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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다가가기 /악서2권2,3장/자묘불악(子卯不樂)

작성일 : 2022.05.04 09:49

자묘불악(子卯不樂)

[악서(樂書) 2] #2. 2장과 3.

애도를 표현하는 날에는 악을 연주하지 않는다

 

 

자묘일(子卯日)에는 악()을 연주하지 않습니다. 자묘일(子卯日)은 나쁜 날이기 때문입니다. 자묘일(子卯日)이란 자일(子日)과 묘일(卯日) 입니다. 예전에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결합하여 날짜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2021년을 신축년(辛丑年)이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한 방식입니다. 자일(子日)은 갑자일(甲子日), 병자일(丙子日), 무자일(戊子日) 등이며, 묘일(卯日)은 을묘일(乙卯日), 정묘일(丁卯日), 기묘일(己卯日) 등을 말합니다.

 

왜 자묘일은 나쁜 날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중국 상()나라 주왕(紂王)은 갑자일(甲子日)에 죽었고, ()나라 걸왕(桀王)은 을묘일(乙卯日)에 망하였으므로, 그날은 악일(惡日)이라 하여 사람들이 꺼린다고 풀이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을 악서(樂書)의 저자 진양은 정강성(鄭康成, 127-200)의 주장을 인용하여 반대합니다. 정강성은 후한(後漢) 시대의 학자입니다.

 

정강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紂王(주왕)이 갑자일(甲子日)에 죽고, 걸왕(桀王)이 을묘일(乙卯日)에 망하였으므로 자묘일(子卯日)을 불길한 날이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예전에 위 나라의 도무(道武)가 갑자일(甲子日)에 하린(賀麟)을 공격하려고 할 때 조숭(晁崇)이 말렸다. ‘紂王(주왕)이 갑자일(甲子日)에 죽어서 장군들은 이날을 기피 합니다.’ 이 말에 도무는 주 나라의 무왕은 갑자일에 승리를 거두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이날 이후로 자묘일(子卯日)을 기피 하는 이유를 걸왕(桀王)紂王(주왕) 탓으로 돌릴 수 없게 되었다.”

 

진양은 다시 후한(後漢)의 정사농(鄭司農)과 전한(前漢)의 익봉(翼奉)의 견해를 인용하여 자묘(子卯)가 오행(五行)의 관점에서 나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묘일(子卯日)을 기피 한다는 견해를 소개합니다. 어떤 견해가 맞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자묘일(子卯日)이 좋지 않은 날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한 것은 분명합니다.

 

자묘불악(子卯不樂) 자묘일(子卯日)은 악()을 연주해서는, 안된다 ”.는 구절은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 下) 168장에 나옵니다. 이것을 진양은 악서 22장에서 인용합니다.

 

자묘일에는 악을, 연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도자(知悼子)의 시체가 빈소에 있습니다. 이것은 자묘일보다 더욱 나쁜 일입니다.”(2)

 

지도자(知悼子)는 진() 나라의 대부(大夫)입니다. 높은 벼슬아치가 죽으면 군주가 조상하고 졸곡(卒哭)할 때까지 악을 연주하지 않는 것이 예의입니다(3). 그러나 진 나라의 군주 평공(平公)은 지도자(知悼子)가 죽고 장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궁궐에서 술을 마시고 악을 연주하였습니다. 그 음악 소리를 듣고 요리사 두궤(杜蕢)는 위의 인용문처럼 평공(平公)에게 잘못을 지적합니다. 평공은 훌륭한 군주입니다. 그는 과오를 인정하고 벌주를 마십니다.

 

악서(樂書) 23장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장(),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 下) 176장 전체를 인용합니다.

 

중수仲遂가 제 나라의 수()라는 지역에서 죽었다. 임오일(壬午日)에 노 나라의 군주 선공(宣公)은 역제繹祭를 지내면서 이 자리에서 약무(籥舞)는 빼고 만무(萬舞)를 추게 하였다. 이에 대해 중니(공자)그것은 예()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죽었을 때는 역제를 지내서는, 안된다.”(4)

 

중수(仲遂)는 노 나라의 경() 즉 장관급 이상의 높은 벼슬아치입니다. 중수는 제 나라로 가다가 수()라는 곳에서 사망합니다. 이날 노 나라의 군주 선공(宣公)은 선왕(先王)의 위패를 모신 태묘(太廟)에서 正祭(정제)를 지냅니다. 正祭(정제)란 한 해에 몇 번씩 조상의 사당에서 지내는 정규적인 제사입니다. 正祭(정제)를 지낸 다음 날 한 번 더 제사를 지냅니다. 이것을 역제(繹祭)라고 합니다. 정제를 지낸 날 중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선공(宣公), 다음날 역제를 지냅니다. 그러면서 선공은 중수의 죽음에 예의를 표시하기 위해 역제(繹祭) 행사에서 약무(籥舞)를 뺀 채 만무(萬舞)를 추게 합니다. 만무는 방패를 들고 추는 춤이며, 약무는 약()이라는 피리를 불며 추는 춤입니다. 약무는 피리를 불기 때문에, 소리가 납니다. 선공은 소리가 나는 춤을 역제에서 생략함으로써 예의를 지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는 그렇게 해도 춤을 추었으므로 예의에 어긋난 것이라고 선공을 비판합니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마지막 문장에서, 공자가 경()이 죽었을 때는 군주는 역제(繹祭)를 지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진양은 공자가 역제를 지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역제 자체가 아니라 역제에서 악을 연주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합니다. 사실 경대부(卿大夫)가 죽었다고 해서 군주가 선왕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선공이 역제를 지내면서 약무만 뺀 것이 아니라 만무도 생략했더라면 공자는 다르게 판단하였을 것입니다. 진양은 이렇게 말합니다.

