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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2.06 10:12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태백산 3 무애가
빛나는 수성이 남극성 아니신가
끝없는 장수는 부처님의 자비가 아니신가
어와 우리들이 태평시대에 놀았어라
백년이 이 같기를 천년이 이 같기를
만년 또 억만년이 해마다 이 같기를
우리 임금님 오래 오래 사시길 빌고 빌어 원효의 무애가
오후가 되자, 태백산 천제단에 모여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음복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은 사람들은 하던 놀이를 멈추고 일제히 목을 빼고 한곳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거지 떼가 나타났다는 박 두드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우두두두두두·…
거지 떼가 두드리는 바가지 소리는 마치 한여름 갑자기 오는 소나기 소리 같았고, 듣고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무척 들뜨게 만들기도 했다. 거지 패거리는 동냥 바가지를 두드리면서 좌우 열을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며 숲속에서 천제단 한복판 공터로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제에게 제사를 지내고 한바탕 신나게 씨름이며 윷놀이 등 민속놀이를 하며 놀던 사람들은 놀이를 멈추고 우르르 몰려들어 거지 패거리를 빙 둘러쌓았다. 거지들의 위세는 동냥 다닐 때와는 사뭇 달랐다.
태백산 공터 중앙에 도열한 거지 패거리는 우두머리 복성거사 원효의 신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동냥 바가지를 마구 두드렸다. 언뜻 들으면 무질서하게 들렸지만, 자세히 들으면 질서정연했고 조화로웠다. 빠른 듯 느렸고 느린 듯 빨랐다. 거지들은 목을 자라처럼 움츠리고 등을 곱사 모양 굽혔다. 거지 중에는 진짜 곱사도 있었고 흉내를 내는 이도 있었다. 눈을 감은 봉사도 있었고 손가락이 뭉크러진 문둥이도 있었다. 거지 하나가 열에서 나와 다리를 절룩이며 입을 비틀고 눈으로 사팔뜨기 흉내를 내자, 구경꾼들은 그 모습에 모두 배를 잡았다.
삼십 여명의 거지들은 앞뒤로만 움직이며 춤을 추는 것이 아니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 마주 보며 춤을 추기도 하고, 좌우로 짝을 바꾸어 춤을 추기도 했다. 대부분은 병신춤인데, 같은 장애를 가진 거지들이 자신의 장애를 더욱 과장해 추는 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멀쩡한 자가 추는 춤도 있었다. 거지들은 자신의 팔 다리 얼굴 등 장애를 아주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헐벗고 구박받는 거지들의 몸부림이 춤사위가 되고 그들의 울부짖음이 노래로 승화되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전위예술이 된 것이다. 평소에는 병든 병아리 모양 비실비실하던 거지들도 무애춤만 추면 물 만난 고기 모양 펄떡거렸고 금방이라도 날 듯 신명 났다.
태백산에 모인 삼한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고, 따라 온 어린거지들의 동냥 바가지 속에 먹을 것을 가득 담아 주었다.
거지 패거리의 우두머리 복성거사 원효가 중앙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여보게, 친구들. 오늘 시월 상달 초사흘 개천절 아닌가? 하늘에 계신 환인 천제님 들으시게 우리 무애가 한 곡 뽑아 볼까나?”
“얼씨구.”
거지들이 일제히 박을 두드리며 추임새를 넣었다.
복성거사는 잔걸음으로 한 바퀴 돌며 표주박을 두드리며 목청껏 무애가를 선창했다.
각승의 삼매 문을
처음으로 열어서
거리거리 걸으며
무애박 울렸네
요석궁 달 밝을 때
봄밤 깊이 잠들더니
분황사 문 닫히고
빈 그림자만 돌아보네 <일연>
한 무리의 거지 패거리는 바가지를 두드리며 장단에 맞추어 어깨춤을 추었고, 또 한 무리의 거지들은 합창으로 무애가를 따라 불렀다. 서라벌 저잣거리에서 몇 번 듣거나, 소문을 들은 사람들도 흥얼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다 따라 했다.
이제부터 사람들이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최고의 묘기, 당나라 장안이나 천축, 서역에서도 구경할 수 없는 묘기가 시작되었다.
