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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2.10 01:20
<부문2-9>
최진국 시인의 일상의 풍자로서의 시쓰기
-최진국 시집 『구름 위에 걸터앉아』의 특성
지난 해(2021년) 데뷔한 최진국 시인이 그 동안 모아둔 작품으로 시집을 내겠다면서 원고를 보내왔다. 최 시인의 작품은 짧은 것이 특색이다. 그러면서 비유를 바탕으로 한 이미지 전개보다 언어유희(Pun)를 동원한 기지에서 오는 신선함에서 감동을 받게 한다. 따라서 시적 제재가 유년기의 추억일 때에는 유머를 동반한 미소를 머금게 하고 현실일 때에는 풍자에서 오는 통쾌함을 느끼게 한다. 최 시인의 이러한 경향은 시가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이 시대에는 오히려 독자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시가 의식의 흐름에 의한 시인들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하는 경향으로 인하여 독자들이 읽기 힘들어 하는 현실의 타개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가)반송날인 표시
선명하게 찌힌
눈물로 썼던 편지
되돌아 왔네요
자세히 보니
눈물이 아직까지 마르지 않았어요?
둘 곳 없는 내 마음의 그리움
눈물이 다 마를 때까지
반송된 편지 속에
함께 놔 둡니다.
-「그리움 1」 전문
(나)찬바람이 불면
온몸이 시린 것이 아니라
사그라들지 않았던 그리움이
텅 빈 가슴을
더욱 쓰라리게 하네
-「그리움 9」전문
.
1부에 편집된 「그리움」 연작시 14편 가운데 두 편을 골랐다. 최 시인의 작품 가운데는 이러한 ‘사랑과 이별’에 대한 시편들이 여럿 있다. 이러한 시편들로만 엮어진<사랑시집>을 엮어보는 것도 독자를 획득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리움」연작시는 앞에서 말한 짧은 시이면서 그의 언어 에 대한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가)「그리움」은 실연의 아픔을 반송된 편지를 제재로 하여 간절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눈물까지 흘린 실연의 아픔이 얼마나 오랫동안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을 반송된 편지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시적 성공을 어느 정도 거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나)「그리움 9」는 찬바람이 불어 온몸이 시린 자연현상에 그리움이 첨가되면 그 시린 것이 배가된다고 보아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한낮의 중년부인
대청마루에 반쯤 걸터앉아
갓난아기 젖 물리며
쏟아지는 졸음과
아름다운 연애한다
넓은 뒷간 밖의 암 닭
대 여섯 개 알 품고
따스한 햇볕 받으며
쏟아지는 졸음과
사투 벌인다.
-「나른한 오후」 전문
제2부에 편집된 「나른한 오후」는 요즈음의 풍경이 아니다. 아마 최 시인의 유년 시절에 본 풍경을 시 속으로 소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첫 연은 중년여인이 대청마루에서 갓난아기에게 젖 물린 채 조는 장면이고 둘째 연은 넓은 뒷간 밖에서 닭이 알을 품고 조는 장면이다. 이 두 장면이 한 공간 그것도 시골의 대가집 대청마루의 열린 공간과 보이지 않는 뒷간 밖에 있는 닭장에서 병아리를 만들기 위해 알을 품은 채 졸고 있는 암탉이 대조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이질적인 두 장면은 새롭게 탄생한 혹은 탄생할 생명에 대한 사랑 즉 모성애를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언어유희의 경지는 아니지만 ‘연애’라는 시어와 ‘사투’라는 시어로 인하여 독자들은 따뜻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온 동네 고층 아파트
안개구름으로 단지 숲 이룬다
구름 위 걸터앉아
한잔의 원두커피 내린다
의사인 양 하얀 가운 걸친 안개구름
빼꼼 열린 아파트 베란다 창문 사이로
슬며시 X레이 투시하듯 들어와
내 앞에 안긴다
부웅 뜬 기분이 야릇하다
안개구름 숲으로 된 온 동네 아파트
아직도 깊은 잠에 취해 있다
-「구름 위에 걸터앉아」 전문
제3부에 편집된 「구름 위에 걸터앉아」는 최 시인의 데뷔작이기도 하고 이 시집의 표제작이다. 그만큼 그의 현실에 대한 태도와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부산의 해운대 바닷가에 있는 고층 아파트의 경우 구름이 중간에 걸리기도 하고 안개로 인하여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살기에 쾌적한 현상은 아니다. 심지어 호흡기 환자들의 경우 습도과다로 인하여 건강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렇게 바다에 안개가 잦은 것은 기후변화 즉, 바닷물 온도의 상승과 해수면 상승에서 오는 생태위기로까지 확대해석하기도 한다.
최 시인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그러한 위기의식에서 초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사물에 대한 여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정독하여보면 결코 이러한 자연현상에 대하여 무심한 것 같지는 않다. ‘부웅 뜬 기분이 야릇하다’는 부분이 그러한 현상에 신경을 쓴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아파트 안으로 구름이나 안개가 들어오는 것에 무심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아파트 주민들은 무심하여 마지막 행처럼 아직도 깊은 잠에 취해 있는 것이다. 크게 흥분하지 않고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것이 바로 최 시인의 자연현상이나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모순을 비판하는 태도이다.
(가)인생은 연극이라던데
한 번도 주인공
못해 보았는데?
-연극 인생」 전문
(나)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학생에게
학생, 넌 아비 어미도 없나?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다그치는 노인
예, 없어요!
둘 다 죽은 지 오래 됐어요!
학생이 통명스럽게 대답했다.
- 「눈치 없는 학생」전문
(다)강원도 동강 나루터
친구와 래프팅 즐기다
작은 실수로 보트가 전복되고 말았다
전복된 책임 서로 서로 전가하다
이십년 우정 단번에 동강나고 말았다
그 후 다시 우정을 이어 갔지만
예전 같지 않으니?
-「깨어진 우정」 전문
이 세 작품은 4, 5, 6부에서 그 경향을 대표하여 뽑은 작품이다. 이 작품 모두 언어유희 성격이 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가)「연극 인생」의 경우 ‘ 인생은 연극이다‘라는 격언을 시적 제재로 삼았다. 연극이라면 주인공이 있을 것인데 시적화자는 한 번도 주인공을 못해 보았다는 진술로 소외자의 비애를 형상화하고 있다.
(나)「눈치없는 학생」의 경우 요즈음 길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청소년의 흡연문제를 고발한 작품이다. 사실 요즈음 츱연하는 청소년을 훈계하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 질러 훈계하는 풍경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나 최 시인의 경우 개탄스럽게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을 창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아비, 어미도 없나?‘라고 꾸짖는 어른에게 고아인 학생이 “예 없어요!’라고 응수하고 ‘둘 다 죽은 지 오래 댔어요!”라고 응수하는 학생의 반응이 바로 언어유희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둘 다 죽은 지 오래 왰어요!’라는 퉁명스러운 대답하는 것에서 학생의 고아로서의 불만과 막 돼먹은 삶의 자세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현실을 풍자하는 경향의 작품에서 최 시인의 개성이 드러난다.
(다)의 경우, 동강에서 친구끼리 레프팅하다가 보트 전복 사고의 책임문제로 다투다가 우정이 동강났다고 진술함으로써 언어유희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동강’이라는 동음이의어의 효과를 살리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최 시인의 다음 시집에서 이별의 슬픔과 유년시절의 추억과 현실 풍자가 더욱 견고한 이미지로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의 짧은 시편 역시 더욱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