 

중수仲遂가 죽었을 때 선공宣公은 태묘, 에서 역제를 지내면서 만무를 추게 하였다. 군자는 그것을 비판했다. 지도자(知悼子), 경우도 장례 치르지 않았으므로 이때는 자묘일, 보다 마음이 더욱 무거워야, 한다. 그런데 어찌 편종을 치며 악을 즐길 수 있겠는가?”(5)

 

선공(宣公)이 역제(繹祭)에 약무는 빼고 만무만 추게 하였으나, 흉사에는 악을 연주하지 않는다는 주() 나라의 전통을 어긴 것이 아닌가?”(6)

 

장례는 흉례(凶禮)이므로 애도를 표현해야 예의입니다. 조문객은 실제로는 슬퍼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슬픔을 표현해야, 합니다. 예의란 타인의 상례에서 슬퍼하지 않은 사람에게 슬퍼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군주가 대신이 죽어서 애도를 표현하는 기간에 연향을 베풀거나, 선왕을 모시는 태묘, 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춤을 연행한다면 군주가 정말로 애도하는지 사람들은 의심할 것입니다.

 

장례는 흉례(凶禮)이지만, 제사는 길례(吉禮)입니다. 부모가 죽어서 장사지낼 때는 매우 슬픕니다. 그러나 삼년상을 마치고 제사를 지낼 때는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좋기 때문에, 제사는 길례(吉禮), 것입니다. 제사는 길례이므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춥니다. 공자는 흉례와 길례를 동일한 날에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7).

그 내면의 이유는 길례 에서는 악()을 연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악서 22장과 3장은 대신(大臣)이 죽었을 때 군주의 예(), 관하여 논의합니다. 신하가 죽었을 때, 진 나라의 평공은 악()을 연주하였고, 노 나라의 선공은 제사를 지내며 만무를 추게 하였습니다. 둘 다 예()가 아닙니다. ()은 즐거움을 표출하는 것이므로 신하의 죽음 대한 애도의 표현을 가볍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평공과 선공의 이야기에서 전통 사회의 악()이 현대 사회에서의 음악과 다른 점을 두 개 발견합니다. 첫째 현대에는 음악과 무용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 사회에서는 무용도 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양은 자묘불악을 논의하면서 편종을 연주하는 것, , 만 아니라 만무를 추는 것도 거론합니다. 만무(萬舞)도 악()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둘째 현대 사회에서 음악은 즐거움뿐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도 표출하지만 전통 사회에서 악()은 즐거움만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는 매장을 하는 슬픈 날에도 음악을, 연주할 수 있으나 전통 사회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악은 즐거움을 표출하는 것이므로 장례식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면 슬프지 않다는 것을 선언하는 격이 되어버립니다. 슬퍼해야 하는 날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악서 제22장과 3장을 읽으며 악()의 의미를 음미하였습니다.

 

 

(1)

鄭康成 曰: “紂以甲子死 桀以乙卯亡 失之矣. 昔魏道武 以甲子討賀麟 晁崇曰 紂以甲子死 兵家忌之.’ 道武曰 周武 不以甲子勝乎?’ 是後世之所忌子卯者 不爲桀紂也

정강성 왈: “주이갑자사 걸이을묘망 실지의. 석위도무 以甲子토하린 조숭왈 주이갑자사 병가기지.’ 도무왈 주무 불이갑자승호? 시후세지소기자묘자 불위걸주야”(악서 22).

(칠 토

아침 조)

 

(2)

子卯不樂知悼子在堂斯其為子卯也大矣

자묘불악 지도자재당 사기위자묘야대의(악서 22).

 

(3)예전에 군주는 신하가 아프면 반드시 문병하고, 죽으면 반드시 弔喪하고, 장례를 지낼 때 까지 고기를 먹지않으며, 졸곡(卒哭)할 때 까지 악을 연주하지 않는다.

古者君之於臣 疾必問 卒必弔 比葬不食肉 比卒哭不擧樂. 比祭而聞其卒

고자군지어신 질필문 졸필조 비장불식육 비졸곡불거 비제이문기졸(악서 23)

(견줄 비 13.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이르다(어떤 정도나 범위에 미치다)

 

(4)

仲遂卒于垂 壬午猶繹 萬入去龠仲尼曰:「非禮也卿卒不繹。」

중수졸어수 임오유역 만입거약. 중니왈 : “비례야. 경졸불역

 

(5)

仲遂卒 宣公萬入猶繹. 君子非之.

중수졸 선공만입유역 군자비지

 

然則知悼子之未葬 斯其為子卯也大矣 如之何鼓鐘而燕樂乎?

연즉지도자지미장 사기위자묘야대의 여지하고종이연악호(악서 22)

 

(6)且萬入去籥而卒事 無乃戾於周官弛懸之意歟?

차만입거약이졸사 무내려어주관이현지의여?(악서 23)

 

(7)

蓋祭吉禮 臣卒凶禮也. 故不可以同日

개제길례 신졸흉례야 고불가이동일(악서 23)

 

<제민이/ 국악가수, 가곡전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