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작성일 : 2022.08.13 09:32
자리 바꿔 앉아 보라
/윤일현
맨 앞자리는 성가시고 불편하다. 심지어 위험하기도 하다. 학창 시절 교탁 바로 아래 학생은 자주 칠판을 지워야 했고, 분필 가루를 많이 마셨다. 질문과 잔심부름의 우선적인 표적이기도 했다. 어느 수학 시간이 생각난다. 새 단원 첫 시간이었다. 차렷 경례를 마치자마자 선생님은 맨 앞에 앉은 나더러 교무실에 가서 출석부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5층 서쪽 끝 교실에서 1층 중앙에 있는 교무실까지 왕복은 아무리 빨리 걸어도 몇 분이 걸렸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돌아왔다. 선생님은 내가 없는 시간에 도입부를 설명하셨다. 그 후의 수업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선행학습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날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하룻저녁을 고투해야 했다. 앞자리의 불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딴짓을 할 수 없고 심지어 침 튀김과 담배 냄새까지도 감당해야 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무조건 앞자리를 싫어한 것은 아니다. 실력 있는 선생님의 공개 특강은 서로 앞에 앉으려고 책이나 가방을 미리 올려두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 나의 간절한 소망 중의 하나는 뒷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키가 작았다.
인생은 자리싸움이다. 사람들은 맨 앞자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원하는 자리를 얻고 난 뒤에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긴장된 삶을 산다. 오픈 런(open run)이라는 말을 최근에야 알았다. 백화점 명품코너에 들어가기 위해 새벽부터 진을 치고 있다가 셔터가 올라갈 때 그 밑으로 머리 숙여 기어들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한다. 그렇게 구한 명품 가방을 들고 도도한 자세로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왠지 씁쓸하다. 가요계나 스포츠계 스타의 사인을 받기 위한 위치 선정 싸움도 장난이 아니다. 신호등 앞에 가면 다 서야 하는 데 우리는 기를 쓰고 앞지르기한다. 인간 사회의 많은 불화는 자리 때문에 발생한다. 자신이 기대하는 자리에 앉지 못할 때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 많다. 알찬 행사 진행보다는 자리 배정 같은 본질 외적인 의전 문제로 힘을 빼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대접받을 때는 앞자리, 일할 때는 뒷자리를 선호하는 대표적인 직업이 국회의원이다. 국회 본회의장 좌석 배치도는 우리 정치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여야를 막론하고 당 대표와 원내대표, 4선 이상의 중진, 초선이라도 대통령 후보를 지낸 비중 있는 의원 등은 의장석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면서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뒤쪽에 앉는다. 뒤로 갈수록 본회의장 입장과 퇴장이 자유롭고 카메라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장점이 있다. 선호도가 낮은 앞줄에는 주로 초재선 의원이 앉는다. 지도부와 다선 의원들은 뒷줄에 앉아서 앞에 있는 초재선 의원을 내려다보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다. 지금은 국회선진화법으로 물리적 몸싸움이 거의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몸싸움이 발생하면 앞줄에 앉은 초재선은 공격 선봉 요원으로 가장 먼저 의장석으로 돌진해야 했다. 다선 뒷좌석은 1948년 제헌국회 이후 지금까지 관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도 그런 것은 아니다. 영국은 지정석이 없다. 긴 벤치에 다닥다닥 붙어 앉는다. 다선이 맨 앞자리에 앉고 초선은 뒷자리에 앉거나 자리가 없으면 서 있어야 한다. 북유럽 국가 대부분은 지역별로 앉는다.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국가에서는 여야가 섞여 앉으며 다선 의원이 앞에 앉는다.
정치판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자리 배치를 다시 해보라. 한국 정치는 지금 실망의 단계를 넘어 전 국민이 화병을 앓게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냉전 등의 변수로 물가는 치솟고 무역수지도 적자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야 정치집단은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며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 지금 국회는 무책임과 책임 전가, 무사안일과 보신주의, 눈가림과 졸속, 적반하장과 후안무치의 상징이 되고 있다. 국회 본회의장 좌석 배치를 바꿔보라. 지정석을 폐지하고 오는 순서대로 앉게 하고는 출석 상황을 매번 국민에게 공개하라. 아니면 다선 의원이 맨 앞줄에 앉아 누구보다 진지하게 회의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라. 뒷줄에서 휴대폰 질을 하다가 카메라에 잡히는 것과 같은 한심한 짓거리를 인제 그만 보고 싶다. 여야가 따로 말고 섞여 앉아 국정을 논해 보라. 팔꿈치를 부딪치며 잡담이라도 나누는 사이여야 협치의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국민이 오죽 답답하면 앉는 자리까지 바꿔보라 하겠는가.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