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윤일현 칼럼/신뢰 사회와 집단 지능

작성일 : 2025.01.13 06:52

신뢰 사회와 집단 지능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정치란 상대적인 영역이다. 정치의 영역은 진리를 실현하는 장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펼치면서 논쟁과 토론, 양보와 타협을 거쳐 실현할 수 있는 해법이나 정책을 수렴하는 장이다. 선악 프레임에 갇힌 사람이 권력을 잡고 조직을 장악하게 되면 타인에 대한 관용이나 배려가 어렵다. 이분법적 사고도 정치를 망가뜨리는 반정치적 심리 상태와 궤를 같이한다. 남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사람에게 정치적 장이란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관철하는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에게는 상대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내 것을 조금 양보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일이 된다. 그런 상황이 바로 정치의 종식 상태다.

 

스탠퍼드 대학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한 나라의 경제는 규모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문화적 요인이 중요하다고 했다. 문화적 요인은 사회적 자본이며,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뢰라고 했다. 그는 서로를 신뢰하는 고신뢰 사회는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서로를 불신하는 저신뢰 사회는 경제적 번영이 힘들다는 점을 예증하고 있다. 그는 개인주의, 가족주의에 기반을 둔 저신뢰 사회의 특성을 비판하면서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공동체적 연대와 결속의 기술을 터득해야 하며, 신뢰는 경제와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놀라운 가치라고 강조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믿음을 갖고 배려하고 협력한다면, 사회적 거래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이 감소하고 예상치 못한 손실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신뢰가 사회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는 말이다.

 

후쿠야마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국부의 81%를 사회적 자본으로 만들었지만, 후진국으로 갈수록 그 비중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찍이 한국을 저신뢰 사회(Low Trust Society)로 규정했다. 정치권이 귀담아들어야 하는 이야기다. 우리의 정당과 정치구조는 봉건 시대 가족주의에 가깝다. 위계와 맹목적 복종을 미덕으로 간주한다. 자원 빈국인 우리는 근면과 성실, 창의력,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정치 과잉으로 비정치적인 것을 정치화하고, 사적 이슈를 공적 이슈로 증폭시켜 다양한 갈등이 일상화하고 있다. 광화문에서 대치하고 있는 두 집단은 심리적 내전 상태다. 외치는 구호나 발언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그들의 맹신과 광기의 눈빛을 보면 섬뜩하다. 그들은 무기만 공급해 주면, 상대를 향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길 정도로 서로 증오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 매트 리들리 교수는 그의 저서 이성적 낙관주의자,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에서 아이디어들이 서로 만나 융합하는, 이른바 집단지능을 낙관론의 근거로 제시했다. 생물이 다양한 교잡을 통해 진화하듯이 인류 문명이 폭발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의 융합, 집단지능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교환과 전문화를 통한 집단지능은 기술혁신의 원동력이라고 지적한다. 정치를 포함하여 모든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다투더라도 국가적 위기 타개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협조하는 집단지능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국가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집단지능이다.

 

정치란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것이다.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연꽃은 피어나게 해야 한다. 지금 우리 정치판은 연꽃은커녕 연밭 자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어떤 식물도 살 수 없게 물과 흙을 오염시키고 있다. 대립과 반목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우리 사회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어느 한계점을 넘게 되면 정말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파국에 이르기 전에 우리는 상호 존중과 배려, 소통을 통해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한시바삐 신뢰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