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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문학의 어제와 오늘 <부문2-6> 손정란 시인의 눈물과 웃음이 공존하는 시쓰기

작성일 : 2025.01.20 12:24

<부문2-6>

 

손정란 시인의 눈물과 웃음이 공존하는 시쓰기

- 1시집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암호를 풀다의 작품 세계

 

 

손정란 시인의 작품을 필자가 처음 만난 것은 부산크리스천문인협회의 기관지인 부산크리스천문학2020년 하반기호(통권34)의 신인상을 심사하는 자리에서였다. 6편의 투고작 가운데 3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그리고 손 시인의 작품의 특색으로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궁극적관심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신앙고백이나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에 대한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다른 사물을 통하여 간접적이고 객관적인 방법과 태도로 시를 형상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번의 제1 시집의 특성을 그 당시의 당선작 3(1;고립, 2; 늙은 아파트의 봄, 3;, 뻥이요)과 다른 몇 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어무이, 담 번엔 뭘 사올까?

먹고 싶은 것 언제든 말하이소

 

금방 꺽어질 듯

휠체어에 의지한 엄마에게

방금 말아온 비빔국수를 권하는 아들

틀니를 덜거럭거리며 오물오물

맛나게 드시는 엄마

 

눌러 쓴 둥근 모자 아래

길쭉한 코와 가는 눈매

마르고 긴 국화빵이다

 

가을 햇빛 아래 가늘가늘

서로가 물들인다

사방으로 번지는 꽃향기

-국화빵전문

 

1부에 편집 되어 있는 국화빵은 요양원이 시적 공간이다. 아마 손 시인이 봉사활동하면서 겪은 체험의 공간일 것도 같다.

이 작품말고도 손 시인의 작품 가운데는 노인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에서는 손 시인은 다분히 관찰자적 어조를 가지고 있다. 물론 비유나 공간적 배경을 바라보는데서 손 시인의 어조가 지나치게 냉철하지는 않은 따듯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점은 객관적 관찰자로서의 역할에서 다소 벗어나고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약점이 아닌 장점이 되고 있으며 따뜻함으로 인하여 읽는 독자들에게는 웃음을 자아나게 한다.

국화빵의 경우 요양원에 휠체어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는 어머니를 찾아온 아들과의 만남이 시적 공간이자 전개되는 정경이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상식적 인식은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는 불안한 공간이다. 그러나 손 시인의 이 작품은 그 서두에서부터 상식을 벗어난다.

첫째 연의 모자간의 대화에서 사투리를 사용하여 정감이 넘치게 하고 있으며 아들의 세련되지는 않지만 어머니를 섬기는 진솔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정감은 둘째 연에서 어머니의 노화로 인한 장애를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더욱 세밀해진다. 이러한 정경은 결코 아름답거나 희망적인 정경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어머니의 모습에서는 안타까움과 슬픔의 정서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을 국화빵에 비유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내개 한다. 이 비유가 시의 제목이 되었다는 것도 이례적이다. 이러한 웃음은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밝고 향기를 느끼게 하는 배경을 배치함으로써 건강한 웃음이 된다.

 

횟집이 차창처럼 들어선

버스 종점 옆 늙은 아파트

 

비릿한 바다 냄새에 절여진

늙은 고양이 춘곤증과 뒹군다

늘어진 하품으로 바다를 늘인다

 

소쿠리 가득 엣날과자 쏟아 놓고

오물오물 나눠 씹으며

늙은 아낙들의 수다가 익어간다

 

백내장 걸린 개를 안은 여인이

어여 함 잡서봐

정류장 질러가는 늙은 발목을 잡는다

 

흐드러진 봄꽃들 한껏 물을 올려

묵은 것을 덮는

늙은 아파트의 오래 묵은 봄날

-늙은 아파트의 봄날전문

 

 

