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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다가가기 > [악서(惡書) 읽기] #9. (제 2권 1장). 오랑캐의 도(道) 그리고 예(禮)의 도(道)

작성일 : 2022.04.23 01:06

[악서(惡書) 읽기] #9. (21). 오랑캐의 도() 그리고 예()의 도()

-악서(樂書) 21장은 감정의 절제에 대해 논의합니다.

 

/제민이(가곡전수자/가수)

 

 

사람에게 기쁨이 마음에 가득 차면 노래 부르고, 노래 부르면 춤추고, 춤추면 괴롭고, 괴로우면 통절(痛切)하고, 통절하면 한숨을 쉬고, 한숨을 쉬면 가슴을 치고, 가슴을 치면 발을 구른다. 이것을 절제하는 것을 예()라고 한다.”

(人喜則斯陶 인희즉사도陶斯詠도사영詠斯猶영사요猶斯舞요사무舞斯慍무사온慍斯戚온사척戚斯嘆척사탄嘆斯辟탄사벽辟斯踴矣벽사용의品節斯품절사斯之謂禮사지위례)

 

이것은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 下)164장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 구절 앞부분에 공자의 제자 두 사람이 감정의 표현을 감추지 않고 해도 좋은지, 제어해야 하는지, 이 문제를 논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자여子與와 자유子游는 길가에 서서 상여가 지나가는 것을 봅니다. 어린, 아이는 슬픔을 못 이겨 발을 동동 구르며 상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자유子游가 자여子與에게 말합니다. “상여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풍습은 없어져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지. 그런데 이 아이를 보니 감정이 진실하구만.” 자유子游는 상여를 발을 구르며 따라가는 풍습은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슬픔의 감정이 진실하게 보여 괜찮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여子與는 의견이 다릅니다. 그는 감정을 직선적으로 표출하면 예()의 태도가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란 감정을 줄이기도 하고, 물건을 사용하여 늘이기도 한다네. 그렇게 하지 않고, 지름길로 가듯이 감정을 직선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오랑캐의 도()가 아닐까?(有直情而徑行者戎狄之道也 유직정이경행자 융적지도야). ()의 태도란 무조건 감정의 표출을 줄이는 것은 아닙니다. 상복을 입거나 깃발을 거는 이유는 물건을 사용하여 감정 표출을 좀 더 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의 태도란 감정 표출을 적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감정을 느끼는 대로 그래도 표출하면 어떻게 될까요? 부모가 죽어도 슬프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해도 될까요? 반면 너무나 슬퍼서 짐승처럼 울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지름길을 가듯 직선적으로 표출해도 될까요? 자여子與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느끼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오랑캐의 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여子與는 그렇게 말하면서 예()란 무엇인지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제인 악서(樂書) 21장에서 인용됩니다. 위의 인용문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춤추면 괴롭다”.(舞斯慍무사온)는 문장입니다. 기쁨이 마음에 가득 차면, 노래 부르고, 노래 부르다 보면 춤추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자여子與는 춤추면 괴롭다고 합니다. 춤추면 마냥 즐겁지 않을까요?

 

춤추면 괴롭게 된다는 점을 해설하기 위해 악서(樂書)의 저자 진양(陳暘)은 반전(反轉) 현상을 끌어옵니다. 반전(反轉)이란 수레바퀴가 반대로 구르는 것을 말합니다. 달은 보름달이 되어 가득 차면 이지러지기 시작하고, 그믐달이 되면 반대로 커지기 시작합니다.

날씨가 추워져 한겨울이 되면 반전하여 따뜻해지기 시작합니다. 진양은 감정도 자연현상처럼 극에 달하면 거꾸로 돌아가는 반전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에게 기쁜 마음이 움직이면 소리가 피어나서 퍼진다. 피어나서 퍼지는 것은 양()이다. ()이 극에 도달하면 반드시 반전하여 음()으로 돌아간다. 사람에게 괴로운 마음이 움직이면 소리는 거칠고 긁는다. 거칠고 긁는 것은 음()이다. ()이 극에 도달하면 반드시 반전하여 양()으로 돌아간다.”

 

기쁨이 극에 달하면 반전하여 슬픔으로 돌아가고, 슬픔이 극에 달하면 반전하여 기쁨으로 돌아갑니다. 진양은 반전 현상이 감정에도 적용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합당한 사례를 들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사례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방학 때 내리 두 달을 즐겁게 놀고 나서 개학 무렵이 되면 걱정으로 괴로웠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즐거움이 극에 도달하면 반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공부를 몇 주 동안 하여 너무 괴로워서 아무 힘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끼는 때가 되면 무언가 잘 될 것 같다는 희망으로 마음이 부풀어 올라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고통이 즐거움으로 반전하는 것입니다.

 

기쁨이든 괴로움이든 반전하므로 사실상 같은 감정입니다. 군자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감정의 표출은 적절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의 도()입니다. 반대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출하면 오랑캐의 도()입니다.

 

현대 사회와 중국과 한국의 전통사회는 미학이 다릅니다. 현대 사회에는 솔직하게 직선적으로 슬픔, 괴로움, 기쁨을 표출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수들은 고음으로 소리를 뽑아내어 환희를 최대한 표출하거나, 목소리를 심하게 긁거나 꺾어서 슬픔을 극도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전통의 미학에서 보면 이것은 예()의 길이 아니라 오랑캐의 길 즉 야만적 태도입니다. 전통 성악에는 현대 대중음악처럼 고음이 없습니다. 예전의 가수들이 현대 가수만큼 고음을 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애락의 감정을 절재 하여 표출해야 한다는 미학에서 노래가 작곡되었기 때문에 고음부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통 악곡은 슬픈 노래라도 현대 대중가요에 비해 은은하게 부릅니다. 전통 성악가들이 목을 쥐어짜며 슬픔을 자아내는 기술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전통 미학은 감정의 표출을 가지런하게 제어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악서(樂書) 21장을 읽으며, 감정의 표출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