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작성일 : 2022.07.22 09:38
방학이다
/윤일현
성공담은 일반적으로 판에 박힌 전형성을 가지며 과장되기 쉽다. 한 다리를 건널 때마다 살이 붙어 황당한 신화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는 신드롬 수준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가 이룩한 학문적 성취 과정이 기존의 성공 문법에서 다소 벗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열광한다. 그의 성공담 역시 과장되기도 하며 신화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 외우기를 굉장히 힘들어해 부모님께서 많이 좌절했다고 이야기했더니 기사 제목이 수학 포기자로 나왔습니다. 사실 수포자였던 적은 없습니다. 수학 성적이 좋을 때도 안 좋을 때도 있었지만 항상 중간 이상은 했습니다”라고 그는 해명했다. 특별한 취미는 없고 하루 4시간 정도 연구에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 공부 봐주기, 청소 등을 하며 가족과 함께 보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익히 접하는 성공담과 차이가 있다. 창의적인 일을 오래 계속하려면 긴장과 이완,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는 중고 시절 기형도 시인을 좋아했고 한때 시인이 되길 꿈꾼 문학청년이었다. 그가 여기저기서 한 말 일부를 모아 본다. “시를 읽으면 일상 대화에선 느낄 수 없는 종류의 소통을 느낄 수 있었어요. 시적 표현이 모호해서 저자가 의도한 바를 명확히 알기 힘들었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깊은 유대와 공감대를 갖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몇 번 했거든요. 시나 수학은 추상적 대상을 공유하면서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요. 수학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문학, 물리학 등은 자연이 만든 대상을 연구하는데 수학은 사람이 만들어 낸 걸 연구해요. 그런 면에서 철학, 문학과 오히려 결이 비슷하죠.” 수학자라고 하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냉정하고 논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대수학자가 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은유’는 천재의 표상이라고 했다. 은유 능력은 문학과 인문·사회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질이다. 시는 메타포(metaphor, 은유)의 문학이다. 우리는 ‘앵두같이 붉은 입술’이라는 표현을 잘 알고 있으며 때로 구사하기도 한다. 이 표현은 A(입술)=B(앵두)라는 은유에서 파생된 직유다. 직유나 제유, 환유 등도 넓은 의미에서 다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입술이 붉고 아름답다’는 평범하고 밋밋한 표현이다. 여기에 앵두가 들어오면서 ‘그 입술은 잘 익은 앵두처럼 탄력적이고 촉감이 좋을 뿐만 아니라 달콤하기까지 할 것’이란 의미로 확장된다. 은유는 유사성을 통해 ‘보편성’을, 비유사성을 통해 ‘창의성’을 드러내는 천재적인 생각의 도구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감성, 창의력, 상상력 등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시를 읽고 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청소년기에 시를 좋아했다는 허준이 교수 말의 의미를 잘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은유적 표현에 신경을 쓴다면 창의력이 탁월한 아이로 기를 수 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은 은유에 의해, 은유를 통해서 논다. 소꿉놀이할 때, 크고 작은 모든 돌멩이는 살림 도구다. 돌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밥그릇, 접시, 상이 된다. 고운 모래는 쌀이다. 벽돌 조각을 빻으면 고춧가루가 된다. 긴 노끈을 묶으면 기차가 된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유사성과 비유사성을 가진다. 서로 다른 사물끼리 연결해 유사성을 찾는 놀이를 잘하면 두 사물이 가지는 비유사성을 통해 그 사물이 가지는 의미를 확장하게 되며, 그런 과정의 반복을 통해 사고력과 창의력은 성장한다. 아이가 어떤 대상을 두고 상식 밖의 엉뚱한 이야기를 할 때 귀담아듣고, 그 놀라운 표현들에 주목하며 칭찬해 줄 수 있는 부모가 창의력 있는 아이를 길러낸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부모는 모두가 인정하는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지식과 정보만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그게 바로 내 아이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다.
방학이다. 많은 가정에서 선행학습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려고 한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시와 소설을 읽고 부모와 함께 산과 들, 전시회와 연주회, 서점과 박물관으로 가보는 일도 꼭 필요하다. 이번 방학에는 잠시나마 정형화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활동도 좀 해보길 권한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