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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문학의 어제와 오늘 <부문2-7> 송정우 시인의 시에서 여행의 의미

작성일 : 2025.01.27 11:55

<부문2-6>

 

송정우 시인의 시에서 여행의 의미

 

 

 

(1)

 

최근의 한국 시단과 평단에서는 여행을 제재로 한 시를 <여행시> 혹은 <기행시>라는 명칭으로 마치 본격적인 시가 아니라 일종의 행사시 즉 경우의 시(occasional poems)로 취급하는 풍조가 있다. 필자는 이러한 통념에 대하여 동의할 생각이 없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여행이라는 행위는 많은 본격적인 문학 작품의 제재가 되었다. 따라서 그 작품들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시의 경우를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Byron(1788-1824)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하룻밤 자고 났더니 유명해졌더라.>(I 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라고 말하였다는 일화는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이 말은 그의 대표작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Child Harold’s Pilgrimage)가 출간되었을 때에 하루아침에 유명 시인이 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시는 바이런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난 뒤 1809-11년 친구와 함께 포르투칼, 스페인, 알바니아, 그리스, 중동(소아시아) 등지를 2년 여 여행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인물 차일드 헤롤드가 영국을 떠나 여행하는 것이 제재가 된 4부작, 4,655행의 장시長詩이다. 말하자면 그의 대표작

이 일종의 여행시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현대시의 아버지로 알려진 정지용(1902-1950)시인의 경우도 그의 두 번째 시집 白鹿潭(1941, 문장사)의 경우 제주도 여행과 금강산, 장수산 등 여행체험의 시가 대부분이다. 1930년대의 대표적 시론가인 김기림(1908-?)시인의 경우에도 많은 여행을 제재로 한 시를 썼다. 그 가운데 咸鏡線 五百 킬로 旅行風景이라는 장시의 서시는 명편名篇으로 알려져 있다.

 

世界

나의 學校

旅行이라는 課程에서

나는 수없는 신기로운 일을 배우는

유쾌한 小學生이다.

-서시전문(1934.9.19.朝鮮日報)

 

김기림이 조선일보 기자 시절 그의 고향인 함경도 성진으로 돌아가는 것이 모티브가 된 장시의 서시序詩이다. 이 작품은 짧은 시들이 21편으로 연결된 장시인데 그의 귀향에 대한 즐거움과 소학생처럼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해 있다. 여행은 미지의 장소와 그에 관련된 지식 즉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여행을 좋아하는 원인이다. 이러한 여행의 의미를 경쾌한 리듬과 적절한 비유로 형상화 하고 있는 시가 바로 이 작품이다. 이렇게 볼 때 Byron이나 정지용의 장시 白鹿潭이나 長壽山혹은 김기림의 작품들을 여행시라고 장르명도 아닌 명칭을 부여하여 폄하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는 여행시라 하여 가치평가를 본격적인 작품에서 배제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행 중에 느낀 시적 정서를 가볍게 혹은 즉흥적으로 표현하여 시 자체를 가볍게 보게 하는 시인들 각자의 시작 태도가 문제이지 여행이 제재가 된 시 전체를 폄하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송정우 시인의 여행을 제재로 한 연작시 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2)

 

송정우 시인은 무역업에 종사하는 탓도 있겠지만 여행과 자연을 좋아하여 생업의 틈틈이 50여 개국을 혼자서 여행하기도 하였다. 그가 좋아하는 여행지는 프랑스 파리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히말라야 산길 그리고 캐나다의 호수 등이라고 그 자신이 밝히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산의 해변을 좋아한다는 점 역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전거로 해외여행을 하는 데에 도전하였다. 그는 경쾌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여행이 제재가 된 수필 쓰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러한 여행 체험이 그의 시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목적이다

송 시인의 여행이 제재가 된 작품들은 결코 가벼운 시가 아니라는 것은 작품의 분석과 해석 후에 자연스럽게 내려질 결론이다. 우선 그의 시를 인용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이라는 제목으로 연작시를 쓰고 있으며 부제로 각 작품의 시적 공간과 시간을 밝히고 있다.

 

밤새 헤매는 불빛에

잠들지 못한 창

커튼을 열면

불확실한 또 하루가 우두커니 서 있다.

 

판화 같은 도시의 낯선 망토

혼자여서 두려운

밤의 고요를 품고

욕망의 발목을 잡은 야망이 가라앉는다.

 

산맥의 뒤편을

밤새워 헤매던

해무를 두레박질한

구름다발의 묵직한 기울기

 

지평선 잘룩한 허리를

무겁게 밟고 있는 고층 건물

하루치의 품삯으로

손을 내미는 사람들 줄이어 걸어온다.

-.11 홍콩 노쓰 포인트, 6전문

 

이 작품은 송 시인이 일로 방문한 홍콩의 야경이 시적 공간이며 시간은 6월이다. 말하자면 시적화자는 6월의 홍콩 야경을 고층 호텔에서 내다보고 있다.

시적화자를 송 시인으로 보면 그는 홍콩의 현란한 밤풍경과 일로 만났거나 만날 외국인들에 대한 염려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 하루의 상담의 실적은 오직 외국인 회사의 담당자의 마음속에 있다. 이러한 시간적이면서 송 시인의 직업인으로서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 첫째 연이다. 마지막 행 <불확실한 또 하루가 우두커니 서 있다> 라는 표현은 시간이라는 불가시적인 사물을 감각화한 부분이다. 둘째 연의 관심사는 홍콩의 밤 풍경을 판화라고 비유하면서 약간은 풍자성을 가진다. 이러한 풍자적 풍경 때문에 역시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관념어 욕망야망이라는 심리적인 관념이 가라앉는다라는 감각어로 구체화된다. 셋째 연 역시 홍콩 풍경인데 풍자적 시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마지막 연의 경우는 아침 출군에 분주한 홍콩 사람들의 모습이 역시 풍자적 풍경 과 어울러져 형상화 된다.

