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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인문기행 태백산 천제단 2 문무대왕

작성일 : 2025.01.22 12:17 수정일 : 2025.01.22 12:21 작성자 : 김하기

태백산 천제단 2 문무대왕

 

어화 우리는 서라벌 사나이

서라벌이 있으니 우리가 있고

우리가 있으니 서라벌이 있네

어화 우리는 서라벌 사나이

살아도 서라벌 죽어도 서라벌

서라벌 칼위에 대적이 없네

양산 부리에 흰말이 우니

한배 밝은님 우리 앞에 오시고

깊은숲 속에서 흰닭이 우니

알지 할배검 우리님 오셨네

어화 우리는 서라벌 사나이 <화랑가>

 

문무대왕이 술을 올리고 천제에 9번 절하자, 백관들과 사람들도 먼발치에서 9번 절을 했다.

제관이 고천례하고 외치자,

문무대왕은 무릎을 꿇고 천제에게 고했다.

천제이시여, !환웅천왕의 자손인 과인과 문무백관을 비롯한 삼한 백성은 한마음으로 무릎꿇고 삼가 고하나이다.

박혁거세 거서간께서 744년 전 나라를 세운 이후 신라 백성은 천제의 자손임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응유(백제)와 예맥(고구려)을 형제로 가까이하며 서로 도우며 잘 지내왔나이다. 언제부턴가 이웃 응유는 바다 건너 왜를 앞세워, 399년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고구려 영락대왕(광개토대왕)께서 5만의 군사를 보내 왜를 쫓아내기도 했나이다. 이는 같은 천손으로 형제이기 때문이라 사료되옵니다.

642(의자왕 2) 8월 응유 의자왕은 우리 신라의 왕(선덕여왕 11)이 여자라고 깔보며 대야성을 공격하여 성주인 도독 김품석과 아내 고타소(문무왕의 누나)를 무차별 학살하고 백성을 마구 잡아가 노예로 삼고 서라벌까지 넘보았나이다. 이에 선왕이신 이찬 춘추공(김춘추)께서 직접 고구려 연개소문에게 직접 도움을 청하였으나, 응유 의자왕의 농간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나이다. 마침 고구려 선도해의 귀토지설 이야기로 춘추공께서는 토끼 용궁에서 빠져나오듯이 돌아와,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당나라 당태종과 나당연맹을 맺었나이다.

천제이시여!

물론 당나라의 세력을 이 땅에 끌어들인 것은 큰 잘못이오나. 철천지원수 응유 의자왕의 만행과 나라가 풍전등화 지경이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신라 백성을 굽어살펴주시옵소서.

태종무열왕 7660년 여름, 대장군 김유신 휘하에 5만과, 당나라 소정방이 13만 대군을 이끌고 와 도합 18만 대군이 철천지원수 응유 의자왕에게 항복을 받았을 때, 우리 신라 백성들은 모두 거리로 뛰어나와 만세를 부르며 천제의 은덕에 감사 또 감사하였나이다.

기쁨도 잠시 당나라 소정방은 백제 땅에, 약속에도 없던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여 20만 당군을 주둔시켜 점령군으로 횡포를 가하며 삼한 백성을 괴롭혀왔습니다. 신라 백성은 풀뿌리를 먹으며 이 땅에 주둔한 20만 당군의 식량과 의복을 제공하느라 피눈물을 흘렸나이다. 다 과인의 부덕의 소치라 사료되옵니다. 과인은 수모를 참고 대신들을 설득하며 기회를 엿보며 내심 눈물을 흘리며 와신상담 복수의 칼을 갈았나이다.

과인과 대장군 김유신은 당나라를 도우는 척하면서 신무기 쇠뇌· 장창 등을 개발하여 5만도 안 되는 적은 군사로 강대국 당나라 20만 대군을 대항해 이길 힘을 길렀나이다.

고구려 장기 집권자 연개소문이 죽고 아들들의 권력다툼과 내분으로 고구려 보장왕이 당나라에 무릎을 꿇자, 당나라는 더욱 기고만장해, 신라 임금인 과인을 계림도독으로 임명하는 등 치욕적인 수모를 주어 삼한 백성의 가슴에 큰 상처를 주었나이다.

삼한 백성은 과인과 대장군 김유신을 따라 더욱 하나로 뭉쳤나이다. 강국 당나라를 이길 방법은 정예로 훈련된 화랑과 신문기라고 판단하고 천보를 날아가는 쇠뇌와 당나라 무적 기병의 공격을 막을 장창을 개발했나이다.

