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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기행

백두대간 다향 2

작성일 : 2025.01.14 10:53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문무왕과 설총의 爹香다향 2

 

각승의 삼매문을

처음으로 열어서

거리거리 걸으며

무애박을 울렸네

요석궁에 달 밝을 때

봄밤 깊이 잠들더니

분황사 문 닫히고

빈 그림자만 돌아보네 일연의 원효 찬

 

당나라 종남산 태화사에서 유학 중이던 승려 의상이 전한 정보는 이러했다. 모월 모일, 당나라 장수 설인귀와 이근행이 군사 5만과 말 5천 필로 바다 건너와 전라도 기벌포로 상륙한다는 내용이었다. 단번에 신라 조정은 좌불안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나라 소정방은 매소성 전투에서 김유신에게 패했지만 기벌포에서 다시 군수품과 병력을 보충받아 북쪽과 서쪽에서 서라벌로 협공하려 한다는 정보는 이미 간자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하지만 43년간이란 오랜 삼국 전쟁과 나당전쟁의 후유증으로 신라는 싸울 수 있는 군사들이 부족했고 그나마 있는 군사도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설상가상 김유신 장군도 노환으로 별세하고 풍전등화 신세였다.

폐하. 더 이상 징집할 장정이 없습니다. 집집마다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은 이미 다 동원되었습니다. 급히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머리를 조아리고 화친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사료되옵니다.“

병부령 김군관의 보고를 받은 문무왕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후 문무왕은 결심한 듯 주먹을 쥐고 명을 내렸다.

여봐라. 지금 태자 정명과 사찬 구진천을 급히 들라하라.“

대신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잠시 후 앳된 얼굴의 태자 정명은 유난히 커 보이는 갑옷을 입고 어전에 고했다.

아바마마, 이번 기벌포 전투에 소인도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출전하겠습니다.”

이 모습을 본 병부령 김군관이 나섰다.

폐하, 태자마마 나이가 아직 어리고 전투 경험이 없습니다. 만약 설인귀가 태자마마의 출전을 알면 사로잡으려고 온갖 수를 쓸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혹 당나라에 사로잡힌다면 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태자마마의 출전을 거두어주시고, 지금 당장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도모하소서.”

폐하, 태자마마의 출전을 거두어주십시고, 당나라에 사신을 급히 파견하소서.”

대신들은 앞다투어 태자 정명의 출전을 만류했고 화친을 아뢨다. 문무왕은 단호하게 태자 정명에게 하문했다. 대신 모두 들으라는 투였다.

태자. 올해 나이가 몇이냐?”

소인 올해 열다섯이옵니다. 아바마마.”

그럼 황산성 전투의 관창과 반굴의 이야기를 들었느냐?”

아바마마. 소인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관창도 태자와 비슷한 아니, 한 살 많은 16살에 아버지인 장군 품일을 따라 출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어렵고 힘든 전투도 없었다. 백제 장군 계백은 군사 5천으로, 5만에 가까운 우리 군을 죽기를 각오하고 방어했다.

처음 우린 백제보다 열 배나 많은 군사를 투입하고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전쟁은 힘이나 용기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라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점점 전세는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태자, 전쟁은 사기와 임전무퇴의 정신만으로 싸우는 것은 아니다. 명심하라.”

신라의 장군 흠춘은 공과 명예를 세울 것을 어린 아들에게 독려했고 화랑정신으로 무장한 반굴은 자기 아버지의 명을 받고 적진에 홀연히 들어가 전사하였다. 이것을 본 품일 좌장군도 아들인 관창에게 용감하게 싸우다 죽을 것을 당부했고 관창도 몇 번이나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어린 화랑 관창과 반굴의 기백과 임전무퇴의 정신은 신라군에게 큰 교감이 되어 결국은 승리하게 되었다.

아바마마의 하교 깊이 새기고 명심하겠습니다.”

태자 정명의 굳은 결심을 가상히 여긴 문무왕은 고개를 끄떡이며 명했다.

여봐라. 이번 기벌포 전투에 부장 한 사람을 붙이겠다. 사찬 구진이다.”

사찬 구진천은 벼슬은 그리 높지 않으나 다부지고 심기가 굳은 사람이다. 사찬 구진천이 활을 잘 쏜다는 소문은 태자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문무왕이 비밀리 구진천에게 신무기 쇠뇌를 만들게 했던 것이다. 그것도 사거리가 천보를 간다는, 보통 화살의 5배 이상의 사거리다.

태자, 그리고 구진천은 듣거라. 기벌포는 짐이 태자인 시절 출전하여 백제를 도와 바다 건너온 왜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린 백강구(금강하구) 지역이다. 기벌포의 지형과 우리의 신병기 쇠뇌로 선제 기습공격을 하면 적은 병사로도 의외로 좋은 전과를 올릴 수 있다.

