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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기행

백두대간 다향 1 (문무왕 설총)

작성일 : 2025.01.14 10:50

백두대간 인문기행

문무왕과 설총의 爹香다향 1

 

갑신년 중하월에 남해 광리왕이 영덕전 새로 짓고 대연을 배설 헐제 삼해 용왕을 청하여 군신빈객을 좌우로 늘여안처 수삼일을 즐기더니 과음하신 탓이온지 용왕이 우연히 득병허야 백약이 무효라 홀로 앉아 탄식을 허시는디

<수궁가 들머리 아니리>

 

 

리 루 리

적막과 고뇌를 일시에 깨고 신문왕의 귀에 환청 같은 소리가 스쳤다.

놓칠 수 없다는 듯 귀를 세우자 스치는 바람 소린지, 천상의 울림인지? 아련한 소리가 단번에 심금을 울리기 시작했다.

보위에 등극하고 홀로 화탕지옥 속에서 고통받는 듯한 신문왕에게 이 소리는 마치 관세음보살의 손길 같았다. 끊어지는가 했더니 연이어, 이번엔 바닷속 깊고 깊은 곳에서 단번에 하늘로 용솟음치는 듯한 저 소리.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리리-

아니, 저 소리!

불현듯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왕이신 아버지 문무왕께서 고뇌하거나 결단이 필요할 때 주위를 물리고 월성 뜰에 앉아 불던 그 소리가 아닌가. 어린 정명政明(신문왕)은 아버지가 부는 대금 소리를 마치 하늘의 소리로 알고 자라왔다. 사람들은 천상의 소리를 잡아당겨 온갖 시련과 고난을 극복했다며 감탄했고 입을 모았다.

약소국 신라가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할아버지 무열왕 김춘추· 외할아버지 김유신, 무엇보다 당나라를 이 땅에서 쫓아낸 아버지 문무왕의 장엄한 얼굴들이 대금 소리를 타고 바람 같이 불어오는 듯했다. 아버지 문무왕은 재위한 20년 동안 전쟁의 연속이었다. 끝내 살아서 못다 한 숙원을 죽어서 호국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겠다고 유언하지 않았는가.

갓 등극한 신문왕에게는 삼국통일의 전쟁 공신들이 너무 많았고 진골들의 권력은 막강했다. 화백회의에서 왕 하나쯤 갈아치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진골들의 사치는 하늘 높은 줄 몰랐고 긴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의 삶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웠다.

신문왕이 등극하자 기뻐해야 할 장인 김흠돌은 딸인 왕비가 후사가 없자 내심 불안한 나날을 보냈고, 진골들의 속마음을 떠보며 발 빠르게 정세만 살피고 있었다.

라 레 르루

안개가 몰려오듯이 무량한 대금 소리가 월성 깊고 깊은 곳까지 은은히 파고들자, 요귀 같은 권신들의 얼굴이 새벽이슬처럼 사라져버렸다.

세상을 거룩하게 만드는 소리. 걱정과 만사가 술술 풀릴 것 같은 저 소리. 신문왕은 마치 지옥에서 동아줄이라도 잡고 극락으로 발을 디디듯 환희심 가득한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밖으로 이끌렸다.

문을 열자 천상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가 온몸으로 파고들었고, 월성 뜰 저편에서 아버지 문무왕이 대금을 불고 있을 것만 같았다. 입을 다물지 못한 신문왕의 눈앞엔 낯설지 않은 월성 밤 풍경이지만 오늘은 대낮같이 환했고 마치 연화천 세계가 펼쳐진 듯 거룩했다. 혼이 나간 듯 밖으로 나온 신문왕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만추의 나뭇가지는 앙상했지만, 천상의 달은 풍만했고 별들은 금방이라도 떠질 듯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꿈속을 거닐듯 신문왕은 대금 소리에 이끌렸다.

요석궁 쪽이다. 요석궁이면 일찍 혼자 된 고모 아유타(요석) 공주가 고종 아우 설총과 기거하는 곳이다.

! 설총 아우가 이 밤에 대금을 불었구나. 하기사, 설총의 대금 솜씨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가끔 설총의 대금 소리에 온갖 귀신들이 마음을 바꾸고, 동해의 용궁에서 귀를 기울인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신문왕은 꼭 구름 위를 걷듯 대금 소리에 이끌려 요석궁으로 홀려갔다.

달빛을 한껏 받은 요석궁은 물안개 위에 뜬 섬 같았다. 설총은 바위 위에 앉아 가로 든 대금을 떨어가며 더욱 그윽한 요성을 냈고 그 모습에 눈이 시렸다.

