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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다가가기 > 가곡이야기4.정가(正歌) 그리고 정악(正樂)이란 무엇인가?

작성일 : 2022.10.06 10:22

[가곡 이야기]  4.정가(正歌) 그리고 정악(正樂)이란 무엇인가?

제민이/ 가곡가수, 가곡전수자

 

정악(正樂)이란 말은 매우 혼란스럽게 쓰이고 있습니다. 연구자마다 서로 다르게 정악을 규정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모두 근거가 없습니다. 장사훈 교수는 정악(正樂)1910년부터 영산회상이나 가곡을 지칭하기 위해 새로 만든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렸습니다. 이혜구 교수는 정악이 감정을 억제하는 실내악인 거문고 회상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때 정악은 산조처럼 격렬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음악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도 틀렸습니다. 성경린은 정악을 궁중의 연회와 연향에서 연주하는 아악과 동일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틀렸습니다. 한만영 교수는 정악에 성악으로는 가곡, 가사, 시조, 그리고 기악으로는 현악 영산회상과 보허자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송방송 교수는 정악을 중인의 음악이라고 하여 서민의 음악인 민속악과 대립개념으로 쓰인다고 했습니다. 이 주장 역시 틀렸습니다.

 

**조선 시대에 정악은 올바른 음악이다.

 

조선 시대 내내 정악은 올바른 음악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습니다. 정악은 특정한 장르의 음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음악과 대립되는 개념이었던 것입니다. 정악의 반대말은 음악(淫樂) 또는 속악(俗樂)입니다. 음악(淫樂)은 마음을 혼란케 하는 것이며, 속악(俗樂)은 질이 낮은 것입니다.

 

성종 당시 중국의 사신이 여악(女樂)을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자가 노래하고 춤추는 가무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까, 중국 사신이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에게 여악(女樂)은 정악이 아니었습니다.

 

여악(女樂)은 기녀(妓女)의 악()이므로 기악(妓樂)이라고도 부릅니다. 기악(妓樂)은 남자의 마음을 흥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기악(妓樂)은 속악 즉 질이 낮은 악으로 규정되기도 했습니다. 인조 당시 병조 판서 이귀(李貴)가 상소를 올려 기악(妓樂)을 그대로 두기를 청하였습니다.

 

기악은 속악(俗樂)이므로 정악(正樂)과 같지 않은데, 2백 년 동안이나 폐지하지 않은 것은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妓樂, 乃俗樂也雖與正樂不同, 而二百年不罷, 必有其由,(인조실록 22, 인조 845일 갑인 1번째기사 1630년 명 숭정(崇禎) 3)

 

특진관(特進官) 이세좌(李世佐)은 성종에게 연애 노래와 음란한 음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간청합니다.

 

"요사이의 음악(音樂)은 거의 남녀(男女)가 서로 좋아하는 가사[]를 쓰고 있는데 이는 곡연(曲宴)이나 관사(觀射)에 거둥(擧動하실 때는 써도 무방합니다만, 정전(正殿)에 임어(臨御)하시어 군신(群臣)을 대할 때 이 속된 말[俚語]을 쓰는 것이 사체(事體)에 어떠하겠습니까? -----지금의 기녀(妓女)와 악공(樂工)들은 누적된 관습(慣習)에 젖어 있어 정악(正樂)을 버리고 음탕한 음악[淫樂]을 좋아하니, 심히 적당하지 못합니다. 일체의 속된 말들은, 청컨대 모두 연습치 말게 하소서."

"方今音樂率用男女相悅之詞, 如曲宴觀射, 行幸時, 則用之不妨, 御正殿臨群臣時, 用此俚語, 於事體何如? ----- 今妓工狃於積習, 舍正樂而好淫樂, 甚爲未便一應俚語, 請皆勿習"(성종실록 219, 성종 19813일 갑진 2번째기사 1488년 명 홍치(弘治) 1)

 

특진관(特進官)은 왕의 경연(經筵)에 참여하여 왕을 자문하는 관리입니다. 남녀(男女)가 서로 좋아하는 가사[]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입니다. 곡연(曲宴)은 궁중(宮中)의 작은 연회이며, 관사(觀射)은 임금이, 신하들이 활을 쏘는 것을 구경하고 상()을 주는 행사입니다. 곡연이나 관사에서는 남녀상열지사의 노래를 불러도 되지만, 정전(正殿)에서 국사를 돌볼 때는 그런 노래는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특진관(特進官) 이세좌(李世佐)는 기녀와 악공이 정악을 버리고 음란 악을 자꾸 연습하는데, 속된 가사의 노래를 그들이 연습하지 못하도록 성종에게 건의합니다.