꼭 당나라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당나라와 손잡은 할아버지 무열왕의 삼국통일 당위성을 입증하길 바란다.”

아바마마, 명을 받들어 긴 7년 나당전쟁을 마무리 짓고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

 

모월 모일, 해 질 무렵 태자 정명은 산마루에서 기벌포를 내려다보며 아버지 문무왕의 말씀을 되새기며 고개를 끄떡였다.

서해는 맑고 아름다웠다. 석양을 등지고 큰 돛을 올린 수천 척의 배들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꼭 바다를 질주하는 수백 마리의 돌고래 떼를 보는 듯했다. 날이 저물자 배들은 항아리 같은 기벌포 해안에 빽빽하게 정박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어둠이 깔리고 서해에 초승달이 떠오르자 산마루에서 효시 하나가 불이 붙은 채 밤하늘을 가로질러 소리를 내며 비행했다. 그 모습은 밤하늘에 흐르는 유성 같았고 참 아름다웠다. 설인귀는 선상에서 장군들과 내일의 총공격을 대비하여 마지막 작전을 점검하고 있었고, 당나라 군사들은 대부분 젓가락을 들고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장군, 저기 하늘을 보십시오.”

설인귀의 얼굴이 경극을 하듯 붉게 변하는 순간,

아뿔싸!”

효시를 신호로 기벌포 산 마루금을 따라 도화선에 불꽃이 타오르듯 하더니 일시에 밤하늘을 수놓았다. 장관이었다. 당나라 장군들과 군사들은 멍하니 젓가락을 든 채 밤하늘을 비행하는 불꽃에 넋을 놓고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당나라에서도 본 적이 없고 들은 적이 없는 난생처음 보는 신라의 밤하늘이었다. 군사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입에 밥을 문 채 다물지를 못하고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 아름답구나!

그것도 잠시 하늘을 수놓은 불꽃은 비 오듯 내렸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당나라 배들은 순식간에 화염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밤하늘에서는 소낙비가 오듯 불꽃은 줄기차게 쏟아졌다. 곧이어 기벌포는 그야말로 불바다가 되었고 아비규환의 죽음의 바다가 되고 말았다. 때마침 불어온 내륙의 동풍은 삽시간에 당나라 군함 수백 척을 흔적도 없이 태워 수장시켜버렸다.

날이 밝자 기벌포 바다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흔적도 없이 잔잔했고 고요했다. 포구엔 갈매기 몇 마리가 낮게 날고 있었다.

 

폐하, 지공을 다 막으면 임(), 하나 열면 남(), 둘 열면 무(), 셋 열면 황(), 넷 열면 태(), 다섯 열면 고(), 다 열면 중()이옵니다. 이 음정을 저취 평취 고취로 입김을 불어 넣는 세기에 따라 소리가 나는 것이옵니다.”

* ( )안은 구음口音. 대금의 소리를 흉내 내 표기한 것.

만물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소리를 멀리 보내기도 하고 잡아당기기도 해야 합니다.

세상 구석구석 낮고 낮은 곳까지 소리를 보내기 위해서는 가늘고 긴 소리를 끊임없이 내야 합니다.

뱃속에서 뿜는 숨이 강하거나 약하거나에 따라 소리가 부드러워지고 강해집니다.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소리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용이 강하게 불을 뿜듯, 때에 따라서는 아비가 아기의 아픈 곳을 입술로 어루만지듯 입김을 불어야 합니다.

소리를 하늘 높이 솟구치듯 때로는 바다 깊이 가라앉듯이 부셔야 합니다. 단칼에 내려치듯 번개같이 빨라야 합니다.

늦가을 졸졸 흐르는 맑은 개울물의 돌멩이가 보이듯 얇고 맑아야 합니다. 때로는 마당의 빨래가 마를 듯 바람에 흔들려야 합니다.

입김의 굵기와 새기, 취구에 입술의 재낌과 숙임, 넉넉하고 든든한 호흡과 내공을 요 합니다.

 

쌍골죽 대금은 호락호락하질 않았다. 결코 현실의 세상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좀 가벼워진 대금을 신문왕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불기 시작했다. 소리가 좀 나는 것 같아 자만하면 다시 먹통이 되어 소리가 나질 않았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면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신문왕의 몸과 마음에 쌍골죽 대금이 동화되어 갈 무렵 시나브로 대금 소리는 월성을 넘어 서라벌에 퍼져 나갔고 사람들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신문왕은 밤이면 대금 불기에 혼을 다했고, 신중하고 과감하게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쳐나갔다. 먼저 진골 계급의 대대적인 숙청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화백회의를 파하고 집사부를 두어 왕권을 강화했다. 반란을 일으킨 장인 김흠돌과 파진찬 흥원, 대아찬 진공. 그의 자식들까지 일벌백계 참수했다. 전쟁 공신들의 녹읍을 거두어들여 관리들에게 관료전을 지급하자 백성은 두 손을 들고 만세를 불렀다. 국학을 설립하여 골품과 관계없이 인재를 양성했고 등용했다.

