味의 변變을 알게 되었고, 지상 낙원 마고성을 나오게 된다는 이야기다.
마고성을 나와 천산주로 이동한 황궁씨는 사람들에게 칡과 나물을 캐고 도토리를 주우며 동물들과 먹이다툼을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차츰 해 뜨는 동쪽으로 이동하며 한반도에 도착한 사람들은, 남쪽 남방에서 들어 온 선조들과 백두대간을 타고 접화군생하며 해안가에서 손쉬운 어패류를 채취하며, 독살을 이용한 물고기 잡기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충북 청주 소도리에서 발견된 볍씨는 1만 5천 년 전 것으로 학계에서 추정한다. 그럼, 한반도 토착 조상들은, 황궁씨의 후손이 이 땅에 들어오기 전 이미 벼농사를 지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국유사에는 기원전 2457년(上元 甲子)10월3일 환인의 서자 환웅천왕이 삼위태백산三危太伯山 신단수 앞에 내려왔다.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곰은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웅녀가 되어 단군을 낳았다. 봄이며 이 땅의 산과 들에 늘린 것이 쑥이요 나물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이 땅의 산과 밭에서 나는 나물 채소는 봄이 아니면 맛볼 수 없어 무엇보다 겨울철 저장 방법이 필요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염장 방법이 발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가 아닐 수 없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대관령 주변을 걷다 보면, 동해의 해풍이 넘나드는 높드리 언덕에 조각보처럼 쪼가리 밭들이 모인 고랭지 배추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고랭지 배추하면 단연 우리의 김치다.
우리가 조상 대대로 아침 점심 저녁 혹은 간식으로 라면 먹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염장 발효식품인 김치는 옛말로 저菹· 침채沈菜· 딤채딤로 불리다, 오늘날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대한민국의 대명사 김치가 되었다.
<삼국지> ‘위서·동이전 “고구려인들은 발효음식을 만드는 데 뛰어나다”라는 기록을 보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절임음식 문화가 있었음을 짐작한다.
충북 보은 법주사 경내의 거대한 돌항아리(충북 유형문화재 204호)는, 720년(신라 성덕왕 19년) 3,000명의 승려들이 먹을 김치를 보관하는 김칫독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487년(소지왕 9년) 각연 스님이 창건한 장수사에 1자 깊이로 오목하게 파인 동그란 바위가 있는데, 그 이름이 침채옹(沈菜甕·김칫독)이라 한다. 각연 스님은 이 바위 안에 채소를 쌓아 두고 겨우내 김치로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아마 고추가 없었던 삼국시대는 염장 발효 채소였을 것이다.
고려말 침채沈菜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목은 이색은 유구가 보내준 음식을 보고 읊은 시의 제목이 ‘유구가 우엉과 파와 무를 섞어 담근 침채장을 보내다’다.
조선시대 들어 ‘침채’는 ‘저’ 다음으로 사용빈도가 높았다. ‘침채’는 조선시대에 ‘팀채’로 발음됐는데, 이것이 딤채에서 짐채를 거쳐 지금의 김치로 변한 것으로 본다.
학자 김수증은 <곡운집>에 집집마다 김장은 연중행사, 가을이 깊어 무를 밭에서 캐다.
기록을 살펴보면 백성은 빈부귀천을 떠나 음력 10월이면 집집마다 김장을 하며, 김장할 시기를 넘길까봐 걱정하고, 김장을 연중 최대 과제로 생각했다. 진수성찬 없이도 김장김치만 있으면 기나긴 겨울을 지낼 수 있다는 말이다.
16세기 임진왜란 이후 고추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배추와 만나 오늘날의 건강 발효음식 김치로 승화하였다.
특히 백두대간 13 정맥을 타고 각 지방의 환경과 풍습 특산물에 따라 다양한 김치가 만들어져, 현재 150여 가지의 김치가 만들어지고, 우리의 입맛이 세계화 되면서 계속해서 진화 발전하고 있다.
2006년 세계 5대 건강 식품으로, 첫 번째로 한국의 김치 (Kimchi), 다음이 그리스의 요구르트 (Greek Yogurt) 3. 스페인의 올리브유 (Olive Oil) 4. 인도의 렌틸콩 (Lentil) 5. 일본의 낫또 (Natto)가 선정되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첫 번째로 우리의 김치는 다섯 가지 기본 맛에 젓갈과 어우러진 발효과정에서 20가지 이상 건강 기능을 가진 발효식품으로 승화, 세계인의 건강식품으로 인정받았다.
김치를 먹어본,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김치를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극찬했다.”
얼마 전 미국 알래스카를 다녀온 지인의 말에 의하면 알래스카 에스키모인들도 요즘 김치 맛을 보고 한국인만 보면 김치하며 엄지를 치켜세운단다.
K컬처의 힘이요 우리의 자랑이다.
김치의 주재료는 배추와 고추다. 처음 중국에서 들어온 배추는 잎사귀에 힘이 없고 무엇보다 성기고 처져 싱싱하질 않았다. 이 배추가 이 땅의 토양에 접화군생하며 각 정맥을 타고 백두대간 고랭지로 올라가면서, 배추는 보다 잎사귀도 많아지고 실하고 단단해졌다. 특히 일교차가 큰 백두대간 고랭지 배추는 잎이 파랗고 속이 노랗게 싱싱하다.
싱싱한 배추를 반으로 잘라 굵은소금을 뿌리고 절인 소금물을 뿌려준다. 소금과 배추가 만나면 배추가 아싹하게 상승작용을 한다.
중국에서 들어온 배추는 백두대간을 타고 온 북방문화와 바다 소금이란 남방 해양문화와 고추와 접화군생하면서 더더욱 승화된 것이다.
배춧속에 들어가는 김칫소로는 무 양파 마늘 등 갖은양념으로 만든다. 갖은양념으로는 각 13 정맥의 특산품과 찹쌀 풀· 고춧가루· 새우 멸치젓갈· 다진 마늘 등과 함께 버무린 김치소가 된다.
바야흐로 늦가을 김장철이다. 우린 오래전부터 빈부귀천을 떠나 집집마다 11월이 오면 김장을 했다. 식구가 많아 김장을 하면 보통 일이백 포기를 해야 기나긴 겨울을 넘길 수 있었다. 이처럼 김장은 연중행사로 집안의 제일 큰일이었다.
김장하는 날 구수한 김치 된장국과, 빨간 양념을 노르스름한 배추속에 싸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쌀밥과 함께 먹는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돈다. 혹 아버지가 김장 보너스라도 타면 가족들이 삶은 돼지고기 수육도 맛볼 수 있었던 어릴 적 생각이 절로 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