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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학의 어제와 오늘><부문 2-8> 자연과 사물, 그리고 가족에 대한 절제된 따뜻함 -신현숙 시집 『상처는 향기가 난다』의 특성

작성일 : 2025.02.04 02:18

<부문 2-7>

 

 

자연과 사물, 그리고 가족에 대한 절제된 따뜻함

-신현숙 시집 상처는 향기가 난다의 특성

 

 

 

2019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급성폐렴을 유발하는 코로나 19는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0120일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인에게서 발견한 이래 일일 확진자가 지금은 정점(51635,117)을 찍었으나 아직도 7,382 (611)으로 집계되고 있다. 누진 확진자는 1,822만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24,371(611)이나 된다. 코로나 19는 박쥐에 있는 바이러스가 인간에 옮겨진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염병이 계속 발생되는 원인의 하나로 인간의 과도한 개발로 인하여 파괴된 자연 때문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요즈음 대도시의 아파트 단지에 간혹 멧돼지가 출현한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그들이 산속에서 먹이를 찾지 못하여 인근 주택가로 내려온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멧돼지 먹이가 서식할 환경을 없앤 탓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리고 반려 동물 애호가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반면에 그들을 버리는 비정한 사람들이 많아, 유기견이나 유기묘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점 역시 예사로 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한편으로는 태풍과 가뭄과 기온 상승 등 급격한 기상 변화 역시 산업화로 인한 자연 파괴와 과도한 탄소배출에서 오는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한다. 2021319일에는 그린랜드 정상 3200m에 눈 대신 비가 내려 빙하가 급속하게 녹았다고 외신은 전해 왔다.

이상과 같이 질병과 이상 기온에서 오는 생태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인간과 동물의 공존의식 등을 대두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새로운 생태문학이 등장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가지는 작가들이나 시인들이 많다.

신현숙 시인은 창조문예20217월호와 11월호의 1,2회 추천작에서 자연과 사물에 대한 시인의 태도가 개성적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생태시의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에 엮는 그의 제1시집 상처는 향기가 난다에는 추천작들을 포함하여 91편의 시를 4부로 나누어 편집되어 있다. 4부로 나눈 기준은 시적 태도의 차이보다. 시적 제재의 차이에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시작 태도는 자연과 사물에 대한 치밀한 관심에서 오는 정서이입이 개성적이면서 때로는 단순한 정서에 끝나지 않는 가치판단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면 그의 시에서 개성적 태도와 가치판단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부에 편집되어 있는 연작시 시를 쓴다3편 가운데 두 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3편은 이 시집에 들어 있는 유일한 시를 위한 시 즉 메타시로서 신 시인의 시작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 나는 코스모스

흔들리는 마음

설레는 빛깔

여린 꽃잎

그리움 같은 것

그리고

숨어 있는 마음이다

 

나는 우주의 마음

마음껏 날아가는

차표 없는 낯선 여행

소리 없이 달리는 메아리

말이 안 되는데

말이 되는

아이러니

나는 시다

-시를 쓴다(1) 전문

 

 

()내가 보인다

가족이 보인다

오래된 그리움 보인다

어려운 말은 심오한 뜻

비빔밥처럼 섞인다

짤막한 한 줄에

내 추억이 섞이고

살아가는 인생이 숨 쉬고 있다

- 시를 쓴다(2) 전문

 

()시를 쓴다(2)의 경우는 신 시인의 시적 제재와 상상력 전개 방법을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시적화자 는 시인이 아니고 로 설정되어 있다. 첫 연에서 시를 코스모스의 흔들리는 마음으로 비유하여 코스모스의 빛깔과 모습에서 유추되는 가냘픈 그리움과 숨어 있는 마음 등이 시적 방법이면서 그러한 인식의 대상은 자연이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소박한 자연에서 의지하는 상상력만이 아니라 우주가 등장하고 여행을 등장시켜 말이 안 되는 반어적 진술 즉 아이러니도 등장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태도로 보아 자연을 인식하데 지금까지 다른 시인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전통적 자연관과는 다소 다른 무엇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시를 쓴다(3)에서는 시적 화자가 시인 자신이 되어 어떠한 것들이 시적 주제 혹은 정서로 등장할 것인가를 보여 준다. . 시인 자신의 자아, 가족, 그리움 혹은 추억, 그리고 인생이 주제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들을 길게 늘어놓기보다 짧게 응축할 것이라고 하여 시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신 시인의 시작태도에 따라서 이 시집은 4부로 나누어지게 된다.