소리는 밤하늘에 마음껏 노닐고 있었다. 멀리 보내기도 하고 가까이 잡아당기기도 했다. 설총은 교접이라도 하듯 대금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설총의 입김과 운지에 따라 대금은 몸을 비틀고 떨며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떤 대목엔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아들이 아버지를 쫓아가듯 정겨운 리듬을 타기도 했고 어떤 대목에선 소리는 대금과 다른 길을 가듯 얽히고설키는 듯했지만 이내 어우러졌다. 천상의 별들은 두 눈만 초롱초롱했고 지상의 만물은 입을 다문 채 귀를 세웠다.

혼을 다한 설총의 몸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영기가 서렸고, 그대로 두면 금방이라도 비천상 속의 선인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것 같았다. 신문왕은 헛손질만 하며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이제사 인적을 느낀 설총은 대금을 내리고 황급히 예를 갖추었다.

폐하. 황공무지하옵니다.”

아닐세. 짐이 방해를 했구먼. 이 밤에 과인을 여기까지 이끈 사람이 설총 아우 아니신가?”

폐하. 야심한 밤이라 밤공기가 차옵니다. 고뿔이라도 드시며 소인의 죄가 커옵니다.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미소를 머금은 신문왕은 설총의 손을 잡아 앉기를 권했다.

설총 아우. 앉으시게. 짐이 잠이 안 와서 여기까지 왔다네. 아니야, 사실은 아우의 대금 소리에 홀려 왔지. 아우의 대금 소리는 선왕이신 아바마마와 견줄 만하지. 아니 그러한가?”

폐하. 황공하옵니다. 어찌 소인이 언감생심 문무대왕 폐하와 견줄 수 있겠습니까? 거두어주십시오. 크나큰 불충이옵니다. 폐하.”

설총은 허리를 숙여 예를 다했다.

아닐세. 아우의 대금 소리는 서라벌에 소문이 났고 아바마마께서도 인정했잖은가.”

폐하. 황공무지하옵니다.”

아우의 대금 소리를 듣고 있으면 걱정 근심이 사라지고 꼬였던 만사가 술술 풀릴 것 같다네. 어찌 들으면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아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것 같고, 어찌 들으면 온갖 영혼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 같고? 아니, 남녀가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것 같기도 하고.”

신문왕은 설총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짐은 알고 있지. 누군가를 향한 무한한 갈등과 승화? 그리움이라고 할까? 아니면 공경!”

설총은 신문왕의 과찬과 예리한 질문에 속마음을 들킨 아이 모양 얼른 몸을 일으키며 읍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신문왕은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설총, 과인이 아우에게 대금을 좀 배워볼까 하는데?”

폐하. 국사가 다망하신데. 틈을 낼 수 있겠사옵니까?”

신문왕은 웃으며 말했다. 웃는 모습이 할아버지 김춘추를 빼닮았다.

설총 아우. 아바마마께서는 숨넘어가는 전쟁터에서도 밤이면 대금을 부셨다고 하시질 않았나. 대금을 부시며 마음의 평정을 찾았고 내일의 전략을 구상하셨고, 또 나랏일을 걱정하시지 않았는가. 왜 나라고 못 할 것이 없지 않은가. 아니 그러한가? 아우. 짐이 왜 여태 대금 배울 생각을 못했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폐하. 대금을 불면 마음이 가라앉아 자신을 되돌아보며 성찰하기도 하고, 때로는 심기일전 없던 용기도 생긴다고 하옵니다. 선왕 폐하께서도 당나라와 싸우면서 대금을 불며 심기를 다스렸다고 소인도 들었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한때 화랑 낭도들 사이에 대풍류라고 대금 부는 게 대세이었던 적도 있었사옵니다. 모두 문무대왕 폐하를 닮고자 했던 것이옵니다.”

설총은 신문왕의 마음을 단번에 읽고 대금 불기를 권했다. 신문왕은 긴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했다.

아우, 이제 짐이 보위에 오른 지 달포 정도 되었어. 마치 몇 년이 된 듯 하구려.

오늘 밤 아우의 대금 소리를 들으니 아바마마의 성은이 절로 간절하구먼.

정말 아우의 대금 소리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뭔가가 있어. 뭔가가? 말이야.”

신문왕은 왕위에 등극해 자주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때였다!

유성 두 개가 토함산을 가로질러 동해 쪽으로 선을 그으며 떨어지고 있었다.