2부의 첫 작품인 늙은 아파트의 봄날의 경우는 시인의 의도나 정서가 철저하게 배제된 작품이다. 즉 관찰자적 태도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첫째 연과 둘째 연에서는 재개발을 앞 둔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풍경이 제시된다. 바다가 멀지 않은 아파트 단지라는 것은 둘째 연의 정경 제시에서 짐작할 수 있다. 졸고 있는 고양이마저 늙은 것으로 등장시켜 낡은 아파트 풍경을 더욱 삭막하게 한다. 그러나 셋째 연과 넷째 연에서는 늙은 아낙들이 소쿠리 가득 옛날 과자를 쏟아놓고 오물오물 먹으면서 수다를 뜨는 모습과 지나가는 이웃에 과자를 권하는 여인이 등장하면서 다소 사람 사는 온기를 느끼게 한다. 이 시의 전체적 분위기는 등장하는 고양이와 개와 여인들까지 모두 늙었지만 마지막 다섯째 연에서는 흐드러진 봄꽃들을 등장시켜 낡은 아파트 풍경과는 대조적인 풍경을 등장시켜 삭막함을 다소 청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풍경 속에서도 인정스러운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손 시인의 삶에 대한 태도를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늙은 아파트의 봄날이다. 말하자면 봄날로 인하여 새로운 희망이 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벚꽃이 터널을 이룬 아파트 입구

오늘도 뻥튀기 남자는 바쁘다.

 

꽃보다 더 많은 꽃구경 인파는

모두다 고객

남자의 신명 속으로 땀이 흐르고

 

뻥이요, 뻥이요.

 

자주 남자는 뻥을 친다

 

둥구란 뻥, 길쭉한 뻥, 입조쌀 뻥,

 

남자의 1톤 트럭이 온통 뻥이다

구경꾼들 홀리기 좋은 뻥

뻥으로만 살아가는 남장의 뻥 소리는

꽃잎보다 더 크게 부풀어

뻥 같은 내 봄날을 다덮는다

 

뻥이요

뻥 사요

-,뻥이요전문

 

3부에 편집된 , 뻥이요는 앞의 작품 늙은 아파트의 봄날보다 더 인정스러운 풍경이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벚꽃 터널을 이룬 아파트 단지 풍경이 그렇고, 몰려온 꽃구경 인파들로 인하여 마치 축제의 풍경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시의 제재이자 주인공인 뻥튀기 남자의 행동이나 고객을 부르는 말솜씨는 역동성을 넘어 웃음까지 자아내게 한다. 특히 뻥튀기의 과 동음이어인뻥을 친다에서의 ’(거짓)에서는 언어유희(pun) 수법을 통원하여 풍자성에서 나오는 웃음까지 느끼게 한다. 그러한 언어유희의 효과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부은 여섯째 연이다. 첫 행 남자의 1톤 트럭은 온통 뻥이다에서 에서 이중효과는 결국 마지막 행에 등장하고 있는 시적화자의 뻥 같은 내 봄 날에서 삶의 이중성마저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페이소스보다 이 시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은 뻥튀기의 제조과정에서 들려오는 의성어 에서 느껴지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후련함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착잡한 손 시인의 삶의 현실을 날려 보내는 소리로도 인식된다.

 

남천동 포구

테트라포트 아래 앉아

아들이 내 술주정을 받는다

사이에는 행간이 넓다

 

안사람 병으로 쓰러져

병수발로 수년간 매달렸지만

떠나고 지금은 보고 싶다

살기 싫다, 자식 다 소용없다

술 핑계로 목 놓아 울었다

꿈에도 보이지 않는 마누라

 

청춘을 돌리고 싶다는 늙은 아들은

목에 금체인을 두르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다

속이 타고 가슴이 뜨거우면

허벅지에 열이 나는 것일까

 

날 뒤에 태우고 돌아가는

노을에 비친 아들 머리카락이 붉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굽은 길 연속

형광빛 자전거 패달이 무겁다

꼬부랑 길 부리에 바퀴가 무겁다

-행간이 넓다전문

 

4부에 수록된 행간이 넓다는 제1국화빵과 유사한 노인들의 삶의 모습이 시적 배경이 된 작품이다. 국화빵이 모자간의 정겨운 모습을 관찰자적 입장에서 보여준 것이라면 행간이 넓다는 부자간의 다소 어색한 모습을 아버지의 시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행간이 넓다에서는 웃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내를 먼저 보낸 늙은 아버지의 서러움의 정서만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준다. 부자간의 다소 어색하다는 느낌은 제목이기도 한 행간이 넓다라는 비유적인 표현에서도 감지된다.