 

꽃이 피기 전에는 풀이었다

꽃 피면서 야생화

 

풀이 베이면 향기 난다

풀 향기

 

내가 좋아

좋다고 하더니

말없이 홀로 떠나는 사람

 

과즙 눈물이 맛을 내듯

내 눈믈의 맛은

달달하게 익어 버렸다

-상처는 향기가 난다전문

 

자연에 정서가 미묘하게 이입된 경향의 작품들로 편집된 부의 시 가운데 시적화자의 독특한 어조 때문에 형상화에 성공한 작품이면서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상처는 향기가 난다를 골라 보았다.

이 시를 지배하고 있는 어조는 아이러니 즉 반어법이다. 우선 제목 속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상처에서는 상식적으로 볼 때에 아픔을 느낀다. 그 결과 정서 가운데 슬픔을 유발한다. 그러나 인용한 상처는 향기가 나다에서는 아픔보다 향기가 난다고 진술하고 있다. 향기는 아픔이 아닌 아름다움과 기쁨을 유발하고 때때로는 감각적인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따라서 이 시는 이미 제목 속에서 상식을 초월하고 있으며 상처나 그로 인한 아픔을 황홀하게 극복하고 있다. 첫 연에서는 야생화의 등장 과정을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평범한 풀이지만 그 속에는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야생화가 배태되어 나중에는 탄생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을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풀은 야생화를 곷 피우기 전에 무참히 낫이나 제초기에 의하여 베임을 당한다. 이렇게 풀이 베어진다는 것은 야생화를 꽃 피우지 못하고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상실감은 평범한 상실감이라기보다 일종의 배신감으로 다가와 아픔과 그로 인한 고통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적화자는 풀의 베임보다 풀의 상처에서 나오는 독특한 냄새를 향기로 인식하여 그 고통에서 벗어난다. 이러한 풀에 대한 사유는 셋째 연에서 시적화지를 버리고 떠난 사람에 대한 배신감으로 옮겨간다. 그 떠남은 단순한 떠남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슬픔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넷째 연에서 그 슬픔으로 인한 눈물마저 달달한 과즙이 되어 익어버렸다고 진술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이렇게 슬픔의 극복의지를 후각과 미각이라는 두 가지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시적 진술의 절제로 인하여 보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유발하게 하지는 않지만 슬픔과 고통을 이중 감각으로 극복하고 있는 점은 충분히 전달되고 있다. 이렇게 사물에 대한 절제되면서도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는 태도는 신 시인의 시적 수련에서라기보다 천성적으로 사물들에 대한 미세한 변화도 놓치지 않는 자상함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부에서 가족이 시적 제재로 등장하고 있는 작품 가운데 한 편을 골라보기로 한다.

 

흐르다 멈춘 시계

아버지는

침묵 속으로 사라지셨다

 

밝아 오는 여명

알람 같은 전화벨 소리

 

아버지

떠나간 시간

멀어진 목소리는

남은 시간 지우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씀으로

이별 준비했던

요양병원

 

비워진 마음

허공으로 흩어진다

-가지 않는 시계전문

 

신 시인은 근년에 요양병원에 모시고 있던 친정아버지를 천국으로 보냈다. 인용한 가지 않는 시계는 이러한 가족사적 슬픔이 시적제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시계와 전화별 소리를 등장시켜 사물화에 성공하고 있다.