이상으로 볼 때 송 시인의 이 작품은 단순한 풍물시가 아니라 풍자성을 바탕으로 하는 문명비판과 자기 자신의 직업인으로서의 고뇌 등이 담긴 본격적인 시이다.

 

새벽빛 싱싱한 초록숲 첫 날숨에

산기슭에 비박한 바람이 순례를 떠난다.

아득한 북녘 하늘 발꿈치를 붙들고

검은 날개 반짝이는 까마귀 곡예를 하며

어둠에 잠겨 있던 땅이 눈을 뜬다.

바람결 흔들리는 벌개미취

수채화 한 폭을 그려가고

온몸으로 지저귀는 방울새

붉은 음표를 오선지에 찍는다.

자줏빛 흔들리는 노을

화려한 꽃다발을 들고 연주를 시작하면

한 사발 가득이 슬픔을 들이킨 산맥은

죽음 같은 칩거를 끝낸다.

남풍 따라 물결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수초 사이로

뱃사공의 하루가 무지개빛 날을 세운다.

안식의 불빛으로 찰랑거리던 이슬방울

침묵의 나락으로 소멸하면

잊혀진 가슴에 은빛 첫 별이 뜬다.

-.14 캐나다 보론 호수,9전문

 

이 작품은 그가 좋아하는 곳으로 열거한 캐나다의 보론 호수가 시적 공간이며 캐나다로서는 본격적 가을이라고 할 수 있는 9월이 시간이다. 이 작품에서는 일하는 송 시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즉 일하는 중간에 찾아간 풍경이 아니고 그 자신 홀로 여행하며 찾아간 풍경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여기서 찾을 수 있는 송 시인의 시적 역량은 사물에 대한 현미경적 관찰을 바탕으로 한 감각적 이미지의 형상화이다.

새벽 시간에 불어오는 미세한 바람의 감각화로 시는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점점 밝아오는 대지까지 어둠의 이미지를 동원하여 감각적 이미지로 치환한다. 벌개미취, 방울새, 수초, 이슬방울 같은 미세한 사물 그것도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방울로부터 시작하여 노을, 산맥 같은 거대한 사물도 등장하고 뱃사공 같은 사람도 등장한다. 그러나 사물마다 적절한 비유적 표현으로 감각화에 성공한다. 특히 산맥의 경우 슬픔과 죽음이라는 시어로 거대함과 웅장함을 구체화 시킨다.

이 시의 또 다른 특징은 시적화자의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는 점을 들고 싶다. 많은 시인들은 아름다운 풍경에 직접적인 감탄을 보여 사물에 대한 거리조정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송 시인의 이 작품에서 시적화자의 감정을 표현한 부분을 찾는다면 마지막 행 잊혀진 가슴에 은빛 첫 별이 뜬다라는 부분이다. 그것도 어떤 정서인지 한참 생각해야 하는 비유적 표현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절제로 인하여 이 시는 긴장감을 지속시키고 있다.

이상의 두 작품은 해외여행에서 얻어진 작품이다. 국내 그것도 부산 근교의 걷기 혹은 산책이 시적 공간이 된 작품 하나를 인용해보기로 한다.

 

혹한의 겨울 보내니

폭염의 여름이 오다.

 

바람 없는 바람 언덕

오르고 내리다 만난

 

세 갈래 골목길 같은 이마주름

늘 푸른 수평선이 찰랑거린다.

 

뜨거운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온

흰옷 입은 사람

 

오십년 눈물로 피워낸 꽃이

대낮 반딧불이로 날라 다닌다.

-.17 아미동 할머니, 8전문

 

이 작품은 아미동 산동네 일명 비석거리라고 불러지는 곳이 시적공간이고 시간은 폭염이 심한 8월이다. 앞의 두 작품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데 여기서는 사람 그것도 결코 행복한 삶을 살아오기보다 신산한 일생을 보낸 할머니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생애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송 시인은 그 많은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어쩌면 할머니의 아픔은 독자에게 책임 전가한 것도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러한 책임전가로 인하여 이 시의 시어 하나하나는 지극히 비유적이면서 상징적이다. 즉 다른 말로 하면 시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할머니의 이마의 주름살을 세 갈래 골목길로 비유한 것은 할머니의 결코 평탄하지 않은 생애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이마에 푸른 수평선이 찰랑거린다는 부분은 남편을 바다에서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렇게 상상하면 뜨거운 밤에 찾아오는 흰옷 입은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그녀를 이 세상에 두고 일찍 저 세상으로 간 남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할머니는 50년 세월을 눈물로 보낸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세상의 소망을 보여주는 것은 송 시인이 개신교 장로 시인이라는 점에서 모색해야 할 몫이다.

 

(3)

 

이상의 연작시 말고도 그의 첫 시집 희망을 다림질하다(2012)와 지난해에 발간한 제2시집 비상구를 찾다에도 많은 작품들의 시적 공간이 여행이다. 뿐만 아니라, 남들이 가보지 못한 세계 곳곳의 혼자 하는 자유여행 체험과 신앙 체험 그리고 외국 상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치열한 삶을 시적 자산으로 가진 송 시인에게 우리는 많은 기대를 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의 시에 나타난 여행의 의미가 그의 신앙인 개신교를 바탕으로 한 궁극적 관심에 기울어지기를 소망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