아우. 저길 보시게나. 유성이 동해 쪽으로 떨어졌잖은가? 그것도 두 개가 동시에. 불길한 징조가 아닌가? 설총.”

설총도 밤하늘의 유성을 보았다. 유난히 푸른빛의 두 유성이 선을 그리며 동해로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 설총의 뇌리에 번개 같은 직감이 스쳤다.

아니옵니다. 폐하. 유성의 색깔이 붉은색이 아니고 분명 푸른색이었습니다, 유성이 생기 넘치는 푸른색을 띠는 것은 분명 길조이옵니다. 그리고 저렇게 두 개가 동시에 나란히 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옵니다.”

설총은 스스럼없이 아뢨고, 신문왕은 설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폐하. 동해라 하면 문무대왕 폐하를 모신 대왕암의 수중릉이 있는 곳입니다. 선왕 폐하께서 승하하시면서 동해를 지키는 호국용이 되시겠다고 유언하셨습니다. 분명 선왕께서 호국용 되었다는 뜻이옵니다. 날이 밝으면 신관을 보내어 동해를 살피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폐하.“

설총의 말을 들은 신문왕의 얼굴에 단번에 화색이 돌았다.

! 듣고 보니 설총 아우의 말에 일리가 있는 듯하구려.”

설총은 두 손을 모아 읍하고 예를 다했다.

폐하. 황공하옵니다.”

 

날이 밝자 신문왕은 신관 김춘질에게 동해를 살피게 했다. 며칠 후 입궁한 김춘질이 급히 아뢨다.

폐하. 신이 목욕재계하고 철야 정진 기도 후 동해를 살피니 선왕 폐하의 수중릉이 있는 대왕암 바위 위에 못 보던 대나무 하나가 솟아 있었습니다.”

아니 수중릉 바위섬에 대나무가 솟았다고요? 이를 수가. 기이하도다.”

배석하고 있던 상대등 진복이 재빨리 손가락을 집으며 점괘를 풀이하며 아뢨다.

수중릉에 대나무가 솟았다면 분명 선왕 폐하께서 용이 되신 것이옵니다.”

평소 주역에 능한 진복의 점괘에 대신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무척 놀라는 표정이었다. 김춘질이 다시 읍하고 아뢨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더욱 기이한 일은 낮에는 대왕암에 대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밤이 되면 이 두 대나무가 하나로 합쳐져 쌍골죽雙骨竹이 되는 것이옵니다.”

귀를 의심한 신문왕은 다시 하문했다.

보통 대나무는 골이 하나인데 쌍골죽은 양쪽에 골이 두 줄이라 매우 희귀종이 아니오? 천상에 핀다는 전설의 그 대나무가 아니오?”

신관 김춘질이 아뢨다.

그러하옵니다. 두 대나무는 문무대왕 폐하와 또 한 분은 김유신 흥무대왕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래서 밤이면 두 대나무가 하나가 되는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폐하, 이것은 분명 선왕이신 문무대왕 폐하께서 호국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과 뜻을 같이하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또한 전설 속 희귀종인 쌍골죽은 예로부터 대금을 만들어 불면 사람은 마음이 안정되고 나라는 국태민안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이 쌍골죽을 베어 왔습니다.”

 

신문왕은 비단에 싼 쌍골죽을 설총에게 보였다. 비단 보자기를 풀자 마치 푸른 청옥 빛을 띤 쌍골죽이 뿌리째 단아하게 누워있었다. 설총은 호흡을 가다듬고 두 손으로 쌍골죽을 들어보았다. 보기보다 묵직했고 양쪽으로 깊게 파인 골이 무척 선명했다. 무겁고 대나무의 내경이 굵다는 것은 나무의 밀도가 높아 고음이 잘나고 대금 특유의 장쾌한 소리가 난다. 바닷가 모진 해풍에 견딘 쌍골죽은 뿌리와 아랫부분의 성장응력이 강해 밀도가 매우 높다. 보통 오래 묵은 누른 황죽으로 대금을 만드는데 저음과 중음은 소리가 잘나는데 고음이 잘나지 않는다. 쌍골죽은 구하기도 어렵고 불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한 번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자신의 살을 깎고 태우듯 청아하면서 맑고 장엄한 소리를 끝없이 토해낸다. 예로부터 악사들은 쌍골죽을 구하는 것을 천년 묵은 산삼 보기보다 더 어렵다 했다.