장창· 쇠뇌 등 신무기로 훈련된 3만의 신라군과 고구려 유민들은 매초성買肖城에 주둔한 이근행의 20만 대군을 단번에 격파하여 대동강 이북 요동으로 쫓아냈나이다. 깜짝 놀란 당나라 설인귀는 5만의 병사를 이끌고 부랴부랴 서해안 기벌포로 상륙했지만, 훈련된 신라군과 백제 유민에게 참패하고 웅진도독부는 당나라로 철수하였으니, 천제이시여! 세계의 중화를 자칭하는 당나라는 이제 다시는 바다 건너 신라를 만만히 보지 못할 것이옵나이다.

이 모두가 하늘의 천제께서 굽어살펴 보살펴 주신 음덕이라 사료되옵나이다.

다시 삼한일통한 백성과 문무백관 과인은 엎드려 감사드리오니 부디 흠향하시고 길이길이 백두대간을 따라 신라를 보호하시고 굽어살피소서!“

 

문무대왕이 하늘에 고하는 고천문告天文을 낭독하자, 제관은 송신례하고 외쳤다.

문무대왕과 문무백관 그리고 백성은 일제히 하늘에 네 번 절했다.

제관은 음복례하고 소리쳤다.

태백산 천제단을 빙 둘러 산 사람들의 허리 펴는 소리가 한여름 갑자기 내린 소낙비 소리같이 요란했다. 새벽부터 식음을 전폐한 사람들은 이제야 허기를 느꼈고 배속에서도 요란한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둘러 앉아 준비해 온 제물을 펼쳤고, 태백산 천제단 주변 중간 중간 관리들이 준비한 간이 식당에서는 불을 피워 솥단지를 걸었고, 순식간에 태백산은 음식 냄새가 진동했고 주변의 까마귀들까지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허기는 졌지만 자신들이 먹기 전 먼저 고시레하고 까치 까마귀와 잡귀들에게 음식을 던져 주었다.

고수레는 기원전 2457(上元 甲子) 103환인 천제의 서자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 삼신과 삼천 관리를 거느리고 신단수 아래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따라온 삼족오(까마귀) ·호랑이· 늑대들과 온갖 잡귀에게 먼저 먹을 것을 나누어 준 데서 시작한 홍익인간의 작은 실천이었다.

남자들은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허리춤 호리병에서 술잔 돌렸고 주거니 받거니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술이 한잔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흥얼거리며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한쪽에서 도 개 글 윷 모야!“ 윷판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윷판 주위로 둘러앉은 사람들은 소리쳤다.

개로 잡고, 말을 엎어라.“

개로 잡고 먼저 한 동 나라.“

여기저기서 훈수를 드는 사람들 목소리가 더 컸다.

저쪽 산기슭 평지에서는 한판 씨름판이 벌어졌다.

웃통을 벗은 건장한 사내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샅바 싸움이 벌어졌고 심판을 보는 노인은 공정한 판결을 위해 진땀을 흘렸다. 징이 울리고 씨름이 시작되자, 황소 같은 두 사내의 날랜 움직임에 따라 사람들도 우르르 밀려났다. 한 사내가 들배지기로 상대방을 들어 올리자, 같은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와하고 함성을 질렀다.

넘겨, 넘겨. 조금만 더 힘 셔.“

그래, 잘한다. 버텨, 버텨.“

곧 넘어갈 것 같은 상대가 두 다리를 세우고 버티자, 힘이 빠진 사내는 상대를 땅바닥에 내려 놓는 순간, 들렸던 사내는 잡치기로 상대를 눈 깜박할 사이 넘겨버렸다.

! 이겼다.“

위쪽에서는 화랑 낭도들의 태견 겨누기가 벌어졌다.

낭도들은 태견 겨누기 시합 전 두 패로 나누어 주먹을 쥐고 흔들며 화랑가를 불렀다.

 

어화 우리는 서라벌 사나이

서라벌이 있으니 우리가 있고

우리가 있으니 서라벌이 있네

어화 우리는 서라벌 사나이

살아도 서라벌 죽어도 서라벌

서라벌 칼위에 대적이 없네

양산 부리에 흰말이 우니

한배 밝은님 우리 앞에 오시고

깊은숲 속에서 흰닭이 우니

알지 할배검 우리님 오셨네

어화 우리는 서라벌 사나이

 

화랑가가 끝나자 백군과 청군으로 나누어 서로 인사를 하고 겨누기에 들어갔다.

이켜,“

기합 소리를 지르며, 낭도가 뛰어 앞차기로 공격을 하자 상대는 뒤로 물러나며 손목으로 상대의 앞차기를 막아내며 예커.“하고 소리쳤다.

택견은 팔을 흔들며 발걸음으로 흐름을 타 상대를 공격하는 무술로 화랑 낭도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씨름과 택견이 벌어지면 늘 관중들로 발디딜 틈이 없이 모이는 구경거리였다.

한적한 나무 밑에서 아낙네들은 나무에 그네를 매달아 높이 타기 경쟁을 했다. 하얀 속치마가 바람에 날리며 나비같이 높이 나는 모습에 남정네들은 침을 흘리며 넋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