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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재미로 보는 주역> 33.군자는 표범으로 바뀌고, 소인낙성(小人樂成)

작성일 : 2022.09.30 11:13

군자는 표범으로 바뀌고, 소인낙성(小人樂成)

/양선규

 

후회 없이 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 누구의 인생이라도 만족보다는 후회가 많은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습니다. 속 모르는 젊은 후배 교수가 늙어서는 선생님 같이 살고 싶습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넵니다. 고맙기 그저 없습니다만 저는 그냥 웃고 맙니다. 제 썩은 속을 모르니 하는 말일 것입니다. 제가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면 강물처럼 후회가 넘쳐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괜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닐는지, 무언가 새로이 일을 도모할 때마다 후회 콤플렉스가 작동합니다. ‘공연히 후회거리 하나 더 붙이는 건 아닐까?’라는 염려가 늘 뒤따릅니다. 그런 걱정이 앞서서 생각만 하다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이 여럿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외에 마음에 드는 집 하나 지어서 유유자적하며 살자라는 희망입니다. “살아생전에 집 세 채 지으면 제 명에 죽지 못한다라는 속설의 공포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물론 살아오면서 후회만 남긴 것은 아닙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별 기대 없이 시작했으나 끝이 창대한것도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들어와서 매일 한두 편씩 글을 쓴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주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결코 후회 없는 일입니다. 삶의 지평이 많이 넓어진 것 같습니다. 가식 없이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몇 십 억의 재산보다도 더 가치 있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후회가 없으니 앞으로도 그대로 갈 것 같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큰 생각 없이 재미로 시작한 일이라 후회의 빌미를 주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오늘도 평소 하던 대로 주역 한 구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 ()은 시일이 지나야 이에 믿으리니, 크게 형통하고 곧음이 이로워서 후회가 없어지느니라. (革已日乃孚 元亨利貞悔亡) -- 저 백성이란 평상시에는 함께 할 만하되 함께 변화에 대응하기는 어렵고, 이루어놓은 것을 같이 즐길 수는 있으되 일을 도모하도록 꾀함에는 같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혁명의 도는 그 날로 믿지 못하고 시일이 지나야 이에 믿는다. 믿은 후에야 원형(元亨), 이정(利貞), 회망(悔亡)’을 얻을 수 있다. 시일이 지났는데 믿지 않으면 혁명이 부당한 것이다. 회린(悔吝)은 변동하는 데에서 생겨나는 것인데, 혁명이 합당하면 그 후회가 없어진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 375]

 

주역은 작으나 크나 혁명 좀 해 보신 분들에게도 좋은 책입니다. 마흔아홉 번째 택화혁’(澤火革), 혁괘(革卦)의 경문을 해설하는 서두가 그걸 보여줍니다. ‘혁명이 삶의 한 과정임을 생각하고 읽으면 더 깊이 와 닿는 설명입니다. 사람이 사는 일이 매번 곧 혁명하는 일이기에 예순네 개의 괘 중 하나로 혁괘가 취택된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인생만사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나 가치를 엄정하게 간추린 것이 주역 64괘이니까요. ‘백성에 대한 언급이 재미있습니다. 그들이 이루어놓은 것을 같이 즐기는존재이지 일을 도모하도록 꾀함에 같이하기에는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주역은 아무래도 백성들이 읽을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영웅들이 나타나서 그들을 선동하고 감화시키기 전에는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영웅들이 몇 사람 죽어나가야 백성들은 움직입니다. 그만큼 이해타산에 밝고 제 몸을 아낍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큰 후회를 남긴 몇 가지 일들이 결국은 제 주변의 백성들을 제대로 선동하고 감화시키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제 주위에 낯을 고치는사람들이 유독 많았던 것은 결국 저의 무사안일과 나태, 무능 때문이었습니다. 효사(爻辭)에서는 상육(上六)군자는 표범으로 변하고 소인은 낯을 고치니(君子豹變 小人革面)’가 심금을 울립니다.

 

... 변화의 마침에 거해 변화의 도가 완성되었으니, 군자가 이에 처함에는 그 문채(文彩)남을 이루고, 소인은 그 이뤄놓은 것을 좋아하므로 낯을 바꿔 위를 좇는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 381]

 

소인은 그 이뤄놓은 것을 좋아하므로 낯을 바꿔 위를 좇는다(小人樂成 則變面以順上也)”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재삼 확인하는 것으로 오늘의 주역 읽기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표범이 되기를 기대하고 높은 자리에 앉혔더니 고작 하는 일이라곤 낯을 바꾸는일뿐인 나라 일꾼들을 종종 봅니다. 혁명의 문채를 자랑하지 않고 고작 한다는 일이 이뤄놓은 것을 좋아하며 사리사욕을 탐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혁명을 완성하지 못하고 또 망합니다.

 

안으로 시선을 돌려도 매 한 가지입니다. 남을 원망할 처지가 아닙니다. 제 개인의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길게 보면 표범이 되기보다 낯을 바꾸는일에 더 능숙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도 있었고 타고난 반골(?) 기질 때문에 열두어 살 때부터 늘 혁명을 꿈꾸고 살았습니다. 운이 좋아 젊어서 연전연승, 제 나름의 혁명이 성공할 때는 한때 표범인 양 했으나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나이 들면서 식솔을 거느리면서 낯을 바꾸는일이 훨씬 잦았습니다. 돌아보면 후회가 가득합니다. 오늘 주역을 읽으면서 다시 혁명 앞에 섭니다. 제대로 변화의 도를 완성시키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립니다. 몸에도 마음에도 군살이 많아 우둔하기 짝이 없습니다. 곳곳에 배어있는 군살부터 빼야겠습니다. 인생 정리기에 제가 새로 도모하는 일이 두어 가지가 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고하겠습니다). 하나는 시절 운이 좋아 낙성(樂成)’하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다른 하나는 아직 변화의 마침에 거함(居變之終)’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역시 낙성(樂成)’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마지막 혁명이니 부디 표범이 되어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