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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재미로 주역 읽기>22.눈물로 탄식하고, 암소를 기르면 길하리라, 곡신불사(谷神不死)

작성일 : 2022.05.20 11:07 수정일 : 2022.05.20 11:12

눈물로 탄식하고, 암소를 기르면 길하리라, 곡신불사(谷神不死)

/양선규

 

까막눈이긴 하지만 하루에 한 편씩 주역을 읽다 보니 한 가지는 알겠습니다. 상경(1~30)을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로 읽었습니다만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교훈 하나는 분명히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 경험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서 별다른 의심이 들지 않는 가르침입니다. 좋고 나쁨, 길과 흉은 항상 하나로 뭉쳐 다닙니다. 길흉은 때에 따라 바뀌고 주체(사람)의 공덕(功德)에 따라 바뀝니다.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고정된 운세라는 개념도 아예 없는 것입니다. 때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지요? “변치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변한다는 사실 하나뿐이다라고요. 주역도 그런 말씀을 계속 반복해서 들려줍니다.

 

제게 주역이 재미있는 텍스트인 이유는 또 있습니다. “()가 중정(中正)에 오도록 해서 암소를 기른다(畜牝牛)”라는 식의 주역 식 표현이 좋습니다. 뜻을 새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가급적 성질 죽이고, 매사에 양보의 미덕을 발휘해서 주변을 안정시키면 복은 저절로 온다는 뜻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주역의 묘미는 그 암소를 기른다는 식의 상징적 표현에 있습니다. 마치 노자의 곡신불사(谷神不死,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처럼 들립니다. 현빈(玄牝, 검은 암컷)을 연상시킵니다. 금방 봐서는 무슨 뜻인지 애매하기만 합니다. 살림을 풍부하게(두텁게) 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인지, 아니면 함께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할 궁리에 몰두하라는 권고인지, 어느 하나를 딱 집어서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런 애매하게 둘러말하기가 상징적 표현의 특징입니다. ‘암소에도 상징적 의미가 있을 것이고 기른다에도 상징적 의미가 있을 겁니다. 물론 그 둘이 합쳐졌을 때 생산되는 의미가 또 있을 것이고요. 그런 상징적 표현을 음미하는 일이 제게는 참 재미있습니다. 관습적으로 형성된 상징적 의미에다 제 삶의 맥락이 부여하는 개인적 의미가 합쳐져서 만들어내는 어떤 의미적 느낌’(어느 드라마에서는 그런 것을 느낌적 느낌이라고도 표현하더군요)을 이리저리 굴려보는 일이 무척 재미집니다. 그런 의미적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상징의 역할이 그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의미적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주역 서른 번째 괘, ‘중화리’(重火離), 이괘(離卦)의 경문이 유난히 그렇습니다. ‘()는 곧음이 이로우며, 형통하니 암소를 기르면 길하리라’(離利貞亨 畜牝牛吉)입니다. 개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육오의 효사입니다.

 

...육오는 눈물이 비오는 듯하며 슬퍼 탄식하니, 길하리라(出涕沱若 戚嗟若吉). -- 제자리가 아니니 서 있는 곳을 감당하지 못하고 유로 강을 탔으니(以柔乘剛) 아래를 제어할 수 없다. 아래가 강()하여 전진해 나와 장차 자기를 해치게 되니 깊이 근심하여 눈물이 흐르고 탄식함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존귀한 자리에 붙어 있으니 사효가 반역의 우두머리가 되어(四爲逆首) 아주 깊은 근심을 끼치나 사람들이 도와주므로 이에 눈물 흘리고 탄식하여 길을 얻게 된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 241]

 

중화리를 읽다보니 인생만사 중화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특히 정치판이 그렇습니다). 눈물을 흘린 자가 여러 사람의 도움을 얻어 존귀한 자리에 올라 그 덕을 사방에 미치게 하고 그동안 희희낙락하며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위하지 않던 자들은 눈물 속에서 혼자서 밤을 지새웁니다. “제 자리가 아닙니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던 자가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온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로 동분서주합니다. 중화리는 아무래도 정치에 유효한 괘인 것 같습니다. ‘눈물 흘리고 탄식했던 이들이 곧음을 고수하여 길함을 얻는 것은 정치의 상도입니다. 큰 승리는 항상 그들의 것입니다. 다만 주역의 말씀에는 존귀한 곳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해와 달이 하늘에 붙으며 백곡과 초목이 땅에 붙으니 거듭 밝음으로써(重明) 바른 데 걸려 이에 천하를 화하여 이루니라(乃化成天下). 부드러운 것이 중정에 걸린 까닭에 형통하니 이로써 암소를 기르면 길하리라.”라는 단전(彖傳) 말씀에 귀 기울여만 합니다. 대의와 명분을 잃지 않고 눈물 흘리고 탄식하였을 때를 잊지 않고 자신을 바르게 하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또 암소 기르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일 것입니다. 구사(九四, 반역의 머리가 되어 근심을 끼치는 것)가 아니라 육오(六五, 아랫사람들의 눈물과 함께 하는 것)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바른 정치일 것입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