첫째 연부터 손 시인의 시의 대표적 기법인 관찰자적 공간제시 기법이 등장하지 않고 시적 화자 아버지의 독백과 진술이 시작된다. 부산 남천동 바닷가 테트라포트 아래 앉아 부자간에 어색한 모습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술주정을 한다. 들째 연은 술주정이라고도 볼 수 있는 아내를 병수발 몇 년 만에 먼저 저승으로 보낸 독백과 아버지의 진술이 섞여 있다. 이 부분에서 돋보이는 것이 아버지의 아내 사랑이다. 셋째 연에서는 아버지의 나이가 젊지도 않는 아들의 젊은이 흉내가 못마땅해 한다. 마지막 넷째 연에서는 아버지를 자전거에 태우고 귀가하는 모습을 아버지 입장에서 권태를 느끼면서 관찰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부자간의 어색한 관계가 다소 소멸된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네 편의 작품은 주로 노인들이 시적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 노인들의 노년기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편들이다. 손 시인은 아직 이들보다 훨씬 젊다. 그러나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시를 썼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한국 시단에 좀처럼 보이지 않은 그 나름의 특색을 간직한 시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노인들의 요양보호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자주 언론지상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시집이다. 특히 최근에 자녀들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의무감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보도를 미루어 볼 때 젊은이들에게도 읽혀져야 할 시집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마지막으로 손 시인 자신의 슬픔과 그 극복의지가 담겨 있는 시 두 편을 인용하여 그것들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는 것으로 손 시인의 시세계의 특질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병상에 누운 사람

누가 살을 다 가져갔나

몇 해 째 비운다

 

옷을 갈아 입힌다

펄럭거리는 옷 속에서

마른 장작개비로

일어서는 몸

 

버석거리는 팔 들어 올려

내 눈에 매달리는 눈물

가랑잎으로 금가는 손을 만진다

 

눈물이 감싸는 핏줄

끌어다 눈에 넣는다

조용히 눈물이 되는 두 사람

-눈물을 만지다전문

 

()걸음이 걸린다고 부르짖는다

큰 파도 앞에 섰다

거친 피도는 윤슬이 아름답다

가슴을 눈물이 적신다

 

탄력있는 노랑머리가 패들 보드에 오른 후

파도 가르고 보이지 않을 시점까지 거슬러 간다

파도와 함께 뒹굴며 실링이 하다 지친 여지는

파도에 서핑 보드를 숨기고 물 밖으로 나왓다

조용한 바다가 뒤집어지며 쾌속정이 달리고

서퍼들은 파도 앞에 일어선다

 

그래, 파도는 두려워하는 게 아냐

즐기며 헤쳐나가는 거야

-파도타기전문

 

1부에 편집된 ()눈물을 만지다의 경우 손 시인의 가족사가 직접 시적 제재로 등장하고 있다. 의사였던 손 시인의 남편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천국으로 갔다. 그 병상의 간병 체험이 시적제재가 된 것이다. 손 시인이 직접 병상을 지키며 남편의 쇠약해져 가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는데도 첫째 연과 둘째 연에서는 냉정할 정도로 슬픔이 억제 되어 있다. 그러나 읽는 독자들은 마치 자가 가족의 일인 것처럼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연에 와서 비로소 슬픔을 눈물로 사물화 하여 표현한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연에서는 두 사람이 같이 슬퍼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슬픔의 정서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눈물로 사물화 한다. 이러한 정서의 사물화 능력이야말로 손 시인이 가지고 있는 시작의 큰 자산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의 극복이 두 사람이 반드시 천국에서 만날 것이라는 그가 가지고 있는 신앙에서 왔듯이 정서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 사물화의 능력 또한 그의 신앙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4부에 편집된 () 파도타기는 바다에서 윈드서핑을 하고 있는 무리들을 바라보면서 쓴 시이다. 걸음이 걸리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파도를 인식하는 첫째 연에서는 슬픔의 정서를 눈물로 사물화하고 있다. 그러나 둘째 연에서는 파도타기를 하고 있는 서퍼들의 좌절하지 않는 투지를 발견한다. 그래서 마지막 셋째 연에서 파도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파도를 즐기며 헤쳐나가는 것으로 인식한다. 손 시인은 필자가 심사한 작품 고립(1부에 편집)에서도 바다를 새로운 희망으로 인식하고 있다.

앞으로 손 시인은 이러한 희망과 천국에의 소망을 보다 치열한 상상력으로 사물화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