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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용의 시 읽기

<양왕용의 시읽기 67> 유치환의 「기의 의미」

작성일 : 2022.06.27 02:32

<양왕용의 시읽기 67 유치환; 기의 의미>

 

意味-望洋에서

 

유치환

 

여기 茫茫東海에 다달은

후미진 한 적은 갯마을

 

지나 새나 푸른 波濤의 근심과

외로운 세월에 씻기고 바래져

 

그 어느 세상부터

생긴 대로 살아온 이 서러운 삶을 위해

 

어제는 人共旗 오늘은 太極旗

關焉할 바 없는 기폭이 나부껴 있다

- 시집보병과 더불어에서

 

 

 

 

<시작의 배경>

 

유치환(1908-1967)시인은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당시 경남 통영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6·25 전쟁 때에는 호남으로 남하한 북한군은 8월 초에는 진주를 유엔군과 공방전을 벌려 점령하고 812일에는 경남 고성군을 점령하는 등 결국 통영도 점령하고 마산을 공격하는 지경이 되었다. 유치환은 그 전에 식구들과 부산으로 피난하여 부산측우소(기상대)가 있는 복병산 근처 영주동에 세집을 얻어 거주하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병든 서정주 시인이 머물기도 하고 대구에서 조지훈이 찾아와 며칠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문총구국대 의 경남지대 격인 경남문총구국대 대장 자격으로 종군을 결심하였다. 국군 제3사단(사단장 최석준장) 휘하 제23연대에 소속되어 제법 많은 인원들이 출발하였다. 출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기록에 의하면 919일 육군 제 3사단은 포항을 탈환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무렵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같다. 대부분의 인원들이 경북 영덕 격전지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탈락하고, 원산 탈환 직전에 최후로 남은 4인도 서울로 돌아갔으나 유치환은 홀로 종군을 계속하여 안내 장교 김봉룡 소위와 같이 1010일 원산 탈환의 기쁨도 만끽한다. 그는 그 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는 부대를 따라 되돌아 왔다. 이 때의 종군에서 느낀 소회를 형상화한 작품들은 유치환의 제6 시집步兵과 더불어(문예사,1951)에 수록되어 있다.

 

<작품분석>

 

意味는 시집步兵과 더불어1부인 <보병과 더불어>에 열 번째로 수록된 작품이다. 부제에 등장하는 지명 망양은 강원도 울진군 매화면 (지금은 경상북도로 편입) 망양리 해안이다. 지금은 해수욕장과 휴게소 등의 시설로 아름다운 해안이지만 그 당시는 격전지였다. 지척에 울진읍이 있는데 1950927일 국군 3사단이 울진을 탈환했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때가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이라 볼 수 있다.

시인이 이 작품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전쟁의 생생한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념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있지도 않다. 앞으로는 망망한 동해가 펼쳐진 조그마한 갯마을에서 오랜 세월 동안 파도가 일면 근심에 잠기고 그렇지 않으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그야말로 외롭고 서럽게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 그 동안의 그들의 삶은 이념이나 국가보다 기상의 변화에 생계를 걱정하는 생긴 대로 살아온 삶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깃발은 그것이 남과 북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즉 깃발은 의미롭기보다 무의미로운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의 제목 <意味>는 하나의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부조리보다 시인은 이곳 주민들의 생업과 관계가 있는 파도가 크게 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유치환의 서민지향성과 반이념지향성은 일제 강점기부터 추구한 아나키즘과도 연관이 있다. 따라서 유치환 시인의 전쟁과의 거리두기에서는 민족분단에 대한 비판의식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추구하는 분단극복과 통일지향성과도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