 

**중국에서는 정악을 정성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정악(正樂) 대신 정성(正聲)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예기(禮記) 악기(樂記) 30장은 정성(正聲)과 간성(奸聲)을 대비합니다.

 

간성(奸聲)이 인간에게 영향을 주면, 간성이 나쁜 기운을 불러 그것이 표출된다. 그러면 음악(淫樂)이 일어난다. 정성(正聲)이 사람에게 영향을 주면, 정성이 올바른 기운을 불러 그것이 표출된다. 그래서 화악(和樂)이 일어난다.

凡奸聲感人而逆氣應之逆氣成象而淫樂興焉正聲感人而順氣應之順氣成象而和樂興焉(禮記. 樂記 30)

 

정성은 좋은 소리이며 간성은 나쁜 소리입니다. 간성을 들으면, 듣는 사람에게 음란한 악 즉 음악(淫樂)이 일어납니다. 반면 정성을 들으면, 듣는 사람에게 조화로운 악, 즉 화악(和樂)이 일어납니다.

 

**공자는 악을 바르게 한다.

 

공자는 악()을 바르게 한다는 말을 합니다. 노 나라 애공(哀公) 11년 겨울에 공자는 위() 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공자가 이상(理想)이라고 여기던 주() 나라의 의례는 노 나라에 있었으나, 시와 음악은 상당히 훼손되거나 순서가 뒤바뀌었습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위() 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 음악(音樂)이 바르게 되어 아()와 송()이 각기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子曰 吾自衛反魯然後 樂正 雅頌 各得其所 (論語 9-14)

 

아송(雅頌)에서 아()는 주나라 왕실의 향연에서 연주하던 악곡이며, ()은 종묘에서 제사지낼 때 연주하던 무악(舞樂)입니다.

 

**20세기 초, 정악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좋은 음악, 바른 음악이라는 의미의 정악(正樂) 개념은 일제 시절에 단체의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1909년 조양구락부가 발족 되자 이것을 돕기 위한 후원회가 조직됩니다. 조양구락부의 후원회는 정악 유지회(正樂維持會)입니다. 이 단체의 목적은 이름에 명시되어 있듯이 정악 유지입니다. 정악 유지회는 12명의 발기인으로 19112월 설립되었습니다. 정악 유지회의 취지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나 기중(其中) /정음/란성(有正音亂聲)하니 과연(果然) 성쇠/흥폐(盛衰興廢)의 관계(關係)가 지/중차대(至重且大) 한즉 차()는 현인지사(賢人志士)의 지음/교정(知音較正)이 아니면 기/정음/아악(其正音雅樂)을 난이유지(難以維持) ()로 금()에 일회(一會)를 조직(組織)하고, 명명/(命明曰) 정악유지회(正樂維持會)라 하니--

 

간단히 줄이면, 취지문은 정음아악(正音雅樂)을 유지하기 위해 단체를 조직하고 이름을 정악 유지회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정음과 아악은 같은 의미입니다. 여기서 아악은 중국 송나라의 궁중 예식음악인 대성아악(大晟雅樂)이 아니라 우아한 음악, 올바른 음악이란 의미입니다.

 

(정악유지회의 발기인 12명은 모두 정계의 거물입니다. 이준용(李埈鎔 1870~1917)은 흥선 대원군의 손자이며, 고종의 조카인데, 1894년 내무대신 서리 등을 지냈습니다. 일제의 조선 병합 후, 그는 이준공(李埈公)의 칭호를 받고 육군 참장을 지냈습니다. 박영효(1861-1939)는 철종의 부마로서 1984, 1985년 제1, 2차 갑오개혁을 추진하였고 1907년 이완용 내각에서 궁내부 대신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일합방 후 일본으로부터 후작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윤택영(1866-1935)은 순종비인 순정효 황후(純貞孝皇后, 1894 ~ 1966)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조선병합 후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습니다. 민병석(1858-1940)은 일제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조중응(1860-1919)도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습니다. 윤덕영(1873- ?)은 순종비 순정효 황후의 삼촌이며, 일제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유길준(1856-1914)은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으나 거절하였습니다. 이지용(1870-?)은 일제로부터 백작의 작위를 받았습니다. 민영찬은 판서를 지낸 민영환(閔泳煥)의 동생인데, 1910년 이후 정계로부터 은퇴했습니다. 박기양(1856-1932)과 김종한은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습니다. )

