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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05.22 10:39 수정일 : 2022.05.22 10:42
김지하와 마야콥스키
/윤일현
러시아 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레닌이 청년 동지들과 다방에 들어갔다. 베토벤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한 청년이 말했다. “선생님, 이런 더러운 세상에 저런 음악이 왜 필요합니까?” 레닌이 짧게 답했다. “세상이 더러우니 저런 음악이 필요한 것 아닌가?” 뜻밖의 답이었다. 혁명을 선동하는 음악이 나와야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부르주아 취향의 베토벤 음악을 옹호한 것이다. 다른 청년이 질문을 했다. “선생님,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누구의 시를 읽어야 하겠습니까?” 모두가 레닌의 입을 바라보았다. “푸시킨을 읽어 보게나” 당시 열렬한 혁명 시인인 마야콥스키를 추천하지 않은데 충격을 받았다. 부르주아 낭만주의자의 시를 읽어라 하니 역시 뜻밖이었다. 왜 그랬을까. 레닌 역시 마야콥스키가 혁명을 위해 소중한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청년들에게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그렇게 말했으리라.
레닌 사후 러시아를 대표하는 혁명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는 소련 사회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는 혁명의 대의와 명분, 정신은 사라지고 점점 교조주의, 경직된 관료제로 바뀌는 소련 사회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는 작품을 통해 스탈린 체제의 권위주의와 기회주의를 풍자했다. 그는 당국과의 잣은 불화로 심각한 내적 갈등에 시달리다가 1930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책상 위에는 이틀 전에 쓴 유서가 놓여 있었다. “나의 죽음에 대해서 그 누구도 탓하지 마오. 그리고 이야깃거리로도 만들지 말아주오. 죽은 자는 가십을 싫어하오. -중략- 사랑의 배가 나날에 부딪혀 부서졌다. 삶과 나는 이해도 득실도 없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준 상처와, 아픔과 멸시를 일일이 헤아려도 승부의 득점은 없구나. 그대들 모두에게 최고의 행운이 깃들기를!” 그가 죽은 후 스탈린도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7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인 김지하(본명 김영일)가 세상을 떠났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사위다. 1970년 부정부패를 고발한 ‘오적(五賊)’으로 필화를 입었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1980년에 석방되었다. 그는 1991년 학생들의 연쇄 분신 파동을 보며 한 일간지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생명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 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면서 자살을 조장한다고 운동권을 공격했다. 이 칼럼을 계기로 그는 변절자로 공격받기 시작했다. 그보다 먼저 작고한 부인 김영주 씨의 언론 인터뷰는 한국 민주화 과정의 비극과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정권의 박해야 예상했지만 ‘민청학련’ 사건이 터지면서 요상한 일이 벌어졌고 김 시인이 좌우 양편에서 박해받았다고 했다. 고대 사회에서 산 인간을 제물로 바치듯 좌파 일각에서 김 시인을 박정희 정권이 죽이도록 유도해 ‘민족의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상황을 인식한 박경리 선생이 사위를 살리기 위해 정권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용하게 백방으로 뛰어다닌 덕분에 남편이 살아남았다고 했다. “좌파의 색채는 여럿이다. 순수한 사람도 많지만, 야심가도, 종북주의자도, 간첩도 있다. 돌아보면 민주화 과정에 악(惡)도 기여한 바가 있다. 온갖 세력이 합쳐야 민주화가 가능했다. 민주화했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때론 은밀하게, 때론 공개적으로 남편 속을 들쑤시고 마음에 상처를 줬다. 석방된 이후 20년 동안 12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젊은이들의 분신자살이 이어진 1991년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발표한 뒤엔 무슨 사회적 발언만 하면 못 잡아먹어 조직적으로 난리를 쳤다. 그 배신감과 원통함이 오죽했겠나.” 그녀의 말 중에서 격정적인 부분은 걸러내더라도 이 발언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진영을 떠나 깊은 울림을 준다.
비정한 혁명가로 생각하는 레닌조차도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우는 것을 경계했다. 누구나 공과(功過)가 있다. 마야콥스키의 말대로 ‘죽은 자는 가십을 싫어한다.’ 김지하의 죽음이 아직도 흑백 논리로 편 가르기를 일삼는 진보·보수 진영 모두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주면 좋겠다. 격렬한 저항, 피의 혁명, 투옥, 일방적인 비난, 매도가 없는 곳에서 부디 영면하소서.
<시인/ 윤일현교육연구소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