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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기행

백두대간 인문기행  태백산의 물방울 셋

작성일 : 2025.02.06 10:26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태백산의 물방울 셋

 

    뚜루네

졸졸졸 돌사이로 계곡물

쏟아내리니 거문고 울리는 듯

청정함을 자랑하니

마음도 씻어낼 듯

서너마리 목소리 좋은 새들이

나뭇가지 잎에 숨어있다가

서풍이 불어 흩으니

지저귀다 날아가네        김극성 (1474-1540)

 

태초에 하늘에서 물방울 하나가 태백산 산마루에 떨어져 튀어 올라, 삼수령三水嶺(935m) 피재에서 셋으로 나누어져 한 방울은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해 정선을 거쳐 양평의 양수리에서 한강이 되어 서울을 거쳐 서해로 흘러갔다. 한 방울은 태백 황지黃池에서 발원해 낙동강을 따라 남해안으로, 또 한 방울은 백병산을 타고 삼척 미인폭포 오십천을 거쳐 동해로 흘러 들어갔다.

물방울이 셋으로 나누어진 태백산 삼수령 피재는 예로부터 난을 피해 피난을 간다고 피재란 이름이 붙여졌고, 삼수령은 물방울이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고 삼수령으로 불렀다.

우리는 예로부터 환웅천왕이 하늘에서 높은 산 삼위태백 신단수 아래 내려왔다는 천손 사상을 숭배했고, 나라를 다스리다 다시 산으로 들어가 돌 즉 산신이 되었다고 여겼다. 신령한 산을 성지로 여겨 소도蘇塗를 설치하고 기도, 수행, 교육 천제의식을 꾸준히 해왔다.

* 소도: 삼한 때에,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聖地. 여기에 신단을 설치하고, 그 앞에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를 세워 제사를 올렸는데, 죄인이 이곳으로 달아나면 잡아가지 않았다.

원래 태백산이라는 이름은 보통명사로 한민족의 성지를 의미한다. 한민족의 이동과 함께 태백산이라는 지명도 이동했다고 필자는 본다.

일설에는 최초의 태백산은 중앙아시아 천산이라고 하고, 북방문화의 선조들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중국 감숙성의 삼위태백 태백산을 거쳐, 해가 뜨는 한반도 끝자락 묘향산 백두산에 자리를 잡았다. 해양을 따라 남방문화의 조상들은 낙동정맥 백두대간을 타고 태백산에서 북방문화와 접화군생한다.

분명 태백은 우리 땅의 모산母山이요, 한민족의 시원지始原池라 할만하다.

먼저 물방울 하나!

대한민국 수도를 관통하여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마시는 젖줄인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儉龍沼는 백두대간 금대봉金臺峯(1,418)과 대덕산(1,307)사이에 있다. '민족의 시원 단군왕검의 검소할 검자를 붙여 검룡소라고 부른다.

검룡소는 태백시 창죽천 상류의 작은 못에서 동강을 거쳐 한강 서해까지 514km를 흐른다. 정선의 조양강과 영월의 동강을 거쳐 단양· 충주· 양평의 양수리에서 북한강을 만나 서울· 강화로 흘러가는데 12개 하천 3개의 강 38개의 도시를 거쳐 서해로 들어가니, 대한민국의 젖줄이자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물방울이 모이고 모여 한반도 최대의 물줄기가 되었다.

금대봉 기슭에 있는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에서 솟아나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검룡소에서 다시 솟아난다. 1987년 국립지리원에 의해 최장 발원지로 공식 인정되었다. 검룡소의 둘레는 약 20m이고, 깊이는 알 수 없으며 사계절 9의 지하수가 하루 2,000~3,000t씩 석회암반을 뚫고 솟아 폭포를 이루며 쏟아진다. 오랜 세월 동안 흐른 물줄기 때문에 깊이 11.5m, 너비 12m의 암반이 구불구불하게 패여 있다. 소의 이름은 물이 솟아 나오는 굴 속에 검룡이 살고 있다 해서 붙여졌다.

전설에는 서해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강을 거슬러 백두대간 검룡소에 오른 후, 이무기가 주변 가축들을 잡아먹고 승천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가축을 잡아먹은 이무기를 죽이고 검룡소를 메웠다고 한다. 주변 폭포는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올라 생긴 흔적이란다.