설총의 눈이 샛별같이 번쩍이더니 심호흡한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폐하. 보통 쌍골죽이 아니옵니다. 신도 말로만 들은 전설 속 희귀한 쌍골죽이옵니다. 저잣거리 걸인 대안대사가 대금을 잘 만든다고 하니 한 번 맡겨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손가락이 길고 손이 크신 폐하가 아니면 이 쌍골죽은 임자를 만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쌍골죽을 다시 받아 든 신문왕이 돌려보며 말했다.

? 설총 아우께서 한 번 만들어보시지? 아우의 대금 솜씨가 천하제일인데? 앞으로 짐의 대금 선생이 되어 주어야 하네, 설총.”

폐하. 신이 대금은 좀 불기는 하나, 만드는 것은 내공이 쌓인 대안대사가 나을 듯합니다. 이 쌍골죽은 아무나 잘 못 만들었다가는 먹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진을 빼고 말리면서 불 작업을 잘해 인간세계에 어떻게 동화시키느냐가 중요합니다. 대금은 사람의 재능으로 만드는 악기가 아니옵니다. 대나무인 지수화풍地水火風과 공이 화하고 취공, 천공, 지공, 칠성공이 조화를 이루어, 하늘의 소리를 사람이 듣고 음향音響(듣고 울림)하는 것이 옵니다. 그 소리는 우주를 감싸고 만물의 질서를 바로잡으며 무량할 것이옵니다.

설총 아우, 대안대사라 하면 저잣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편안하시게, 편안하시게소리 지르며 걸인 행세를 하고 다닌다는 그분 말이오? 한때 원효대사와도 친분이 있었다고 들었소만·, 아니, 아직 그분이 살아 계신단 말이오?“

 

신문왕이 며칠을 불어도 쌍골죽으로 만든 대금은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날 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대나무로 만든 대금이 얼마나 무거운지 두 손으로 들기도 어려웠다. 더욱 기이한 것은 서라벌에서 제일 대금을 잘 분다는, 아니 귀신이 물러가고 동해의 용궁에서 귀를 기울인다는 설총이 불어도 대금은 겨우 삑삑 하는 소리만 날 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대금을 만든 대안대사가 불어도 헛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대안대사는 혼을 다해 대금을 만들었고 아무 말이 없었다. 꼭 넋 나간 사람 모양 두 눈만 껌벅이며 돌부처 모양 말이 없었지만, 매우 만족한 듯 입가에 알 수 없는 옆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신문왕은 밤마다 뜰에 나와 소리 나지 않는 대금 불기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정성을 다해 불고 불면 언젠가 청아하고 장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얼마나 대금을 잡고 씨름했던지 신문왕의 입술이 부르트고 손등이 부을 정도였다.

신문왕은 설총의 설명을 되새겼다.

폐하. 일단 자세를 바로 하시고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하셔야 합니다. 대금의 무게와 호흡이 가벼워지면 분명 좋은 소리, 아니 폐하만의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대금은 부는 사람의 마음에서 소리가 나온다고 하옵니다. 부는 사람의 마음이 복잡하면 탁한 소리를 냅니다. 부는 사람의 마음이 텅 비고 사념이 없을 때, 단전 깊은 곳에서 입술을 통해 대금으로 전달되어 소리가 나는 것이옵니다. 그 소리는 무량하옵고 천상에까지 울려 만물의 질서가 바로 잡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비천상의 그림에 선인이 대금을 부는 모습을 자주 그려 넣고 했습니다.

폐하, 대금은 처음 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악기이옵니다. 특히 쌍골죽으로 만든 대금은 더 어렵다고 합니다. 처음엔 팔이 아프고 손등이 붓고 입술이 부르터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참고 견뎌내시면 대금이 가벼워지고 맑고 장엄한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무상무념으로 가볍게 대금을 대하십시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일치시킨 다음 아랫입술을 주름이 없게 펴고 취구의 3/2부분에 위치해야 합니다. 가볍고 약하게 휘, 하고 입김을 불어 넣는다고 생각하십시오. 마치 아기의 아픈 곳을 아비가 호, 하고 치료하듯이 단전에서부터 호흡을 고르게 하셔야 합니다.

폐하. 분명 선왕이신 문무대왕 폐하와 흥무대왕이신 김유신 대장군의 혼이 깃들었다면 쉽게 소리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만사가 술술 풀릴 것입니다. 이 쌍골죽 대금은 폐하가 아니면 불 수 있는 사람이 분명 없을 것이옵니다.“

설총의 설명에 따라 신문왕은 악전고투했지만, 쌍골죽 대금은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고 결코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