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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해의 시로 여는 세상

<김종해의 시로 여는 세상> 내 어머니

작성일 : 2022.09.24 10:47

내 어머니 /김종해

 

 

 

일학년 47교시 수업을 마치고

원대동 철길 옆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중학교의

비탈진 내리막길 교문을 나와

낡은 도회의 상가와 점포를 지나치고

경부선 철길 건널목과

좁은 오르막 골목길을 굽이돌아

집으로 귀가한다.

가여린 소년이

방과 후

터럭터럭 걸어가서 도착한 곳은

본채에서 ^^자로 달아 낸

숭숭 뚫린 시멘트 블로크 벽에

슬라브 지붕을 얹힌 볼품 없는 집이다

시골집 초가삼간 보다 못한 싸구려 무허가집이다

 

부억을 겸한 연탄 아궁이를 밟고

하나뿐인 출입 방문을 당기고

들어가면

젊은 어머니와

딸 둘

외동 아들 네 식구가 살아 가는

단칸 세방이다

그나마

신문지만한 창문이 남쪽으로 하나 달려있어

대낮에도 간신히 암굴신세는 면한 공간이다

방은 텅 비워있고 외로움만 남아있다

 

낮에 까먹은 도시락으로 배는 아까부터 고프다

엄마가 돌아와서 밥 해주려면 어스럼 저녁이 되도록 기다려야한다 . 오늘 저녁도 밀가루 수제비죽이지만

어린 세 자식 굶기지 않을려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보리밥 한 솥지어 놓고 채소밭에 일당 받으려고 일하러 나가셨다. 허리 굽혀 파단 묶고 시금치 베는 중노동, 하루 품삯이 네 식구 보리밥, 수제비정도지만.

소년은 책가방을 방 윗목에 던져두고 밖으로 나온다. 유월 중순의 오후, 벌써 한여름이다

이씨 아저씨 집으로 가 양철 물동이 두개를 물지게로 진다. 경부선 철길 옆에 있는 우물에 가서 물을 길러 오기 위해 비탈진 좁은 골목을 손살 같이 내달린다. 물 한 동이에 5원으로 한번 가고 오면 십 원을 받는다.

한 달에 스물 서너 번 물을 길러와 월200여원 정도 수입이다.

3학년 때는 진학공부 한다고 그만 두었다.

 

일 년 전 초봄에 가야산 남쪽 기슭의 두메산골 수륜면 오인동을 떠나 대구의 외진 변두리인 비산동으로 이사왔다.

100명도 안되는 초등학교에서 좀처럼 합격이 어려운 대구에 있는 공립중학교에 합격해서다.

아홉 살도 되기 전 꼴머슴으로 시작해서 스무 마지기 논, 물레방아 정미소, 한 정보 산 산판을 일구어신 내 아버지, 초가삼간 오두막집 한 채와 논 다섯 마지기만 남겨둔 채 마흔 세 살 에 이 세상을 떠나 신 아버지를 그리워하기에는 원망만 많은 세월이다 .

먹여 살리기 힘들다고 아홉 살 많은 큰누이는 바겐세일 시집보내고.

일구월심 외동아들 공부시키기 위해서.

세살 많은 두째 누나는 공장에 취직하고

세살 적은 막내 누이는 초등학교4학년에 영문도 모르고 대구로 전학한다.

 

어머니, 보고 싶은 우리 어머니

열다섯 살에 열 살이나 많은 가난한 나이 든 농촌총각에 시집와서 서른 세살에 청상이 되신 내 어머니

한 평생 자식들 위해 고생만 하시다 여든 넷 십이월에 아버님 곁으로 가셨다. 내 어머니 저 세상가신지 5년하고 8개월이나 지났는데 꿈에서 조차 한 번 안 오신다.

자식에 대한 원망을 저 세상까지 가져가시지는 않았는지. 직접 집에 모시고 간병해드리지 못한 불효가 가슴을 친다.

마지막 4, 노환의 고통과 외로움을 보살펴 드리지 못 한게 지금에 서야 내가 얼마나 모자란 인간인지 하고 뼈 속까지 회한이 들게 한다.

 

-2015.은산의 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