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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2.06 10:18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소백산 부석사 의상 1.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법의 성품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본래 없고 모든 법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니 진여의 세계로다.
無名無相絶一切 證知所知非餘境
이름도 붙일 수 없고 형상도 없어 온갖 것 끊겼으니 깨달음의 지혜로만 알뿐, 다른 경계 아니로다. <의상의 법성게 들머리>
태백산 천제단 아래서 거지들과 무애가를 부르고 무애춤을 추며 한판 신나게 놀았던 복성거사 원효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돌연 소백산으로 혼자 다리품을 팔았다.
산과 산이 끝없이 연결된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연꽃이 피어나듯 중간중간 솟았고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편 듯 소백산까지 펼쳐져 있었다.
의상 아우를 만난다는 생각에 원효는 봉황이라도 탄 듯 몸이 가벼웠다.
일지공자 의상과는 외종사촌 간으로 원효가 여덟 살 많은 형님이 된다. 원효는 최초의 국선 설화랑 설원薛原의 증손자로 6두품이지만, 의상은 아버지 한신장군과 어머니 선나부인의 골품을 이어받아 진골이며 부마였다. 신라의 귀공자들이 다 그렇듯 화랑이 되고 장군이 되어 나라에 공을 세워야 하는데, 의상의 경우 모두가 부러워하는 안정된 부마 신분과 공주와의 사랑을 버리고 출가했다. 그래서 원효는 아우 의상을 더욱 아끼고 사랑했다.
원효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이 점점 빨라졌고, 아우 의상이 처음 머리를 깠고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듯 자신을 찾아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원효는 삽량주 영취산 토굴에서 혼자 수행하고 있었다.
의상은 파르라니 삭발한 머리에 곱상하게 생긴 얼굴이 마치 비구니 같았다. 의상은 무슨 큰 자랑거리라도 있는 듯 싱글벙글이었다.
“새밝이 형님, 이 토굴이 법당입니까? 다른 스님들은 모두 고래 등 같은 절에서 호위호식하며 귀족생활을 보장받는데,”
원효의 토굴 속에는 작은 토우 불상만 하나 달랑 있었다.
“애걔. 형님, 불상이 이게 뭡니까?”
원효는 석간수 한 잔을 내밀며 말했다.
“아우, 서라벌 웅장한 금불상을 모신 법당을 생각했나? 다 부질없는 짓이냐. 부처는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어. 다만 범부들이 부처를 보지 못하지.
아우가 머리를 깎았다는 소문을 이 산속에 있는 나도 들었지. 모두들 야단 났더구먼, 그 좋은 부마 자리를 팽개치고, 쉽지 않을 터인데, 그래 공부는 좀 되던가?”
“형님, 실은 공부가 통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형님께 한 수 배우러 왔습니다.”
“법명이 의상이라고 했지.”
“예, 새밝이 형님.”
“의상, 등 따습고 배부르면 공부가 안돼. 서라벌 고래 등 같은 절에서 호위호식하며 귀족 대우를 받으면 공부는 당연히 안 되지. 춥고 배고플 때 도심이 생긴다 말이야. 도심은 욕망을 뿌리치고 절제하는데 있지. 절제된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 나가는 거야.
의상, 공부는 혼자 하는 거야, 스승이 가르쳐 준다고 그냥 따르지 말고, 책에 나와 있다고 마냥 믿어서도 안 돼. 의문을 품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해. 스스로 깨쳐야 공부가 될 것 같아. 다 마음 먹기 달렸다 말이야.”
“새밝이 형님, 스스로 깨쳐요? 의문을 품고? 형님께선 어떤 각오로 공부를 하십니까?”
바싹 다가와 질문을 하는 의상의 눈에 광채가 번쩍였다.
“의상 아우, 나의 수행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심에 뿌리를 두고 화쟁으로 조화를 이루지. 일심은 우주 만물의 실체인 절대 진리 아미타불이며, 화쟁은 만물이 어우려져 조화를 이루고 서로 인정하며 공존 접화군생하는 거야. 이 삼라만상은 일심에 뿌리를 두고 생겨나 저마다 타고난 근기와 인연에 따라 생주이멸을 거듭한다 말이야.
삼라만상은 저마다 독립적인 개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화합하며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어울리는 데 있지. 근기란 수행에 따라 변한다 말이야. 화쟁으로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지고 다름을 인정할 때 공존이 성립된다 말이야. 이 소통 조화 화합의 바탕에는 무명에서 나오는 자기 집착을 버리고 원초적인 절대 진리로 돌아가는 데 있지 않은가? 그럼 절대 진리인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온 거야.
