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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66.동시에 서로를 보는 사회

작성일 : 2022.06.12 01:15

동시에 서로를 보는 사회

/윤일현

 

 

파놉티콘(Panopticon)은 그리스어로 모두(pan) 보다(opticon)’라는 뜻을 가진 합성어로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의 한 형태이다. 파놉티콘은 이중 원형건물 형태다. 감옥 둘레에 4~6층의 원형 건물을 짓고 수감자들을 수용한다. 수용실 문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그 앞에는 좁은 복도를 설치한다. 원형 건물의 중앙에는 역시 원형의 감시탑이 있으며 감시자들은 이곳에 위치한다. 감시자들이 위치한 중심은 어둡게 해 수감자들이 감시자들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게 설계돼 있다. 감시탑에서는 수용실의 구석구석을 다 볼 수 있지만 수감자들은 감시자가 있는지 없는지, 감시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파놉티콘에서 감시 권력은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수감자가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서대문 형무소의 옥사와 운동시설인 격벽장이 파놉티콘 구조를 차용해 만든 건물이다. 중앙에서 옥사들을 전부 다 볼 수 있는 구조다. 격벽장도 부채꼴 모양이라 간수가 격벽장에 있는 죄수들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미셸 푸코는 벤담의 파놉티콘을 잔인한 철창이라고 불렀다. 푸코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파놉티콘의 의미를 확장하며 감시압력에 주목했다. 파놉티콘의 독방 수감자는 교도관이 어느 방향을 보는지 전혀 볼 수가 없다. 푸코는 파놉티콘이 만들어내는 감시받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이 현대 사회에서는 감옥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도 확산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감시받고 있거나 감시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인간의 개성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사상과 행동을 억압한다고 했다.

 

정보 파놉티콘이란 전자 기기를 이용한 감시 체계를 가리킨다. 파놉티콘에 갇힌 죄수가 항상 감시받고 있다는 두려움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듯이, 전자 파놉티콘의 정보망에 노출된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다른 사람이 열람하거나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모든 행동과 작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시대가 변해 감시와 통제를 하기 위한 수단은 직접 눈으로 지켜보는 시선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설치돼 있는 ‘CCTV’, 보이지 않는 정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언론과 의회, 시민사회, 통신시설 등이 발달하면서 다수가 소수를 역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됐다. 노르웨이 철학자 토머스 매티슨은 이를 시놉티콘(Synopticon)이라고 명명했다. 이제 소수 권력자와 다수의 일반 대중이 동시에(syn) 서로를 보는(opticon)’, 서로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푸코는 훈련으로 형성된 도덕과 윤리에 의한 지배도 지적했다. ‘그것은 좋고 바람직하며, 도덕적이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서 자기를 검열하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대개 역기능이 더 크지만, 코로나 방역 수칙 준수처럼 순기능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영업 비밀이나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교육과 엄격한 감시·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감시와 통제를 의식해야 하는 곳에서는 개인의 창의력은 말살되고 모험심과 진취적 기상은 사라진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많은 조직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불안하게 하고 있다. 반면에 그 모든 시선정보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것을 무시한다면 방종과 타락, 범죄에 대한 유혹은 커진다. 일부 정치인과 언론인, 기업인이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정보와 권력을 가진 소수의 횡포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다수의 시선과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속 정파와 조직의 이익을 위해 혹세무민을 일삼고 있다.

 

남의 시선정보 수집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운 곳은 없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정치 집단은 내가 상대를 지켜보며 알게 모르게 그들의 정보를 수집하듯이 상대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다양한 상황에서 항상 상호 견제와 균형을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기 검열과 통제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언행이 늘 주목과 관찰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런 자질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습득할 수 있다. 사회 전체가 이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