긴 기근과 자연재해로 굶주린 왜구들이 황산강(낙동강)을 타고 김녕(김해) 삽량주(양산) 일대 대대적인 노략질을 감행했지만, 잘 훈련된 도비(다대포), 임해진(기장), 장봉진(동래)의 군사들이 출동하여 일망타진하는 전과를 올렸다. 백성은 앞다투어 만세를 불렀고, 목숨을 부지한 왜구들은 항복하여 신라에 귀속하기를 원했다.

 

마지막까지 붙어있던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동지가 지난 어느 날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찬바람이 잦아들고 초저녁부터 포근해지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함박눈이다. 순식간에 월성은 백설의 광장으로 변해버렸다.

르 라 레리

설총은 멀리서 들리는 대금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누가 부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쌍골죽으로 만든 신문왕의 대금 소리다. 처음엔 무척이나 소리가 나지 않아 애를 태우더니, 아직 깊은 맛은 없으나 멀리서 들어도 맑고 청아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언뜻 들으면 아버지 문무왕이 불던 대금 소리와 닮은 듯했으나 분명 또 다른 이상적인 음률이었다.

그랬다. 귀를 기울이자 신문왕의 대금 소리는 장엄하다기보다는 뭔가 간절함이 느껴졌고, 누군가에 대한 애틋한 공경과 그리움 같은 것이 분명 절실한 것 같았다. 신문왕의 대금소리에 넋을 놓은 설총은 큰 의문 하나에 빨려 들어갔다. 설총은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오래 묻어두었던 의문과 자문이 어우러져 하늘 높이 솟구치는 듯했다.

갑자기 설총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더니 자신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뜻밖이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은 누군가를 그리워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신문왕의 쌍골죽 대금 소리를 듣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 원효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리고 설총은 난생처음 가만히 아버지를 불러보고 싶었다.

아버지, 아버지! 하고

 

어린 설총은 어머니 요석 공주의 손을 잡고 자주 분황사에 나갔다. 분황사는 왕실 진골들을 위한 도량이었다. 아버지 원효의 골품에 따라 6두품인 설총에게는 그리 반가운 곳은 아니었다.

총아, 인사 올려라. 대국통 혜명대사이시다.”

설총은 합장한 채 삼배를 올렸다.

아버지를 꼭 빼닮았구나. 눈에는 총기가 초롱초롱하고.”

어린 여섯 살 설총의 눈빛은 범상치 않았다. 대국통 혜명은 원효에게만 느낄 수 있는 호기를 보는 듯했다.

공주마마. 아이가 아주 총명하옵니다. 원효의 말대로 나라의 기둥이 될 것 같습니다.”

대국통께서 그렇게 보셨다면 영광이옵니다. 아직 어려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대사.”

혜명은 설총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리 오너라, 그래 강수 선생님은 안녕하시고? 지금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느냐?”

, 강 수 선생께서는 기체 강녕하시옵고, 소인 효경 이아

읽고 있습니다.”

혜명은 깜짝 놀라며 요석 공주와 설총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니, 이아?”

옆에 앉은 요석 공주가 손으로 벌어진 입을 가리며 말했다.

, 대사 그러하옵니다.”

이아 라 하면, 문자의 뜻을 고증하고 설명하는 아주 난해한 책이 아니던가?”

혜명은 요석공주와 설총의 얼굴을 몇 번이나 번갈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특하구나. 과연 신라의 기둥이 되겠구나. 아비 원효가,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아 세우겠소)말했듯이.”

혜명은 한 손으로 설총의 손을 꼭 잡고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어린 설총은 두 눈을 깜박이며 혜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는 아버지 원효를 생각해보았다. 설총은 아직 아버지 원효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그래,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화랑이 되고 장군이 되겠느냐? 불가에 몸을 담아 아비처럼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하겠느냐?”

어린 설총은 눈망울을 굴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옵니다. 소인 세속에 사는 사람인데 불도를 배워 무엇에 쓰겠습니까? 당연히 유가의 도를 배우고 싶습니다.”

.”

대국통 혜명은 입을 벌린 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귀족 불교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고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종교적 힘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삶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문왕의 대금 소리에 한참 넋을 놓은 설총은 정신을 차리고, 그길로 홀연히 분황사를 찾았다.

 

사후 원효의 소상(토우)이 모셔져 있는 눈 덮인 분황사는 고요하고 거룩했다. 합장한 채 대웅전에 들어서며 설총은 원효의 소상을 향해 난생처음, “아버지!” 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는 듯 우렁차게 불렀다.

그러자 원효의 소상이 꼭 살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얼른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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