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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1.14 10:39 수정일 : 2025.01.14 10:55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범, 호랑이
大人虎變대인호변 대인은 호랑이처럼 변하고
君子豹變군자표변 군자는 표범처럼 하고
小人革面소인혁면 소인은 얼굴만 바꾼다 <주역>
기원전 2457년(上元 甲子) 10월3일. 하늘은 높고 화창했다.
환인천제의 윤허를 받은 환웅천왕이 풍백 바람 신, 우사 비 신, 운사 구름 신 3신과 3천의 관리를 대동하고 삼위태백산三危太白山(백두산) 가장 밝은 산 높은 곳, 제일 큰 나무 신단수 아래 강림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소문에 한반도 최남단 사람들도 13 정맥을 타고 백두대간을 따라 신단수 아래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한반도에서 13 정맥을 타고 모여든 군장 부족장들은 비록 짐승의 가죽이나 초의를 입었지만 다들 부정을 타지 않게 밤새워 목욕재계했고 머리는 단정하게 빗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사람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신단수 아래 자리를 잡았고, 신단수 나뭇가지에는 하늘에서 따라 내려온 삼족오가 빽빽하게 자리를 잡았다. 곰 호랑이 까치 늑대 같은 짐승들도 먼발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마냥 부러워했다.
10월3일 오시가 되자 하얀 두루마기에 백관을 쓴 9척 환웅천왕은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가지고 사람들 앞에 섰다. 허리에 동검을 차고 가슴에는 청동거울을 달았다. 유난히 청동거울이 햇볕을 받아 빛났고 사람들은 모두 눈이 부셨다. 환웅천왕이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8개의 방울이 달린 팔주령 청동방울을 흔들자, 머리에 복두를 쓰고 허리에 관대를 두른 풍백이 쑥을 때워 연기를 내며 잡귀를 쫓았다. 우사, 운사 대신들과 하늘에서 따라와 흰옷을 입고 머리에 모시 두건을 쓴 3천 관리들은 모두 합장하여 예를 갖추었고 머리를 조아렸다.
신단수 아래 모인 전국의 군장 부족장들은 머리를 풀고 짐승의 가죽이나 초의를 걸쳤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3천 관리들처럼 모두 두 손을 모으고 엉거주춤 따라 했다.
환웅천왕은 팔주령을 힘차게 흔들며 고했다. 그 소리는 우렁찼고 천지를 진동하는 사자후였다.
환웅천왕 둘러보니 삼위태백 신단수라
신시아래 자리잡아 풍우운사 대동하고
3천 관리 조아리니 사람들이 모여들고
환웅천왕 굽어살펴 홍익인간 재세이화
인간만물 여기모여 천년만년 살고지고 <신종석>
백관을 쓴 환웅천왕이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팔주령을 흔들자, 가슴에 단 청동거울은 햇볕을 받아 더욱 빛났다. 복두를 쓴 풍백 우사 운사 대신들이 앞으로 나와 읍을 하고 술을 올린 후 팔 벌려 합장하고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자, 모시 두건을 쓴 삼천 관리들도 모두 크게 합장하고 땅바닥에 엎드려 세 번씩 아홉 번 절을 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얼른 두 손을 모으고 엉거주춤 9번 절을 따라 하며, 제각기 각자 지방의 방법으로 연신 비손하며 소원이나 부족의 안녕을 빌었다.
신단수 아래 천제단에서 하늘에 올리는 제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음복으로 제물을 나누어 먹으며 흥겨워 노래와 춤을 추며 뒤풀이를 즐겼다.
처음 만난 넓은 땅 배달국의 동서남북 사람들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젊은 사내들은 힘 자랑으로 즉석에서 샅바를 잡고 씨름을 했다. 사람들은 단번에 두 패로 나누어 응원을 펼쳤다.
“이겨라, 이겨라.”
“들어 올려, 들배지기.”
승부가 나면 모두 와하고 환호를 질렀다.
여자들도 질세라 나뭇가지에 줄을 메고 누가 높이 올라가나 그네를 탔다.
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본 환웅천왕이 아버지 환인의 뜻을 받들어 홍익인간 재세이화로 사람들을 다스리자, 하늘의 광명이 비친 신시 배달국(넓은땅)은 차츰차츰 질서를 잡아갔다.
* 그날이 BC 2457년(上元 甲子) 10월3일, 우리는 이때를 기원전 2333년 10월3일(개천절) 이라고 말하고, 2025년 기준 올해는 단기 4358년이다.
환인桓因천제께서 보낸 환웅천왕· 풍백· 우사· 운사· 삼신과 삼천 관리가 보살피는 삼위태백 한반도 백두대간에서 벋은 1정간 13정맥을 따라 사람들이 모두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부러워하며 처음부터 지켜본 곰과 호랑이 한 마리가 어느날 환웅桓雄천왕을 찾아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원했다.
“환웅천왕님, 저희를 사람으로 바꾸어 살게 해주십시오!”
곰과 호랑이는 바닥에 엎드려 환웅천왕에게 고했다. 환웅천왕은 감동하며 말했다.