물방울 둘!

낙동강의 발원지는 백두대간 매봉산 천의봉 너덜샘이고 용출한 곳이 황지연못이다.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물이 산을 뚫고 지나면서 석문石門을 만들고 깊은 소를 이루었는데 이곳을 구문소라고 한다. 물이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예로부터 뚜루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의 실학자 여암 신경준은 자신의 저서 '산경표'(山經表·조선의 산맥 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책)'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 했다. 이 말은 '산이 물을 나눈다'는 의미로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극한 당연한 사실을 말해주는 데, 구문소만은 예외다. 물이 산을 건너는, 정확히 말하면 물이 석회암 바위를 뚫어 버린 세계적으로 드문 곳이다.

낙동강의 발원지로 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의 근원지로서 관아에서 제전을 두어 가뭄 때는 기우제를 올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태백시 황지는 하늘의 못이라는 뜻의 천황天潢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천지天池와 마찬가지로 물이 깊고 맑아 깨끗한 기운이 가득하여 성스럽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낙동강은 한반도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다음으로 길다. 황지연못에서 용출된 물은 경상북도 구미를 걸쳐서 창녕군을 지나 부산으로 흐르는데 총길이 510km이다. 옛날에는 내륙지방의 뱃길로 하단·구포·삼랑진·수산·남지·현풍·왜관·낙동·풍산·안동의 선착장이 발달하였다.

낙동강이란 이름이 처음 쓰인 것은 동국여지승람이지만 이보다 훨씬 이전인 삼국 시대에는 김해 일대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가락국의 황산나루 땅을 흐르는 강이라는 뜻에서 황산강이라 불리었다. 낙동洛東이라는 이름의 뜻은 낙양 동쪽에 흐르는 강이란 뜻인데, 낙양은 지금의 상주를 말한다.

 

또 한 방울 셋!

오십천(쉰내)의 발원이 되는 백병산의 중턱에서 발원한 물길은 도계를 지나 삼척으로 흘러 동해로 들어간다. 굽이굽이 오십 구비를 이룬다고도 하고, 오십 번쯤 물길을 건너야 한다기도 하는데, 50km를 흘러가기 때문에 오십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십천의 물길은 백두대간 최고의 협곡 강원도 삼척시 통리재 미인폭포를 거친다. 아무래도 협곡이 많고 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물을 마신 사람 중에 아름다운 미인이 많았던 모양이다. 예로부터 오십천 주변에는 절색 미인이 많아 미인폭포라 하고, 바다 용이 탐내어 납치했다는 삼국유사 수로부인 이야기도 있다.

오십천의 미인은 중국의 경국지색으로 물고기가 넋을 잃은 서시나, 기러기가 반한 왕소군, 달과 꽃들이 질투했다는 초선과 양귀비를 능가했나 보다.

오십천의 미인폭포에는 옛날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는데, 첫 번째 남편이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죽어 재가했다. 두 번째 남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색녀라고 수군거렸고, 여인은 실의에 빠져 폭포에 투신해 자살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미인박명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나 보다.

폭포가 떨어지는 거대한 암벽을 험풍암驗豊岩이라고 하는데, 아름다운 여인이 투신자살할 때 이를 지켜보던 동자승이 돌이 되었다는 동자석童子石이 꼭대기에 아직 홀로 서 있다.

조선의 화가들 겸재 정선, 표암 강세황, 단원 김홍도가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의 그림을 남겼다.

백두대간 태백산 소백산 마루금에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간다는 주목朱木이 담담하게 산을 지키고 있다.

백두대간 두위봉(1,446m)은 산 모양새가 두툼하고 두루뭉술하여 예로부터 사람들이 두리봉이라고도 부르며정선 아리랑구절에도 나오는 산이기도 하다. 중턱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주목 3그루가 있는데, 주목의 수령이 무려 1,400년이란다. 백두대간에 있는 나무 중 최고령이다.

필자는 주목을 올려다보고 단번에 신단수神壇樹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까마귀 한 마리가 주목에 앉으며 까악 까악하고 대답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