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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문학의 어제와 오늘<부문 2-2> 시간과 소리의 시학-자아, 그리고 사계四季의 시간적 상상력

작성일 : 2024.12.30 02:02 수정일 : 2024.12.30 02:04

<부문 2-2>

 

시간과 소리의 시학-자아, 그리고 사계四季의 시간적 상상력

-김덕남 시집 카이로스의 종소리의 작품 세계

 

 

 

김덕남 시인은 필자가 속한 진주를 학연으로 모인 <남강문학회>(현재는 남강문학협회로 개칭되어 있음)의 창립 회원이자 필자의 선배 회원이다.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원으로 있으면서 필자의 진주고 선배분과 결혼하여 아드님들도 의사로, 치과대학 교수로 훌륭히 키우신 분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학업도 계속하여 동아대학교를 수료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한 성실한 분이기도 하다. 교직을 정년하고는 사범학교 시절부터의 꿈인 에세이문학(2005)에 수필가로 서정문학(2011)에 시인으로 데뷔하였다. 남강문학에는 창간호(2009)부터 주로 수필을 발표하였으며 여행 매니아인 사범학교 동기의 주선으로 남미를 여행하고 여행기를 내기도 했다. 이렇게 행복하고 활동적인 그녀에게 건강하던 남편의 와병과 죽음이라는 불행이 닥쳐 한 동안 칩거한 관계로 필자와 교류가 뜸하다가 시집 원고를 가지고 그 해설을 필자에게 부탁하는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동안 수필집도 여러 권 내었으며 이 시집이 세 번째이다.

김덕남 시인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매사에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과묵하고 감정을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진실성을 엿볼 수 있는 인격을 가지고 있다. 이번 시집 원고에서도 이러한 점을 반영하듯이 시를 창작하는 태도와 시 속의 사물에 대하여 여류시인 특유의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표현보다 다소 철학적이고 진지한 표현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우선 김 시인의 시 에서는 시간을 등장시켜 깊은 사유를 하는 시편들이 많다. 시간에 대하여 철학자의 말을 빌리면 시간은 인간의 마음이 터전이며 마음의 순수지속을 근거로 하지 않고는 시간은 없다고 한다. 말하자면 시간이 오고 간다는 시간의식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 시인의 시에는 시간이 직접 등장하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시적화자 의 존재 의미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에는 시간의 큰 질서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즉 사계가 제목 속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김 시인의 사계절에 대한 인식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시간 속에서 시적 화자 의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세 작품 의 세계(1),카이로스의 종소리(4),크로노스의 시간(5)을 살펴보기로 한다.

 

고요하고 물 속 같이 침전하는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할까?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내 손이 잡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주변에는 손에 잡히는 것도 눈이 찾고 있는 것도 나를

부르는 것도 없는 밤, 그리고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복잡

하지도 고독하거나 누군가 그리운 것도 아닌,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아무말없이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다

무의식 또는 반 무의식으로 머리와 마음과 손을 자유롭게

방치해 둔다

지금 나란 존재는 내가 관리하지 않는다 이 정중한 밤의

엄숙한 분위기에 나는 고요히 말없이 얹혀 있다 무의식

세계가 나를 멀리 두고 관조하고 물끄러미 비라본다

이 순간도 기쁨도 슬픔도 그리움도 고독도 쓸슬함도 아니면

어떤 환희 환호 열광 열정 바쁨이나 쫓김도 없다

무의미 무의식 무감각 그리고 또렷하게 밝아오는 눈앞의

밝음과 고요함……이런 무감각 무의식 무관심 무의 세계로

즐기면 된다 그저 고요하다 편하고 안락하다 맑고 투명한

내 속이 보인다

, 이런 순간를 갖고 싶으나 내 의지는 아니다

적막과 고요 속에 합일하는 순간, 나는 없다

-의 세계전문

 

인용한 작품 의 세계는 행이나 연을 전혀 구분하지 않는 산문시이다. 그리고 중간의 문장부호도 생략되었다. 따라서 정독을 하지 않으면 의미 파악도 어렵다. 시의 첫 문장에서는 고요하고 물 속 같은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시는 시작된다. 둘째 문장에서는 시적화자 가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잡는 사물들을 지켜본다고 일종의 내면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다음부터는 와 주변과의 관계에 대한 의 판단을 진술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시적화자는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잡고 그들을 의지하고 싶으나 그들은 나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냥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상황은 시적화자 를 극도로 절망하게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는 이러한 상황을 무의 세계라고 규정하면서 절망을 극복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소멸한 무의 세계에서 오히려 자유를 얻는다. 달리 표현하면 그는 무의 세계에서 오히려 즐거움 혹은 안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순간은 내 의지는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것으로 시는 끝나고 있다. 내 의지가 아니면 누구에 의하여 도래한 행복일지는 이 시에서 그 판단이 유보되고 있다.