“오, 기특하구나! 너희들이 진정 사람이 되고 싶으면, 동국 속에 들어가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만 먹고 삼칠일 21일을 견뎌야 하는데, 할 수 있었겠냐?”
“천왕님. 저희들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다 하겠나이다.”
곰과 호랑이는 호언장담하며 마늘과 쑥을 받아 들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고기만 먹던 호랑이가 쑥과 마늘만 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 쑥과 마늘을 먹어 왔던 곰은 21일을 잘 참아 결국은 웅녀란 참한 여자가 되었고, 호랑이는 21일을 참지 못하고 동굴 밖으로 나가 영원히 사람이 되질 못했다.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쑥과 마늘만 먹고 동굴에서 21일을 참지 못한 한국호랑이는 언제나 사람을 부러워하며 사람 주위에 가까이 맴돌 수밖에 없었다. 담배를 피울 때도 맞담배를 피웠고, 남 흉을 볼 때도 같이했다. 우는 아이 옆에도 있었고, 떡 한입을 얻어먹기 위해 떡장수를 회유하며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다. 우리의 한국호랑이는 사람은 되질 못했지만, 죽어서는 멋진 가죽을 남기며 각종 장식과 함께 온갖 잡귀를 쫓는 데 앞장섰다.
이처럼 우리나라 한국호랑이는 사람을 따라 백두대간을 타고 전국을 오르내렸다. 그러니 호랑이의 주요 서식지 역시 사람이 사는 마을 주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남쪽으로 내려온 호랑이는 낙동정맥 고헌산을 타고 내려와 그 흔적을 유달리 많이 남겼다. 선사시대 유적인 언양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 다음으로 많은 22마리의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고, 경주 석장동 금장대 바위에도 호랑이는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낙동정맥 금정산을 타고 더 남쪽으로 내려와 부산 범내골 범일동 호계천에는 일제 강점기 때까지 호랑이가 내려와 물도 마시고 멱도 감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 여럿 있었단다.
신라 진덕여왕 때 금오산에서 진골들이 모여 화백회의를 하는데, 별안간 큰 호랑이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놀라 달아났으나, 알천공은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았다. 알천공의 힘이 장사라 수석으로 추대를 받았지만, 김유신의 권유에 따라 알천공은 왕의 자리를 김춘추에게 양보하고 만다. 김춘추는 삼국통일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처럼 호랑이는 우리와 선사시대부터 백두대간을 타고 역사를 같이했고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사냥에 의한 1921년 경주 대덕산 마지막 호랑이까지.
중국은 용, 인도는 코끼리, 이집트는 사자, 로마는 이리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신성한 동물을 호랑이라고 여겼다. 산이 국토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지형적 조건과, 환웅· 단군 조상들이 산으로 들어가 돌 산신 즉 산신령이되어 산중 군자인 호랑이를 타고, 다닌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호랑이는 우리 조상과도 친숙한 동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쑥과 마늘만 먹고 살 수 없었던 호랑이는 우리에게 호환이라는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호랑이의 이동은 산을 따라 움직였지만, 서식은 주로 마을 주변에 머물러 사람들에게 호환이란 공포를 주었다. 산간지방에서는 밤이면 창문에 호발을 설치했고, 호환을 당한 사람은 화장해 호식총이란 돌무덤을 쌓고 떡시루를 덮어두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지는 호랑이에 인식은 이중감정이라는 토대 위에서 형성되었다.
호랑이에 대한 이러한 우리의 이중감정은 설화와 속담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즉 설화에서는 나라를 지켜 주는 호국신, 효를 실천할 수 있게 해 주는 수호자, 웃음과 교훈을 주는 친근한 대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불효자 탐관오리에게 벌을 주는 권선징악의 상징이었다.
설화에서는 긍정적인 모습이 부각되었다면 속담에서는 이와는 달리 부정적인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 그리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한계상황을 표징하기도 하고, 특히 탐욕스럽고 인색하며 악독하고 교활한 인간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반면에 용맹스럽고 날렵한 호랑이의 속성은 흔히 장군으로 상징되어 용맹함의 대명사로 여겨질 정도로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 호랑이는 모성애를 지닌 인간적인 모습, 절대적인 권위와 힘 등의 표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산중군자, 담배를 피우는 호랑이. 백두대간의 주인 한국호랑이, 아무르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 백두산호랑이, 동북호, 조선범 등 지역에 따라서 달리 불렸지만 다 같은 한국호랑이다. 호랑이의 순수한 우리 이름은 범이다.
백두대간은 연해주(시호테알린 산맥)와 연결되어 있고, 한국호랑이가 오르내린 백두대간이 뻗은 북쪽도 우리의 조상 해모수가 오룡거를 타고 내려와 세운 북부여 우리 땅이다.
백두대간 13 정맥을 따라 오르내린 한국호랑이는 물을 좋아하고, 전 세계 호랑이 중에서 한국호랑이가 덩치가 제일 크다. 수컷은 4m가 넘는 것도 있었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