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작성일 : 2022.07.12 10:44
진영논리와 문학
/윤일현
지난달 30일 밤 경북 영양에 있는 소설가 이문열의 문학관인 광산문학연구소에 화재가 발생했다. 국비와 군비 8억9천만 원을 투입해 지은 전통 목조 한옥 건물이 전소됐다. 이 문학관은 한국문학의 체계적인 연구와 문학도 양성을 위해 건립됐다. 경찰은 방화 가능성을 놓고도 수사하고 있다. 화재 발생 3일 후 부산에 사는 선배 문인이 카톡을 보냈다. “방화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서울과 지역의 소설가협회나 문인단체에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성명서 하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문학이 언제부터 진영논리의 종속 변수가 되고 말았는가.”
식민 지배와 해방, 미소 대결, 남북분단과 6·25등을 거치며 우리의 의식·무의식 속에는 이분법적 세계관이 자리 잡게 됐다. 동서 냉전과 국토 분단은 악의적인 편 가르기와 모욕적인 낙인찍기를 강요했다. 냉전 교육은 합리적 사고와 상호이해, 상생과 갈등 조정 같은 덕목의 배양과 그 적용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했다. 남북 권력자들은 대중을 지배하는 통치 수단으로 냉전 의식을 악용했다. 남북 정권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상대의 도발과 침략 야욕을 강조했다. 안보 논리는 남북 권력자 모두에게 권력 창출과 유지를 위해 물적·사회적 기반을 가지는 지배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연이은 소련 연방의 해체는 반공·안보이데올로기가 약화하는 계기가 됐다. 군부 권위주의 척결을 주도했던 민주화 운동 세력은 더 적극적으로 냉전 의식과 냉전 문화 청산에 앞장섰다. 수평적 정권 교체로 이들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진보 시민·문화단체는 사회 운동의 주류가 됐다. 북의 위협이 여전한 상황에서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그들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대북 경계심 완화와 급진적인 좌 편향 이데올로기의 득세에 불안해하며 불만을 표시했다. 진보 진영은 반대 세력을 수구 골통, 토착 왜구로 몰아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문열은 시민단체를 정권의 홍위병에 비유하거나, 촛불집회를 두고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속에 진행되는 북의 ‘아리랑 축전 같다’는 글을 쓰기도 해 진보 진영의 공분을 샀다. 나는 이문열이 쓴 격한 논조의 글을 보며 안타까웠다.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를 쓰고 공격받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문열은 결국 반대 진영 사람들로부터 ‘책 장례식’까지 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6·25 때 북에 협조하다가 월북했다. 나는 그의 칼럼을 읽을 때 작가의 내면에 있는 레드 콤플렉스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문열은 어떤 작가인가. 1980~9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사람치고 그의 작품을 접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그의 출세작 ‘사람의 아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낭만적이면서도 유려한 고전적 문체에 매료됐다. ‘사람의 아들’과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대심문관’ 편을 열심히 비교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중편들에 열광했다. 아직도 기억한다. ‘금시조’의 주인공 고죽은 스승에게 반항하듯이 주색잡기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죽음이 임박하자 자신의 글과 그림을 모아 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왼쪽, 마음에 들면 오른쪽에 놓는 작업을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오른쪽으로 가는 작품이 하나도 없자 고죽은 모든 작품을 불살라 버린다.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금시조가 비상하는 환상을 보며 그는 숨을 거둔다. 아직도 가슴 한 언저리에 그때의 감동과 여운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던 사람과 책 화형식을 자행하던 사람의 의식구조는 근본적으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변증법적 과정을 거치며 발전한다. 변증법적 지양이란 좋은 것은 그대로 유지하고 모순만 부정하고 극복하는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상대의 장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치열한 논쟁과 토론을 통해 잘못은 바로잡고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어느 한 부분이 마음에 안 든다고 존재 자체를 깡그리 부정하는 것은 변증법적 지양이 아니다. 낙인찍고 단죄하기 위해 좌와 우,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문열의 지나친 보수적 세계관에 동조할 생각이 없다. 그렇지만 이문열이 우리 문학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문학판의 극단적인 편 가르기는 독자의 이탈로 귀결된다. 화재를 안타깝게 생각하며 철저한 원인 규명과 함께 조속한 시일 내에 문학관이 다시 건립되기를 기원한다.
(시인·윤일현교육연구소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