이 시에 제시되고 있는 시간을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는 시간이라고들 한다. 말하자면 갑자기 닥치는 어쩔 수 없는 복합적인 절망을 극복하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생각을 의식하지 않은 무시간의 상태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과정을 거치는 길이 최선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아마 김 시인은 그 자신의 절망을 극복한 체험을 살려 이러한 무시간 상태를 시적으로 진술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산사의 종소리가 그립다

저녁 종소리는 그리움이다.

물소리 정겨운

통도사 계곡이 눈앞에 다가 온다

맘껏 날아가는 멧새들처럼

일상을 던져두고 낙엽을 밟으며

적멸보궁을 찾아 나서고 싶다

때때로 나를 이끄는 카리로스의 시간!

산속을 자유로이 거닐고 싶다

일상에서 한 발짝도 자유롭지 못한

코로나 19’ 재앙 속에 갇혀 있는

어떤 구속과 반복의 시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크로노스는 반복의 시간이면

카이로스는 자유로운 창조의 시간이다

우리는 이 두 겹의 시간을 향유하며

필멸과 불멸의 시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

평범한 삶의 행복을 모르고 살아왔다

주어진 일상 속에서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갈망하며

저녁 종소리에 나를 맡기고 싶다

- 카이로스의 종소리전문

 

이 작품은 이 시집의 제목이도 하다. 시적 화자 가 통도사의 저녁 종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으로 이 시는 시작된다. 통도사의 계곡을 산책하면서 저녁 종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들었던 기억을 회상하며 그것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통도사에 특히 찾고 싶은 곳은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가 있는 전각 즉 적멸보궁이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시간이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카이로스라는 어휘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것으로 시간의 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절대적 시간의 시간을 뜻하는 신 크로노스에 비하여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간 즉 평생 기억되는 개인적 경험의 시간을 뜻하는 신이다. 그래서 크로노스의 시간이 무의미한 시간이라면 카이로스의 시간은 유의미한 시간이다. 김 시인은 이 작품에서 코로나 19로 구속과 반복의 무의미한 시간을 크로노스의 시간이며 이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고 인식하고 있다. 이어서 김 시인 자신의 카이로스 시간에 대한 해석을 가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자유로운 창조의 시간이며 우리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두 겹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필멸과 불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김 시인은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도 카이로스의 시간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을 잊은 채 크로노스의 시간으로 살아왔다고 보고 있다. 그러한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갈망하며 그 구체적인 방법이 통도사의 저녁 종 소리를 그리워하는 것이고 적멸보궁 탐방이라고 본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있는 한국 5대 사찰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통도사 탐방체험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발견하고, 통도사의 저녁 종소리를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열망하는 카이로스 시간의 구체적 양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이 시는 김 시인의 여든이 넘는 생애의 긴 시간에서 얻은 결론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다른 시 크로노스의 시간(5)에서도 다음과 같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자유를 갈망하는 카이로스의 시간들

기회와 창조의 희열, 예술 같은 삶을,

자유의 시간을 꿈꾸며 역사를 만든다

-크로노스의 시간마지막 3

 

이상과 같이 김 시인은 절망의 무시간 즉 크로노스의 시간을 탈피하고 시와 수필을 창작함으로써 카일로스의 시간을 향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는 인간이 만든 시간 단위 가운데 큰 단위의 하나인 사계절 즉, , 여름, 가을, 겨울이 김 시인의 시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봄과 관련된 작품 두 편 봄을 데리고 오다(1)봄비는 소리없이(5)를 살펴보기로 한다.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빛처럼 내리는

따스한 햇살 한 줄기

 

이름도 모르는

알록달록 풀꽃들이

함지박 가득히 떨고 있다

 

유달리

눈을 맞추고 웃어주는

분홍 풀꽃 하나 가슴에 안긴다

 

숨소리 있는 듯 없는 듯

향기 한 움큼

 

겨울 산자락에서

살며시 봄을 데리고 왔다

-봄을 데리고 오다전문

 

봄은 굳이 신화비평과 같은 이론을 가져오지 않아도 겨울에 죽은 듯이 있던 많은 식물들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탄생, 희망, 약동 등으로 상징된다. 김 시인의 시 봄을 데리고 오다역시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햇살을 받은 이름 없는 풀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지금까지의 시간시편들과는 달리 응축된 시어와 간략한 행과 연 구분을 바탕으로 시를 전개한다. 그리고 사물들 하나하나가 정지되어 있지 않고 미세하지만 움직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향기까지 청각적 이미지를 동원하여 시각화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주목받을 만 한 부분은 마지막 연인 겨울 산자락에서/살며시 봄을 데리고 왔다이다. 봄을 겨울과 연속시키는 점에서 직선적 시간의식이 아니고 순환적 시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봄이 스스로 온 것이 아니고 누군가 데리고 왔다는 인식 자체도 문제적 인식이다. 데리고 온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만물을 주재하는 창조주라고 보면 될 것이나 순환적 시간의식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 필자는 그가 추구하고 있는 시간이 봄을 데리고 온 것이라고 보는 것도 하나의 해석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김 시인은 봄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 달리 말하면 시간에 의하여 겨울 산자락을 넘어 온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이 시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순간적으로 표착된 것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오랫동안 관찰된 것이다.

