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최상윤의 순우리말 사전

최상윤의 순우리말 사전

<금주의 순우리말>151-잠포록하다

작성일 : 2025.02.10 01:15

 

<금주의 순우리말>151-잠포록하다

/최상윤

 

 

1.강샘 : 강새암. 시샘하는 성질.

2.강술 : 안주 없이 마시는 술.

3.강울음 : 억지로 우는 울음.

4.날탕 :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 -건깡깡이. 일을 마구잡이로 하는 사람이나 그런 짓. 재물을 마구 없애거나 함부로 부수는 사람이나 그런 짓.

5.대물부리 : 대로 만든 담배물부리.

6.대미 : 약과, 다식과, 타래과, 만두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7.말머리아이 : 결혼하자말자 곧 배서 난 아이. 옛날에는 결혼할 때 말을 타고 갔으므로 말머리결혼 초의 뜻이 된다.

8.받힘술집 : 술을 만들어 술장사에게 파는 일을 업으로 하는 집. -바침술집.

9.살년 : 큰 흉년. 한자말 살년(殺年)’에소 온 말.

10.알항아리 : 아주 작은 항아리.

11.잠포록하다 : 날씨가 흐리고 바람기가 없다.

12.초사리 : 그해에 처음으로 잡혀 시장에 들어오는 첫 조기.

13.툽툽하다 : 국물이 바특하여 묽지 아니하고 톡톡하다. >톱톱하다.

14.풀떼기 : 잡고 가루로 풀처럼 쑨 죽. 또는, 잡곡의 날것을 매에 갈아 쑨 죽. -풀떡.

15.해자 : *어떤 일을 하는 데 드는 돈. -비용. 경비=비발.

 

 

나의 소년시절엔 <625 동란>에다가 살년이 겹쳐 온 백성 전체가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겼다. 우리 가족도 풀떼기로 한 끼를 넘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알항아리엔 비상 쌀 한 되 정도는 최후 수단으로 비축되어 있었다. 간혹 조금의 여유가 있는 날에는 툽툽한찌개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모처럼 저녁 만찬의 즐거움도 가져보기도 했다.

 

그런데 고교 졸업 후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 떠돌이 생활로 입영 통지서를 받지 못한 나는 자신도 모르게 군 기피자가 되어 있었다. 때마침 <516 군사혁명>으로 주어진 자수기간에 입영하여 만 3년의 군필을 했다.

매끼 콩나물 국밥이지만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식비 해자없이 굶지 않고 먹어보기는 청년기 중 이때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비록 밥이 조금 부족했지만.

 

제대 후 부산교대에서 동아대학교로 전입학하였다. 그리고 어머님을 모시고 힘겹게 살아가는 여동생들의 힘을 들어주기 위해 동생들의 전셋집을 나와 나는 입주 과외 알바를 시작했다.

일류 중학교, 일류 고교 혹은 명문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 나의 임무요 그들의 희망사항이었다. 그런데 남의 집 입주생활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학생 당사자와 나와의 관계, 학부모와 나와의 관계 그리고 성격, 환경 등 제반 여건이 조화를 이룰 때는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갈등과 불만이 형성되고 이러한 난제로 나는 번민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울적한 번민을 해결하기 위해 음악실을 찾았다. 대게의 경우 <운명>교향곡 4악장을 들으면서 용기백배하여 힘차게 걸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음악으로도 나의 분분한 갈등을 해소시키지 못할 때는 강울음으로 한()을 씻기 위해 조용하고 적막한 하단 갈밭으로 갔다. 다 큰 사내놈이 아무 데서나 함부로 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단 그곳으로 갈 때는 술값이 조금 헐한 받침술집에서 강술을 마시고 갔다. 날씨야 잠포록해도좋고, 가을 푸른 하늘이면 더욱 좋았다. 그 갈밭 속에서 손깍지를 끼고 반듯이 누워 파란 하늘을 응시하고 있으면 내 눈가엔 어느 듯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대게의 경우 여기서 눈물로 정화된 마음으로 알바의 집으로 귀가하게 된다.

 

그런데 극히 드물게 강울음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때는 나는 당감동 화장터로 향했다. 그곳에는 삶과 죽음의 이원적(二元的) 세계가 항상 공존하고 있었다. 인생의 마지막이 한줌의 재로 사라지는 현장에서 이승의 갈등과 번민과 울분과 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철학자가 된 양 싱긋이 웃으며 화장터 언덕길을 가볍게 내려오고 있었다.

 

일 년짜리 과외 입주 알바가 끝나면 다음 알바가 정해질 때까지 나는 집도 절도 없는 날탕이 된다. 이때 싹 턴 <가진 자>에 대한 강샘은 내 불혹(不惑) 때까지 <둔석>의 마음과 작품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둔한 돌 <둔석>인지도 모르겠다.

<문학평론가/ 동아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