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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기행

백두대간 인문기행   아름다운 수로부인

  소설가 신종석

작성일 : 2025.02.23 01:50 수정일 : 2025.02.23 01:58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아름다운 수로부인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 놓아라

남의 아내 훔쳐 간 죄 그 얼마나 크랴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로 잡아 내어 구워 먹고 말테다  <삼국유사 해가海歌>

중국의 고대소설에는 경국지색으로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이들 4명의 미모를 비유하는데, 서시의 침어沈魚는 서시가 호수에 얼굴을 비추니 물고기들이 넋을 잃고 헤엄치는 것을 잊어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다고 한 이야기이고, 왕소군의 낙안落雁은 왕소군의 미모에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가 날갯짓하는 것조차 잊어 땅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폐월閉月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로 초선貂蟬을 지칭하며,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는다.'는 말이다. 수화羞花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주인공이기도 한 당나라의 미인 양귀비楊貴妃의 별칭으로, '꽃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삼국유사에 나오는 우리의 미인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으로 평소에 여러 번 귀신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고, 심지어 남편과 바닷가를 걸어가다 동해 용에게 납치당해 용궁으로 끌려들어 가고 말았다는 이야기인데, 중국의 미인들 보다는 보다 진실적이란 면에서 공감이 간다. 육당 최남선이 금강산과 설악산을 비교했듯이,

금강산은 너무 드러나서 길가에서 술 파는 색시같이 아무나 손잡게 된 한탄스러움이 있음에 견주어 설악산은 절세의 미인이 골짜기 속에 있으되, 고운 모습으로 물속의 고기를 놀라게 하는 듯이 있어서 참으로 산수풍경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라면 금강산이 아니라 설악산에서 그 구하는 바를 비로소 만족할 것이다.“

중국의 미인은 금강산이라면 우리의 수로부인은 설악산일 것이다.

백두대간 태백산에서 발원해 동해로 흐르는 오십천 미인폭포에 이어 오십천이 동해에 합류하는 삼척 임해정 수로부인 이야기다.

신라 33대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순정공에게는 수로라는 절세미인의 아내가 있었는데, 미모가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사람뿐만 아니라 온갖 귀신이나 영혼들도 틈만 나면 수로부인을 납치하려고 하여 남편 순정공은 늘 좌불안석이었고, 수로부인 자신은 이것을 즐기는 듯했다.

순정공이 명주(강릉) 태수로 부임 받아, 아내 수로 부인을 데리고 동해안을 따라 가다가 일행이 삼척 해변에서 잠시 쉬며 점심을 먹을 때였다.

이 길은 예로부터 화랑과 승려들이 주로 지나다니는 서라벌에서 강릉을 거쳐 설악산 금강산까지 이어져 있는 해안길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절경으로, 누구나 시 한 수쯤은 쉽게 지을 수 있는 길이다.

춘풍에 날을 맑아 동해안의 경치가 하얀 모래 해안과 파란 바다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서 무릉도원을 연상케 했다. 높이 수백 길이나 되는 바위 봉우리들이 늙은 등 굽은 소나무와 어우러져 병풍처럼 바다와 맞닿아 있었고 한 다발의 척촉화躑躅花(진달래)가 벼랑끝에서 아름답게 피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 삼국유사에는 척촉화 철쭉이라고 되어 있는데, 필자는 진달래라고 해석함. 통상 철쭉은 독성이 있어 잘 꺾지 않고, 사람의 머리에 꽂거나 화병에 꽂거나 그림에 나오는 꽃은 대체로 진달래. (백두대간의 꽃 참고))

순정공 일행은 점심으로 준비한 주먹밥을 먹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부르자 수로부인은 더욱 주변 기암절벽 풍경에 취했다. 한 잔의 차와 풍경이라! 문득 기암절벽 끝에 핀 진달래꽃을 보고 감탄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나는 처음 본다. 누가 저 꽃을 꺾어줄 사람이 없을까?”

하며 주변 일행들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수로 부인이 자주하는 행동인 듯했다.

일행 모두는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으므로 불가능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침, 수로부인 일행 곁으로 암소를 끌고 가던 늙은 할아버지가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 수로 부인의 미모에 감탄하며 한동안 바위 꽃을 바라보더니, 꽃을 갖고 싶다는 수로부인에게 벼랑 끝 꽃을 따 바치고 싶어졌다. 노인은 암소를 끌고 가던 고삐를 놓고 다람쥐같이 절벽으로 기어 올라가 단숨에 꽃을 따 왔다. 그리고 헌화가를 지어서 꽃과 함께 바치고 홀연히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사라져 버렸다.

