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백두대간 기행

백두대간 기행

백두대간 인문기행(신종석) 삼국유사

작성일 : 2025.01.08 11:29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삼국유사 일연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도다.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처용가>

 

 

 

삼국유사1281년 고려 충렬왕 7년에 보각국사 일연一然이 경북 군위 인각사麟角寺에서, 환웅 · 단군의 고조선의 상고사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까지 전승되던 역사의 기록에 빠진 부분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설화 등 138편을 찾아내어 1281년부터~12833년간 저술한 진실된 역사책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얼이자 총체적인 문화유산의 보고이며, 우리의 미래가 담겨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一然 스님의 본명은 전견명全見明이다. 9세에 출가해 22(1227)에 선과에 급제했다.

일연은 가지산문 국사로 젊은 시절부터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백성의 고충을 보며 삼국유사의 저술을 염두해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연이 살았던 시기는 어느 때보다 백성의 삶이 고달팠던 시기다. 일연은 민족의 선지식으로 무엇보다 백성의 삶에 희망과 용기 자긍심 그리고 미래를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폐허가 된 마을과 백두대간을 따라 전국의 사찰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많은 자료를 수집했고 집필은 78세로 나라의 국존國尊이 되고, 군위군 인각사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마무리하고 세수 84세에 입적했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입적 후 제자 무극無極에 의하여 1310년 간행되었다.

삼국유사의 저술 동기와 목적은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1145년 저술된 김부식의 삼국사기의 미비점과 놓친 것을 보완한 유사遺事,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책이란 뜻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유문과 일사 등을 주로 싣고 고려 중엽까지 관련된 사항을 부연한 것과, 정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과 누락된 사항들을 모은 기록이다.

삼국유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삼국사기에 있는 것과 전혀 다르게 기록하거나,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을 찾아 일일이 설명하고 있다. 이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범하고 있던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 밝혔다. 대표적인 것이 단군신화다.

일연이 단군신화 환인과 환웅의 진실된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우리의 고조선은 그냥 덮였을 것이다. 일연은 그 시기를 중국이 가장 자랑하는 요순시대와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것은 신라 충신 박제상이 집필했다는 부도지符都誌천부도맥天符道脈 앞부분을 뺀 것이다. 부도지에는 우리 민족의 기원은 11천 년 전 마고 할미로부터 시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서는 배제한 우리나라 고대 신화와 관련된 내용을 대폭 수록했고, 신화적 설화적 내용을 넣다 보니, 현실적인 역사로 생각하기 어려운 환상적인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 이유는 아마 백성에게 희망과 자존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종교 불교를 통한 마음의 안식처 찾기였던 것이다.

이차돈의 순교라든지, 만파식적 설화도 간단히 언급하며 김부식은 '이런 말이 있지만 괴이해 믿을 수 없다'고 써 놓았지만, 삼국유사에서는 매우 상세하게 전문을 수록해 놓았다.

필자가 몇 년 전부터 직접 쌍골죽 대금을 불고 있는데, 직접 대금을 불어본 결과 만파식적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할 수 없지만, 결코 그냥 황당무계하다고 말할 수 없는 무한한 내면의 진실을 깨달았다. 인간과 자연 대나무 쌍골죽과의 조화로 세상을 울리는 소리, 마치 천상에서 울릴 것 같은 소리에는 우리에게 꿈과 용기뿐만 아니고 만만파파식적 이상의 힘이 있어 어떠한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당대 최고의 석학 김부식이 대금을 직접 배우며 불어봤다면 결코 황당무계하다는 말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13세기 고려는 무신정권의 폭정에 이어 몽골의 침략이 30년간 이어지면서 민중들의 삶은 매우 피폐해지고 있었다. 그 찬란했던 천년 신라의 영화와 우리의 자존심인 고려대장경판, 주변 9개 나라에서 조공을 바친다는 우뚝 솟았던 황룡사 9층 목탑, 전국의 많은 사찰 등이 외세의 침입으로 일순간 재가 되어 사라졌고, 국토는 파괴되었다. 백성은 오랑캐의 약탈과 폭력에 시달렸다. 끈질긴 저항이 이어졌지만, 그로 인한 심신의 상처와 고통은 너무나 컸다.
선지식 일연은 그처럼 참혹했던 시절을 백성과 함께했고, 우리에게 잃어버린 민족적 자부심과 문화적 긍지를 일깨워줄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의 뿌리와 자부심,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 불교적 이상세계를 담은 역사적 사건과 백성들의 심금을 울렸던 감동적인 이야기, 이 모든 것들을 선지식 일연은 방대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써 내려갔다. 그 이전까지의 사대주의 사상과 모화주의 사상에 입각한 역사책이 아니라 민족공동체의 정신적 역량을 총체적으로 집결하고, 흔들리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다잡아서 새로 세울 수 있는 새롭고 담대한 역사책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춤과 노래로 역신을 막아낸 처용 이야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슬기로운 이야기다.