일심은 나무아미타불이고 상구보리上求菩提야, 화쟁은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고 할 수 있지.
의상, 우리의 마음속에는 원래부터 아미타불이 자리 잡고 있었어. 다만 인간이 어리석어서 아미타불을 보지 못할 뿐이야. 우리는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해서 각자 자신의 가슴속 깊이 숨어 있는 절대 진리 아미타불을 찾아내야 해. 그럼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처럼 부처가 되는 거야.”
650년 진덕여왕 4년 원효는 아우 의상과 육로로 걸어서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요동 부근에서 고구려 병사에게 잡혀 첩자로 오인 받았다. 승려를 가장해 국경을 넘는 첩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효는 고구려 보덕화상에게 배운 수박도를 선보이는 기지를 발휘해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온다. 이렇게 원효와 의상의 1차 당나라 유학은 실패하고 만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의자왕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당나라로 가는 뱃길이 당항성에 열리자, 다음 해, 원효 45세, 아우 의상이 울금바위 벼랑 끝 새집 같은 작은 동굴에서 6년 묵언 수행 중인 원효를 찾아왔다.
두 사람이 앉기도 솔은 토굴 속, 원효는 석간수 한잔을 의상에게 내밀며 6년 만에 말문을 열었다.
“의상 아우, 반가우이. 그래 모두들 강녕하시고?”
“예, 새밝이 형님. 형님께서도 여전하십니다.”
의상은 원효를 부를 때 항상 새밝이 형님이라고 불렀다. 원효도 자신을 대사나 스님이라고 부르기보다. 새밝이라고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다. 아직 스님이나 대사 소리를 듣기가 민망하다는 뜻이다.
의상은 좌정하고 원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요석궁을 나올 때나, 부곡마을을 떠나올 때나 얼굴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입성은 낡고 초라할 뿐, 얼굴과 두 눈에는 더욱 호기가 완연했다. 6년에 만에 보는 원효의 얼굴에서 단번에 며칠 전 본 어린 설총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리 부자지간이라지만 이렇게 닮을 수가 있나? 마치 떡살로 얼굴을 찍어낸 듯했다. 의상은 입술을 깨물고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총아, 인사드려라. 종숙 아저씨다.”
“아버지를 꼭 빼닮았구나. 눈에는 총기가 초롱초롱하고.”
요석공주의 손을 잡은 일곱 살 설총의 눈빛은 범상치 않았다. 의상은 원효에게만 느낄 수 있었던 호기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 오너라. 그래 강수 선생님께서는 강녕하시고? 지금은 무슨 공부를 하느냐?”
읍을 한 설총은 손을 앞으로 다소곳이 모으고 의상과 눈을 맞추며 또박또박 대답을 잘도 했다.
“예, 강수 선생님께서는 기체 강녕하옵고, 소인 효경과 곡례 이아를 읽고 있습니다.”
의상은 설총이 총명하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직접 만나보고 깜짝 놀랐다.
“오, 이아를!”
“예”
“이아라 하면 문자의 뜻을 고증하고 설명하는 아주 어려운 책이 아니던가?”
“그러하옵니다.”
“기특하구나, 어린 나이에.”
의상은 한 손으로 설총의 손을 꼭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화랑이 되고 장군이 되겠느냐? 불가에 몸을 담아 중생을 구제하겠느냐?“
뜻밖에 설총은 당돌하게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소인은 세속에 사는 사람인데 불도를 배워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당연히 유가의 도를 배우고 싶습니다.“
일곱 살 설총은 머리를 깎은 의상 앞에서 자신의 뜻을 당당히 밝히며, 오냐 너 잘 만났다. 오늘 나와 법거량을 한번 해보자는 투였다.
의상은 잠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방심한 틈을 타 자신의 나태한 곳을 공격해 왔다. 의상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신라의 전통적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지배층 진골 귀족만을 위한 종교 불교 권위에 도전이었다. 무엇보다 아버지 원효에 대한 도전인 듯했다. 어린 나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아버지 원효를 모르지 않을 터인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통일된 미래를 미리 읽고 있는 아이에게 한 수 배운 것 같았다.
의상은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나태함을 자책하며, 당나라 유학을 결심하고 원효를 찾아갔던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