봄과 관련된 다른 작품인 봄비는 소리없이(5)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소리로 등장하고 있다. 제목에서도 소리가 등장하지만 다음과 같은 끝 부분에서는 소리 없음에 대하여 언급하기도 한다.

 

꼭대기부터 꽃이 피어나는 목련 나무들,

메타세콰야 높은 가지 잎새들 나풀거리고

화려한 벚꽃나무 노은 곳부터 새순나고,

물만 빠라올리면 꽃도 피고 새순도 나고

말없이 물 올려주는 뿌리의 힘을 응원한다

봄비는 먼저 알고 소리 없이 보슬보슬 내린다

-봄비는 소리없이셋째 연

 

다음으로 여름과 관련된 작품 비 오는 어느 여름날(5)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빗속으로 조용히 추억이 내린다

싱그럽고 아름다운 설레임으로

울렁거리는 추억 한 토막.

돌아올 수 없는 세월

그 날은 끓는 청춘이었고

한없이 그리운 슬픈 이별이었다

 

숲속 오두막에서

신록의 속삭임을 듣고 있다

앞산도 뒷산도 개울가도 마주보며

찌르륵 찌르륵 부르는 소리

웅덩이에 번져가는 동그라미의 유혹

긴 둑길을 달리며

흘러간 긴 세월을 탈출하고 있다

 

넘치는 푸르름 향긋한 냄새

출렁거리는 무성한 6월의 초대

이 만찬을 몇 번이나 즐길 수 있으랴

소곤거리며 부르는 빗물소리

우주의 생명들! 지구라는 낙원에

함께 살고 있는 수많은 인연들!

오래오래 사랑하고 사랑하리라

-비 오는 어느 여름날전문

 

김 시인은 비 오는 어느 여름날에서 여름과 관련된 사물이나 풍경에 대한 객관적 묘사가 아닌 비 오는 어느 여름날에 있었던 예전의 일을 추억하는 것으로 시는 시작된다. 그 회상은 구체적이기는 아니지만 젊음과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첫째 연에 이어서 둘째 연은 아마 추억 속의 그 해 여름의 풍경을 감각적 이미지로 현재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시인이 즐겨 사용하는 감각적 이미지는 시각적 사물에서 소리 즉 청각적 이미지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에서도 숲속 오두막에서/신록의 속삭임을 듣고 있다고 진술한 다음 갖가지 소리들이 등장하고 있다. 공감각적 이미지의 경우 다른 감각들을 시각화 하는 것이 보편적인 유형인데 김 시인은 시각 현상을 청각적 이미지로 전환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소리를 통한 상상력의 전개이다. 소리는 공간의식이라기보다 시간의식에 의존하는 상상력이다. 아마 이 시도 여름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과거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이러한 여름은 단순한 과거의 추억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지금도 넘치는 푸르름과 그것에 동반한 향긋한 냄새로 즐기고 있다. 그것도 6월의 초여름을 만찬이라고까지 극찬한다. 또한 여기서도 소곤거리며 부르는 빗물소리라는 이미지가 등장하여 소리 즉 시간의 상상력을 전개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지적해야 할 특성 하나는 이러한 상상의 공간을 우주로까지 확대시키고 김 시인 자신의 수많은 인연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확대지향성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달도 언젠가는 지구를 떠난다?(1),별나라에는 누가 살까?,천문학자 리비트(3),우주 속에서 속삭이다(4) 등에서 그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가을과 관련된 작품 가을 소리(5)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칸나 꽃잎이 무너지는 소리,

오리목 열매 떨어지는 소리,

푸른 잎새 놀라는 소리,

낙엽 떨어지는 것만 가을이 아니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 때면

마른 잎을 날리며 속삭이는 말

무성한 한철 다 하지 못한 절규를

호젓한 한 밤에 홀로 떨어지는 잎새의 묵언,

 

흔들리는 바람소리,

사각거리며 몸 부비는 소리,

달밤에 날아가는 기러기 편에

일편단심 한 조각 소식 띄우리

가을 밤 가을 소리 소슬하게 깊어 가는데

가을!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가을밤 댓잎 우는 소리, 밤은 점점 구슬피 운다

-가을 소리전문

 

가을과 관련된 작품 가을 소리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리가 제목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첫째 연에서 가을의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풍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흔하지 않은 칸나 꽃잎 무너지는 소리 그리고 오리목 열매 떨어지는 소리 등을 등장시키고 있다. 심지어 낙엽 떨어지는 것만 가을이 아니다라고 규정한다.