복성거사가 중앙으로 나가 동냥 바가지를 머리에 쓰고 혼자 재주를 부리기 시작했다. 거지들이 빙 둘러 앉아 두드리는 바가지 장단에 따라, 제자리에서 손을 땅에 짚고 물레방아모양 연속으로 돌았다. 박 두드리는 소리가 빨라지자, 점점 속도가 빨라지고 바람개비처럼 잘도 돌았다. 구경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며 환호 했다. 이번엔 허공에다 연속 발차기를 하는데, 마치 나비가 춤을 추는 듯 했고 매가 사냥하는 듯했다. 땅바닥에 구르는 듯하다 벌떡 일어서 공중으로 날았다. 복성거사는 한 다리로 서서 팔을 벌려 학춤을 추었고 독수리가 바람을 타고 선회 하듯 한바퀴 돌았다. 사람들은 연신 감탄을 했고 혼을 빼앗겼다.
사람들은 복성거사 원효의 묘기를 잘 보기 위해 서로 앞자리로 밀치며 몸싸움을 벌렸다. 복성거사의 묘기를 보기 위해 소문을 듣고 당나라에서 온 장사치들도 침을 흘리며 넋을 놓았다. 채 자리를 잡지 못한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아이들은 어른 어깨에 목말을 타고 구경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은 자식의 등에 업혀 구경했다,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은 옆 사람의 설명이나 대중의 함성에 연신 감동하는 표정을 지었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은 멀리 나무위에 올라가 구경했다. 나무엔 사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밑에 있는 사람은 떨어진다고 소리를 마구 질렀다.
거지 패거리들이 두드리는 바가지 소리가 서서히 느려지자 복성거사는 장단에 맞추어, 선학희천무仙鶴戱天舞 황취롱풍무荒鷲弄風舞 등 열두 장면을 추었다. 원효가 화랑시절 내을신궁에서 금관을 쓴 선덕여왕과 문무백관 앞에서 추던 화랑무였다. 아까 선 보인 재주는 맛빼기에 불과했다. 구경꾼들의 박수가 다시 우레같이 터져 나왔다. 복성거사 원효가 앞장서 무애가를 부르고 무애춤을 추며 숲속으로 빠져 나갔다.
빛나는 수성이 남극성 아니신가
끝없는 장수는 부처님의 자비가 아니신가
어와 우리들이 태평시대에 놀았어라
백년이 이 같기를 천년이 이 같기를
만년 또 억만년이 해마다 이 같기를
우리 임금님 오래 오래 사시길 빌고 빌어 <무애가>
사람들은 한동안 거지 패거리를 따라 노래를 부르며 산을 내려갔다. 거지 패거리가 빠져나간 태백산 천제단은 한겨울처럼 썰렁했다.
태백산 천제단 주변엔 33 천기와 28 수기만 펄럭였고, 양산을 받친 문무대왕과 대장군 김유신을 비롯한 백관들도 넋이 나간 듯 아무 말이 없었다.
먼발치에서 까치발을 한 요석 공주 아유타와 부채로 햇볕을 가린 청년은 담담하게 목을 빼고 바라보았다.
*
옛날에는 백두산과 묘향산도 태백산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은 백두대간 태백산뿐이다. 태백산에는 3개의 천제단이있다. 장군봉에 있는 장군단. 단군왕검의 아들 부소왕자가 쌓고 천제를 올린 부소단, 우리가 천제단이라고 부르는 천왕단이다.
신라 박제상의 부도지에는 박혁거세가 태백산에 천부단을 쌓았다고 했고,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신라초 일성 마립간이 태백산에 올라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있다.
고려사에는 태백산에 관리를 보내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조선 세조 성현成俔의 허백당집虛白堂集에는 삼도(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사람들이 산마루에 당집을 짓고 단군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데, 오가는 사람이 많아 서로 어깨를 부딪치고, 앞사람의 발뒤꿈치를 밟은 정도라고 했다. 조선 성종 이후 유교 사대주의에 반한다는 음사淫祀(부정한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로 치부하고 천제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일제강점기 재판기록에는 1937년에 태백산 천제단에서 독립기원제를 지냈다는 이유로, 20여 명이 재판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천제단은 오랜 세월 허물어지고 다시 쌓으면서 자리를 지켜왔다. 지금의 천제단은 6.25 때 허물어지고 전쟁 후, 경북 봉화군 물야초등학교 우성조 교장과 뜻있는 인사들이 다시 쌓고 이후 태백시에서 관리 보수하고 있다. 1981년 삼척시에서 분리된 태백시 태백문화원에서 매년 10월3일 천제를 주관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