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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10.03 12:02
대학의 위기와 국가균형발전
/윤일현
대학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수도권 명문대학은 대학의 본래 목적과 이념을 구현할 수 없어 문제이고, 지방대학은 생존 자체가 위기라고 아우성친다. 대학과 학문의 위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나 있었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1883~1969)의 시대도 대학은 위기였다. 그는 유대인 아내와의 이혼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나치로부터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그는 12년간의 고통스러운 나치 지배를 겪고 나서 나치에 굴복당한 대학의 이념을 바로 세우기 위해 1945년 소책자를 발간했다. 그는 대학 교육은 ‘전인교육, 직업훈련, 연구’ 등으로 구성된다고 했다. 이 세 가지는 대학 교육의 핵심 요소지만, 어느 하나만 분리해 특별히 강조하면 대학의 존립은 위태로워진다고 했다. 학문의 생명력은 전체와의 관계에 있다. 대학은 university로 표기한다. 하나의 우주라는 뜻이다. 전체성과 결별한 학문과 학생을 생산하는 대학은 대학의 목적과 기능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은 ‘근원적인 지적 욕구를 실현하면서 학문적 견해가 일생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그 기초를 닦고 지식의 통합을 추구’하는 곳이다.
자본이 학문을 지배하고 학문의 다양성과 전체성이 점점 상실되고 있는 오늘의 대학은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실용적 잣대가 지나치게 힘을 발휘하고 직업과 관련된 전문화만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그것은 학문의 위기를 초래한다. 의사, 법조인, 금융인, 공무원, 언론인 등 서로 다른 특성과 역할을 가진 모든 직업은 삶의 특정 부분을 다루지만, 사회 전체 영역과 동시에 연결돼 있다. 직업적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부분과 전체, 특수와 보편을 동시에 바라보며 전체와의 조화와 균형을 생각할 수 있는 기초 교양을 갖춰야 한다. 기본이 결여된 사람이 모여 있는 사회는 극단에 치우치기 쉽고 건설적인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학문과 대학의 목적, 그 존립 근거를 기술한 야스퍼스의 ‘대학의 이념’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현재적 가치가 느껴진다.
수도권은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11.8% 차지하고 있지만, 전체 인구의 50%, 100대 기업 본사의 95%, 전국 상위 20개 대학의 80%가 집중된 곳이다. 수도권 집중은 효율성의 이득을 훨씬 초과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역에 전가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가로막는다. 2023학년도 수시 원서 접수가 마감되자 지방대학 소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기를 느낀 지방 대학들은 자율적인 정원 감축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방대학 상당수는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어 분위기가 무겁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원감축의 근본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대학의 구조조정에 경제 논리와 경쟁력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지방대는 더욱 위축돼 고사할 가능성이 높다. 지방대는 지역 경제 활성화의 핵심 축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방대는 지역 발전을 위한 지적 인프라의 전진 기지이면서 동시에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소비 주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냉혹한 경쟁 논리를 무조건 적용해 승자독식 구조를 조장하거나 방치한다면 균형발전이란 말 자체가 의미 없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중앙정부와 교육 당국이 나서야 한다. 수도권 대학도 정원을 합리적인 선에서 줄여야 한다. 모집인원을 줄이는 대신 등록금 인상을 허용해주는 등의 혜택을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지방대학도 위만 쳐다보며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지역인재 육성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해 보다 매력적인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 정서에 호소하며 무조건 지역 대학을 살려야 한다는 여론몰이를 해서도 안 된다. 현실을 직시하고 강도 높은 자구책과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해 지역민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야 한다. 지역 대학도 특화된 교육프로그램으로 수도권 대학과 맞서야 하며, 교육 서비스의 질을 높여 지역 인재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 지역 업체들과 산학 협력 관계를 맺고 졸업생이 전공을 살려 취직할 수 있게 지역 밀착 맞춤식 교육을 통해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 지역 대학의 소멸은 지방 소멸과 직결되기 때문에 대학, 지자체, 지역 경제 주체, 지역민 모두가 위기를 공감하며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