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짧은 소설

짧은 소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28> 노인은 달을 보고 있지 않았다.

작성일 : 2024.12.23 12:50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28>

노인은 달을 보고 있지 않았다.

/박명호 소설가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아파트 쉼터로 갔다.

반달이 참 정겹게도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달 쪽으로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다가 인기척에 뒤돌아보았다.

한 노인이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저 노인도 달을 보고 있구나! 제법 낭만적이네...

 

나는 그 노인을 알고 있다. 어쩌다가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그를 보는 정도였는데 얼마 전 뜻밖에 꿈에서 그 노인을 만났었다. 나는 노인을 따라 오래 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침침한 긴 복도와 높은 천정, 그리고 적막한 방에는 소파가 하나 외롭게 놓여 있었고, 그 소파에 헌 옷가지 걸쳐 놓은 것 같은, 아니 영혼이 다 빠져나가버린 뱀허물 같은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가 내가 따라온 그 노인지 아니면 또 다른 노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낡고 오래된 백 년의 고독 같은 적막한 분위기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건들면 풀썩 먼지로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다. 창으로는 햇살이 반쯤 넘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노인의 얼굴은 뚜렷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친근감이 갔다. 혹시 내가 아닐까...하다가 깨어났다.

 

그 사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달은 아파트 옥상 쪽으로 기울었다. 배가 고픈지 짝을 찾는지 들고양이 울음이 요란했다. 나는 일어났다. 돌아오면서 노인 쪽을 봤다. , 노인은 달을 보고 있지 않았다. 노인은 달을 등지고 어둠 속에 그냥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그때 꿈속의 모습처럼 그렇게 어둠 속에 있었다.

집에 와서 잠자리에 누웠으나 여전히 잠을 이울 수가 없었다. 백 년의 고독 같은 노인의 잔상도 잔상이지만 때맞춰 울어대는 들고양이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