 

조양구락부는 19116월 조선정악전습소로 발전합니다. 이 학교에서는 조선악 뿐 아니라 서양악도 가르쳤습니다. 홍난파는 조선정악전습소 서양악과에서 성악과 바이올린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조선정악전습소가 지향하는 정악은 조선악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서양악도 포함합니다. 조선악 중에서 좋은 음악이 있고 나쁜 음악이 있습니다. 서양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악이든 서양악이든 좋은 음악, 바른 음악은 정악인 것입니다.

 

**정악 기준의 변화

 

정악은 좋은 음악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좋은 음악일까요? 그것은 시대마다 변화합니다. 조선 정악 전습소의 목적을 보면, 정악의 기준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전진(前進)하는 용기(勇氣)를 고발(鼓發)하여 교제(交際)하는 심정(心情)을 통창(通暢)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제 정악이란 전진하는 용기를 격려하고, 세상과 교류하는 심정을 밝게 하는 음악입니다. 이전에는 정악이 조화로운 음악, 절제하는 음악으로 규정되었습니다. 반면 조선정악전습소는 용기와 지성의 관점에서 정악을 이해합니다. 인간은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자연과 사회 속에서 인간이 잘 살아가려면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악은 용기를 북돋우고 지성을 밝게 하는 음악입니다.

 

정악은 올바른 음악, 좋은 음악입니다.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좋은지는 상황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전통사회에서는 조화와 절제가 정악의 특성이었습니다. 반면 20세기 현대 한국인에게는 용기와 지혜의 음악이 정악입니다. 정악의 의미는 같으나 기준은 변화한 것입니다. 만약 20세기 초반에도 조화와 절제를 정악의 기준으로 삼으면 그것은 시대착오입니다. 옛날 농경사회에서 정악은 감정을 조절하고 마음을 화평하게 하는 음악이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현대 한국인에게는 새로운 정신이 필요합니다. 현대사회는 예전에 비해 경쟁이 더욱 치열하고, 더욱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이제는 조화와 절제가 아니라 용기와 지혜가 더욱 필요합니다. 조선정악전습소가 지향하는 정악은 과거의 정악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부응(副應)하는 새로운 정악입니다.

 

**정가는 가곡, 가사, 시조가 아니다.

 

요즘 정가(正歌)라는 말이 가곡, 시조, 가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정악전습에서도 정가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습니다. 정가라는 말은 최근에 만든 것입니다. 조선의 전통 성악곡은 가곡, 시조, 가사 외에도 많습니다. 판소리, 민요, 잡가도 전통 성악곡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가곡, 시조, 가사만을 정가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정악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규일은 조선정악전습소에서 가곡, 시조, 가사를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정악 전습소에서 가곡, 시조, 가사를 교수하였으니 그것들이 정악의 일종인 정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조선정악전습소에서는 조선악뿐 아니라 서양악도 가르쳤습니다. 조선정악전습소에서 교수하는 종목이 정악이라면 서양 성악도 정악이고 오르간 음악도 정악이고, 바이올린 음악도 정악입니다.

 

정악은 좋은 음악이듯이 정가는 좋은 노래입니다. 어떤 노래이든 좋은 노래는 정가입니다. 가곡에도 좋은 노래가 있고, 나쁜 노래가 있습니다. 가곡에서 좋은 노래만 정가이지 나쁜 노래는 정가가 아닙니다. 판소리에도 좋은 노래도 있고, 나쁜 노래도 있을 것입니다. 판소리 에서도 좋은 노래는 정가입니다. 뿐만, 아니라 서양 성악 그리고 대중가요도 좋은 노래는 정가입니다. 가곡, 가사, 시조만이 정가가 아니라 좋은 노래는 모두 정가인 것 입니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합니다. 정악을 옛날의 기준에 묶어두면 안됩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정악 그리고 새로운 정가를 요구합니다.

 

오늘은 정악과 정가의 개념을 토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