직접 임종을 지켜본 사람들은 사람의 생명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시간적으로 느낀 체험이 있을 것이다. 신 시인은 그러한 과정을 시계가 점점 멈추어진다고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신 시인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은 침묵 다음의 어두움 같은 절망이 아니라 밝아 오는 여명 속에 들리는 알람 소리로 천국행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그가 가지고 있는 신앙에서 나온 태도이며 슬픔의 극복 방식이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아버지의 죽음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감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상실감을 이 시의 후반에서 시간의 사라짐이라고 아버지의 입장에서 형상화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유족들의 슬픔을 비워진 마음이 허공으로 흩어진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시의 시적 태도의 특징 역시 슬픔이 사물화 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에는 이 작품 말고도 자신의 유년 시절이나 일상에서의 느낌을 사물화 하고 미세한 관찰로 되새기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돋보이는 부분은 부이다. 부는 주로 국내외 여행지의 체험이 제재가 된 시편이나 귀향 시편에서 그러한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연어 같이 올라간다

내가 태어 난

은하리 길 따라

 

관수루 팔 벌리고

먹물 묻은 구연서원

수줍은 자태 요수정은

말없이 얼굴만 붉히네

 

거북바위 솔가지에

민낯 달 내려오고

휘파람 불던 너럭바위

늙지도 않았는데

단발머리 소녀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내가 그리워

기다리고 있었나

덕유산 꼭대기에 백발로 서서

비릿한 저녁을 줍고 있다

-수승대 1전문

 

이 작품은 수승대연작시 3편 가운데 하나이다. ‘수승대는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계곡일대를 지칭하는 곳으로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과 경내에 있는 문화유산 때문에 20081226일 문화관광부에서 명승 제53호로 지정한 곳이다. 구연동이라는 별칭이 있는데 이는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런데 이곳이 바로 신 시인의 고향이다. 따라서 유년 시절부터 고향을 떠날 때까지의 추억들이 간직된 곳이기도 하다.

수승대는 덕유산에서 발원한 맑은 물과 계곡, 노송 바위들이 어우러진 명소로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는 곳으로 사신의 생환을 장담 못해 근심 , 보낼 자를 써서 로 불리워지다가 1543년 퇴계 이황 선생에 의하여 로 바뀌어져 오늘날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경내에는구연서원, 관수루, 내삼문, 요수정, 암구대 등이 있는데 유림과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신 시인은 바로 거창신씨 요수종중 출신이다.

이상과 같은 수승대 바로 옆에서 태어난 신 시인이 백발이 희끗희끗한 나이가 되어 연어의 회귀처럼 고향을 찾는 데서 시는 시작된다. 첫째 연의 은하리 길은 지금도 개편된 주소명에서 사용되고 있는 옛 길이다. 둘째 연에는 앞에서 열거한 문화유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그것들은 각자 독특한 내력과 자태를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셋째 연에서는 거북 바위를 비롯한 자연의 불변에 비하여 단발머리 소녀 신 시인은 변하였다고 진술하면서 시인이 간접적으로 작품 속에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연에서는 나는 내가 그리워/기다리고 있었나라는 부분에서 신 시인 자신이 시적화자로 직접 등장한다. 그러나 그리움이나 귀향의 소회를 직접 피력하지 않고 비릿한 저녁을 줍고 있다로 감각적 이미지로 전환시키면서 시를 마무리 한다. 이렇게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이 직접 등장하고 있는 점에서 단순한 기행시가 아니라 귀향시로서의 의미, 즉 세월의 흐름에서 오는 고향에 대한 재인식이 더하여 지고 있다.

인용 못 한 수승대 2의 경우 어머니가 등장하고 수승대 3의 경우는 어린 시절에 본 나들이 가던 어른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나 예전 기억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가 적절히 절제되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하여 3편 모두 단순한 전경묘사나 풍경으로서의 시가 아니라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한국화 속에는 사람이 조그맣게 등장하여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 시인의 시편은 이러한 전통을 이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숨겨지거나 절제된 인물들로 인하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 한국화의 한 경향이 바로 생태의 위기에서는 주목받는 작품이듯이 신 시인의 시는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생태시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부는 자연이 더욱 미묘하게 사람과 공존하는 경우의 시들로 편집되어 있다. 그 가운데 2편을 인용하여 보기로 한다.