사실 칸나 꽃잎이나 오리목 열매들의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이다. 소리를 낸다고 해도 아주 미세한 소리일 것이다. 이어서 전개되는 마른 잎의 소리나 호젓한 밤에 홀로 떨어지는 잎새들은 미세한 소리조차 내지 못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소리 내지 못함으로 인하여 가을의 비극성은 상승된다. 그렇다면 이들의 소리에서 연상될 수 있는 정서는 사물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에서 오는 슬픔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가을을 결실의 계절이 아닌 상실의 계절로 본 것이다. 이러한 비극성이 첫째 연에서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둘째 연에서는 흔들리는 바람소리와 기러기를 등장시켜 미세한 소리와 함께 깊어 가기 때문에 가을은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고 주장까지 한다. 그래서 결국 둘째 연의 마지막 행이자 이 시의 끝 행에서 가을 밤 댓잎 우는 소리, 밤은 점점 구슬피 운다라는 표현으로 비극성을 노출하고 있다. 이렇게 김 시인은 가을의 상징성을 결실이 아닌 상실로 보아 신화비평에서 말하는 사계의 상징성에 접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겨울에 관련된 작품 겨울이 오는 소리(2)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참새 떼들이

햇살 찾아 옹기종기 모였다

서산 응달에는

어두움이 짙어 오는데

 

호숫가 계단마다

엉거주춤 모여드는 어르신들

넘어가는 햇살 한

따스한 온기에 주름살 펴지고

 

호수는 고요히 반짝이고

뛰놀던 피라미 떼 돌 틈에 숨었다

 

달리는 청춘들 싱그러운 소나무,

 

밀차 밀고 가는 아담한 노인들

어느 세월에 허리를 굽었을까?

 

새날 새봄이 오는 날

한 걸음이라도 더 걸어보겠노라고

 

겨울 호숫가에 정다운 세상이 보인다

-겨울이 오는 소리전문

 

 

지금까지의 계절들의 시편에서는 계절과 관련 있는 자연들이 시의 중요한 배경 혹은 제재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겨울이 오는 소리에서는 비록 김 시인이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소리가 제목 속에 등장하고 있지만 겨울에 관련된 자연이나 풍물들은 그야말로 단순한 배경에 지나지 않고 노인들이 중요한 제재로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겨울을 상징할 수 있는 소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겨울하고도 어둠이 짙어 오는 저녁 무렵이고 햇살도 사라지는 시점이다. 따라서 사계의 겨울 상징인 죽음 혹은 비극에 해당한다. 이러한 배경에 넘어가는 햇살이라도 받아 추위를 쫓아보기를 기대하는 노인들이 배치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걷지 못하는 노인들까지 등장한다. 이렇게 보면 대단히 우울한 풍경이다.

그러나 김 시인은 오히려 마지막 행에서 정다운 세상이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결말에 도달하기 위하여 중간 중간에 호수의 반짝이는 풍경과 달음박질 하는 젊은이와 싱그러운 소나무를 배치하고 있다. 그리고 봄이 오면 지금보다는 건강하게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제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온다는 순환적 시간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핀 김 시인의 시 창작의 원리는 공간적 상상력인 시각적 이미지보다 시간적 상상력인 청각적 이미지가 공감각의 근본적인 이미지로 작동하고 있는 점이다. 이러기 위해서 그 자신 무의미하고 무의식적인 크로노스의 시간보다 유의미하고 창조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시 쓰기와 수필쓰기를 선택하고 있다. 말하자면 단순한 소일꺼리가 아닌 그가 자주 사용하는 우주 속에서 보람 있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나를 살려주는 원동력’(문학은 나에게)으로서 창작 행위를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상상력의 원천을 시간의식과 관련이 있는 소리에서 찾고 있다. 이 점 역시 간단하게 처리할 일은 아니다. ‘소리에 대한 김 시인의 사랑 혹은 동일시 현상을 보여준 시 한편을 인용하면서 김덕남 시인의 시집읽기를 마친다.

 

소리들은 어둠의 강을 건너갔다

귀를 세운다 한밤에,

창문을 꼭꼭 닫고 커튼을 친다

 

소리없는 밤을 탐한다

가슴 가득 울림으로 다가오는 소리들

멀리 날아가 버린 종소리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창호지 문살에 도란거린다

 

한밤중에

호롱불하나

나는 풍경소리가 된다.

-풍경소리(5)전문

<양왕용/ 시인/ 부산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