그 헌화가는 34자의 짧은 글이지만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紫布岩乎过希/執音乎手母牛放敎遣/吾肸不喩慚肸伊賜等/花肸折叱可獻乎理音如

딛배 바회ᄀᆞᆷᄒᆡ 자ᄇᆞ온손 암쇼 노ᄒᆡ시고

나ᄒᆞᆯ 안디 붓ᄒᆞ리샤ᄃᆞᆫ

곶ᄒᆞᆯ 것가 받ᄌᆞ오리이다. -양주동 해독-

붉은 바위 끝에

암소 잡은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정연찬 풀이-

한동안 수로부인은 진달래꽃과 헌화가를 바친 백발 할아버지에게 감동하여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에게 진달래꽃과 헌화가까지 받은 수로부인은 구름이라도 탄 듯 걸음은 가벼웠고 입에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다시 길을 가던 순정공과 수로부인 일행은 이번엔 아주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다. 동해안 삼척 임해정이란 곳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평소에도 절세미인으로 귀신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었던 수로부인 앞에 너울성 파도가 치더니 바닷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동해용에게 납치당해 그만 바닷속으로 끌려들어 가고 말았다.

놀란 남편 순정공은 땅에 주저앉아 그저 소리만 치면 대성통곡할 뿐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여보 수로 부인. 제발 무사히 돌아오오.”

남편 순정공 혼자 땅바닥에 엎어져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하지만, 바다는 파도만 칠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때 아까 진달래꽃을 따주고 헌화가를 받친 백발노인이 다시 나타나 아내를 빼앗긴 순정공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부인을 찾을 방도를 일러주었다.

쯔쯔, 순정공 너무 슬퍼 마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의 말(중구衆口)은 쇠도 녹인다고 했소. 용궁의 용이라도 어찌 여러 사람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으리오? 동네 사람들을 모두 모아, 해가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바위 언덕을 두드린다면, 용궁의 용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항복하여 곧 부인을 돌려보낼 것이오.”

노인의 말을 들은 순정공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을 모아 해가를 지어 부르며 지팡이로 바위를 두드리니, 과연 동해 용이 수로부인을 돌려보내 주었다.

해가海歌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아내 훔쳐 간 죄 그 얼마나 크랴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로 잡아 내어 구워 먹고 말테다

순정공이 기뻐하며 뭍으로 돌아온 수로부인에게 바닷속 용궁의 일에 관해 물어보았더니. 부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일곱 가지 보물로 꾸민 궁전에는 없는 것이 없었고,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으며, 음식은 맛이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조촐하여 인간 세상의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잠깐이지만 용궁의 생활이 무척 즐겁고 그리운 듯 말했다.
수로부인의 옷과 몸에는 사향 같은 향기로운 향기가 스며 있었는데, 분명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수로 부인의 자태와 용모가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절세미인 이어서, 깊은 산이나 바닷가를 지날 때마다 귀신들에게 납치당하였다고 한다. 산골이건 해변이건 그녀가 지나가는 소문을 접한 사람들은 우연이나 귀신을 가장해, 그녀에게 접근하여 수작을 부리거나, 일단 납치부터 하고 보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는 이야기다. 심신산골이나 외딴 바닷가까지 입소문을 타고 전해진 수로부인의 미모 탓이었으니, 수로부인은 은근히 그러한 사건들을 즐겼던 것 같다.
뭇 사내들 늙은이 젊은이 가릴 것 없이 자신의 처를 노리는 바람에 속 타고 애먹는 사람은 수로부인의 남편인 순정공뿐이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남정네의 손때를 타 순결 정숙한 조강지처의 이미지를 지우게 된 수로부인이다.
수로부인은 자용절대姿容絶代 자태와 용모에서 당대에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절대적 아름다움이었다. 그 정도였으니까 유부녀가 되었어도 남정네들의 정신을 잃게 했으니, 다만 우리의 미모는 중국의 경국지색, 나라는 망하지 않게 했던 것 같다.

동해 오십천 물을 마신 사람 중에는 예나 지금이나 미인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