 

()피면서

웃지 않는 꽃 있던가

꽃을 보면서

밉다 하는 이 있던가

 

꽃이 되려면 웃어라

 

맑은 웃음은

마음에서 나오는 연한 꽃잎

거울 속에 청순한 웃음 없다면

마음부터 씻어야지

 

너를 보니

너는 꽃이다

-전문

 

()허리 굽은 살구나무는

노모처럼

문설주에 기대어 있다

 

마을 어귀에 매인 황소

눈 끔벅이며 따라온다

 

속삭이듯 좁은 오솔길

젖은 굴뚝에도

연기는 피어오르고

 

큰 입 벌리고

하늘 보는 장독대

 

늦은 햇살 짊어진 살구나무는

허리가 휘어진다

-풍경전문

 

인용한 두 편의 시 ()()풍경은 제목에서는 구체적인 사물과 공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가 개성적이지 못하고 타성에 젖은 작품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신 시인의 비교적 짧은 두 편의 시를 읽는 순간 이러한 선입견은 기우라는 생각이 든다.

()의 경우 의 피어나는 과정을 의인화 시켜 웃는다고 인식한다. 꽃이 피는 것을 웃는다고 인식하는 것은 상식적인 인식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는데 이러한 기존의 느낌은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꽃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즉시 전환하면서 오히려 인식 대상의 재빠른 전환으로 인하여 탄력성을 받게 된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는 지금까지 신 시인의 시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명령형 어조가 등장한다. 시 밖의 시적화자가 시적 청자를 향하여 꽃이 되려면 웃으라고 강요한다. 명령형 어조는 일반적으로 독자들에게는 거북하게 느껴지는데 이 시에서는 그럴 사이도 없이 재빠르게 맑은 웃음과 거울 속의 웃음이 등장하여 청순하지 않는 마음을 씻으라고 한다. 드디어 마지막 넷째 연에서는 시적 청자 가 등장하면서 그를 꽃이라 단정한다. 여기서 청자 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이 시의 청자는 비록 시적 의도를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신 시인의 손자나 손녀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방긋방긋 웃다가 그 웃음을 그친 손자나 손녀를 보며 웃으라고 하는 시가 바로 이 작품은 아닌지 상상해 본다. 이러한 상상까지 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이 시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풍경의 경우는 오래된 살구나무가 문설주에 기대어 있다는 표현에서 평범한 시골 풍경으로부터 벗어날 조짐이 보인다. 그리고 살구나무의 굽은 모양을 노모로 비유하였다는 데서 비록 직유의 보조관념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등장하고 있다. 이 비유는 마지막 연과 연결되어 더욱 미묘해 진다. 그리고 마을 어귀에 매인 황소가 따라온다는 둘째 연에서도 황소를 데리고 오는 사람을 시 속에서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이 등장하는 풍경이 되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 셋째 연의 경우에는 글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데서 사람이 살고 있는 풍경이 된다. 물론 요즈음에는 시골에서도 굴뚝에서 연기 나는 풍경을 거의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저녁 때 연기 오르는 굴뚝에서 사람 사는 모습들을 상상하곤 하였다. 넷째 연에서는 장독대 뚜껑이 덥혀 있지 않은 풍경을 의인법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사람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묘사는 다섯째 연에서 더욱 두드려져 저녁 무렵의 살구나무 있는 풍경을 의인화 하고 있다. 신 시인이 이 시에서 추구하고 있는 농촌풍경은 적막감에 의기소침한 풍경이 아니고 인정이 넘치고 가족과 이웃끼리 오손도손 정을 나누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농촌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살핀 신 시인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시적 태도는 유년기의 추억들과 여행체험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체험들까지 긍정적으로 보고 낙관적으로 보면서 그것들의 형상화에 힘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적제재에서 유발되는 정서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절제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제재에 대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요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신 시인의 시에서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 현상과 기후변화에서 오는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시의 가능성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세계관과 절제된 감정에서 오는 따뜻함의 근원은 그가 가지고 있는 개신교 신앙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이러한 기독교적 세계관이 도달할 곳은 사물이나 체험을 뛰어 넘는 궁극적 관심이다. 보다 궁극적 관심에 경도된 작품들로 채워질 제2시집이 빠른 시일에 엮어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