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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금강송
작성일 : 2025.01.22 12:07 수정일 : 2025.01.22 12:13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낙동정맥의 소나무 금강송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2절>
백두대간 낙동정맥을 따라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는 소나무와 참 좋은 나무 참나무다. 대체로 소나무는 낙동정맥에 많이 자라고, 강원도를 비롯한 백두대간에는 참나무가 많다. 태고 때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우리와 접화군생한 나무가 소나무와 참나무다. 소나무와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 둘 다 우리 민족에게 빼놓을 수 없는 나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줄 안다.
한 여론조사를 보면, 소나무는 67.7%의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나무로 꼽혔다. 애국가 가사 뿐만 아니라, 독일민요를 번안하여 “소나무야 소나무야”로 나무가 노래를 가진 나무는 소나무뿐이다. 키가 크고 잘생긴 소나무는 도심 아파트 단지나 공원 관공서의 들머리에 정원수로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꼭 산속이 아니라도 도심 주변에서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나무는 해· 구름· 산· 물· 바위· 불로초· 학· 거북이· 사슴 등과 같이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중 하나이다. 한국 사람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소나무는 "남산위에 저 소나무" 소나무는 애국가로 불리며, 우리의 강인한 의지와 통합의 한마음 일심을 상징해 왔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집을 짓는 대들보와 기둥으로 쓰였고 건물을 수호하는 상량신으로 간주했다. 아이를 낳거나 장을 담글 때 금줄에 숯과 고추· 종이 등과 함께 솔가지를 꿰어 잡귀와 부정을 차단했고, 정월 대보름날 소나무 가지를 문에 걸어두어 부정과 잡귀를 쫓았다. 추우면 땔감으로 배고프면 껍질을 벗겨 먹고, 죽으면 관으로 사용했으니, 소나무는 우리의 삶 자체였다. 이처럼 소나무는 우리의 삶과 생명을 지킨다고 으뜸을 뜻하는 솔로 불렸다. 사실 ha당 하루에 4kg의 피톤치드를 방출하는 소나무 숲은 사람의 활력과 생기를 되찾는 힐링에 으뜸이며 참 고마운 나무다.
율곡 이이는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송松· 죽竹· 매梅를 꼽았다. 윤선도는 시조 오우가五友歌에서 소나무를 벗으로 삼았으며,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 어려울 때 도와준 벗을 위해 그 고결함을 기리는 마음으로 겨울철 소나무를 그리기도 했다.
말쟁이들은 꿈에서 소나무를 보면 벼슬을 할 징조이고 솔잎이 무성함을 보면 집안이 번창하며 꿈에 송죽 그림을 그리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해몽했다. 소나무는 사람들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록수인데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하게 푸르니 절개와 의지의 상징으로 여겨 충정, 지조와 같은 유교적 덕목에 많은 사랑받았다.
심지어는 왕이 행차하는데 소나무가 가지를 들어서 왕에게 길을 비켜주었다고 높은 벼슬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보은 속리산 정이품송도 있으니 송松은 나무에 공 벼슬을 내릴만했다.
백두대간을 따라 우리나라의 산수는 매우 수려한데, 여기에 빠짐없이 소나무가 아름답게 수를 놓은 정경이 우리나라 자연미의 정형처럼 인식되어 왔다. 기암창송奇岩蒼松도 백사청송白砂靑松도 우리 민족의 기상과 정서를 길러온 아름다운 풍경이다.
松兮靑兮, 草木之君子, 霜雪兮不腐, 雨露兮不榮, 不腐不榮兮, 古冬夏靑靑, 靑兮松兮, 月到兮節金, 風來兮鳴琴
“소나무 푸르구나. 초목의 군자로다. 눈서리 이겨내고 비 오고 이슬 내린다 해도 웃음을 숨긴다.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변함이 없구나! 겨울, 여름 항상 푸르구나. 소나무에 달이 오르면 잎 사이로 금모래를 체질하고 바람불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유정의 「청송사靑松辭」
창송蒼松은 군자의 절개를 나타낸다는 시조의 한 구절이나, “낙락장송들아 너희들은 어찌 홀로 서 바람 비 눈서리에 푸른가. 우리도 창천처럼 변하지 않겠다.” 하는 시조나 “백설이 건곤에 가득할 때 홀로 푸르리라”라든가, “설한 풍이 있은 뒤에 송백의 절개를 알겠노라.”하는 논어의 한 귀절은 소나무의 불변의 의지를 읊은 것이다.
소나무는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줄기가 많은 주목을 받는다. 붉은 비늘로 몸을 단장하고 예술적으로 굽어 올라간 줄기는 조각 미술의 정취요, 절정이라 할 수 있다.
地聳蒼龍勢抱雲
“솟아오른 푸른 용이 하늘에 뜬 구름을 안고 있다”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소나무의 줄기는 하늘을 오르는 용으로 보이기도 했다. 때로는, 적룡赤龍으로 표현되기도 했는데 송피松皮는 일명 적룡피라고 불렸다.
소나무는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쓰였다. 신라 진흥왕 때 솔거率居의 황룡사 「노송도老松圖」는 신화로까지 알려졌다. 김홍도의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 이인문의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 김정희의「세한도歲寒圖는 소나무를 소재로 한 유명한 그림이다. 그 밖에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 · 「소나무와 호랑이」 · 「소나무와 꿩」 등의 명화가 있다. 민화 가운데에서도 작호도鵲虎圖 · 해치도海豸圖 등은 오래된 소나무가 배경을 이루고 있다.
‘솔 심어 정자라.’, 솔 씨를 심어서 소나무가 자란 다음에 그 근처에 정자를 짓거나 그것을 베어 정자를 짓는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여 성공하기까지는 너무도 긴 세월을 비유적으로 한 말이다.
백두대간 낙동정맥 기암괴석 마루금 따라 가장 잘 어울리는 붉은 금강송은 부처가 지닌 7 보물 중 하나인 금강을 붙여 영원불멸을 상징하며 그 자태가 아름다워 미인송이라 불리기도 한다. 겉껍질이 붉어 적송이라고도 하고, 삼척·봉화·울진 등에서 자란 금강송을 춘양역에서 모아 기차로 날라 춘양목이라고도 한다. 금강송은 예로부터 궁궐 등 중요 건축물에 쓰였으며, 최근에는 국보 숭례문 복원 등 각종 문화재 복원에 사용되었다.
금강송은 150~200년 정도 지나면 붉은 심재가 넓게 생긴다. 심재는 송진의 축적이며, 심재가 넓다는 것은 끈끈한 송진이 강하게 뭉쳐 그만큼 나무가 강직해진다는 것이다. 반면 불에는 치명적이다. 넓은 심재는 송진의 축적으로 불이 붙으면 활활 타오른다. 다른 나무는 불에 타다 저절로 꺼질 수도 있지만 금강송은 송진이 없어질 때까지 완전히 탄다.
울진 금강송 군락은 조선시대 숙종(1674∼1720) 때부터 보호했다. 숙종은 궁궐의 기둥이나 왕실의 관으로 사용되는 금강송을 보존하기 위해 황장봉계 표석을 세우고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그 흔적이 울진 소광천과 만나는 대광천 계곡에 황장봉표로 새겨져 있다. 이런 철저한 관리 덕분에 그나마 이곳에는 200~500년 이상 된 금강송 8만여 그루가 하늘을 바라보고 높게 치솟아 있고 나무높이는 최고 35m에 이른다.
금강송은 1959년부터 국내 유일의 육종림으로, 2001년에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