먼저 처용가를 한번 들어보자.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도다.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하고 노래와 춤을 추니, 처용의 처를 탐하던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고 처용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지금 범하였는데도 공은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기는 바입니다. 맹세코 지금 이후부터는 공의 형상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는 이야기.

필자는 처용가를 처음 듣고 무릎을 쳤다. 처용가에는 우리가 살아 가야 할 공생과 중도인 일심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이와 같은 선지식 일연의 민족 사랑, 나라 사랑의 정신을 우리의 홍익인간 한마음 일심으로 되찾을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우리 민족 가슴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홍익인간 사상은 온 세상에 있는 인간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존재 만물을 이롭한다는 한마음 일심에서 시작했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우리의 미래가 담겨있는 진실이자, 보고 느끼기에 따라서는 우리의 비기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역사· 불교· 설화 등에 관한 서적과 문집류, 고기古記· 사지寺誌 · 비갈碑喝· 안첩按牒 등의 고문적古文籍에 이르는 많은 문헌이 인용되어있다. 특히, 지금은 전하지 않는 문헌들이 많이 인용되었기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삼국유사는 신화와 설화의 보고이다. 삼국유사가 전해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중 최대로 꼽히는 것의 하나는 향가다. 양산가陽山歌 하나를 소개한다.

 

양산가

敵國爲封豕

荐食我邊彊

적국이 큰[]돼지가 되어 거듭해서 우리의 변방을 먹네.

赳赳花郞徒

報國心靡遑

용맹하고 용맹한 화랑도는 나라에 갚느라 마음에 겨를이 없네.

荷戈訣妻子

嗽泉啖糗粻

창을 메고 처자와 이별하고 샘물로 양치질하고 마른 밥을 먹었지.

賊人夜劘壘

毅魂飛釰鋩

적들이 밤에 성을 허무니 의젖한 넋들이 칼 끝에 날아가네.

回首陽山雲

矗矗虹蜺光

머리 돌리니 양산의 구름이 우뚝 솟은[矗矗]무지개 빛 같네.

哀哉四丈夫

終是北方强

애달파라 4명의 장부는 끝내 북방의 강함이 되었으니.

千秋爲鬼䧺

相與歆椒漿

천추에 귀신 영웅이 되어 서로 산초 술로 흠향하네 

양산가는 화랑도의 의연한 기상을 기리는 과정을 통해 신라의 기상을 과시하고자 한 시다.

삼국유사는 또한 우리나라 고대 미술의 주류인 불교 미술 건축 연구를 위한 가장 오래된 중요한 문헌이기도 하다.

주변 9개 국가에서 조공을 바친다는 우뚝 솟은 80여 미터의 황룡사 9층탑!

삼국유사는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는 우리 민족의 진실, 속마음과 바람이 담겨 있고 미래가 담겨 있다.

우리의 반만년역사는 분열과 다툼의 시대에서 원융회통 조화의 시대로 이어져 왔다. 먼저 나의 정신과 육체가 조화를 이루고, 나와 남이 조화를 이루고, 남과 북이 조화를 이루고 모든 인류와 자연환경이, 마침내 온 우주 만물이 한마음 일심으로 조화를 이루어질 것을 바란 선지식 일연一然에게 두 손 모으고 머리 숙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