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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12.23 12:46 수정일 : 2024.12.25 12:20 작성자 : 김하기
13, 백두대간 인문기행
낙동정맥 금오봉 남산
한 그루 배꽃이 외로움을 달래 주지만
휘영청 달 밝은 밤은 홀로 보내기 괴로워라
젊은 이 몸 홀로 누운 호젓한 창가로
어느 집 고운 님이 퉁소를 불어 주네
외로운 저 물총새는 제 홀로 날아가고
짝 잃은 원앙새는 맑은 물에 노니는데
바둑알 두드리며 인연을 그리다가
등불로 점치고는 창가에서 시름하네
<김시습 금오신화 (金鰲新話) > 만복사저포기>
우리 조상들은 왜 산으로 들어갔을까? 이 답을 찾기에 좋은 산이 백두대간 낙동정맥 단석산에서 동으로 뻗은 금오봉(468m) 남산이다. 남산은 질 좋은 화강암의 바위산이다. 남산의 화강암이 얼마나 좋으냐 하면 서울 북한산에 있는 진흥왕 순수비의 재질이 화강암인데, 북한산도 역시 화강암이다. 그런데 신라 사람들은 순수비를 세울 때 서라벌 남산의 화강암에 글을 새겨 북한산에 옮겨 세웠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화강암의 질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대자연의 정기가 모여드는 명당이란 뜻이다.
신라 사람들은 바위는 조상의 혼이고 산신이라고 본 것이다. 북방 문화의 황궁씨와 환웅천왕 단군왕검이 돌이 되었다는 산신령 사상(고조선 고인돌 전 세계의 40%)이 깨달은 부처와 접화군생하여 한반도 천년 신라의 꽃을 피운 곳이다.
남산은 서라벌의 남쪽에 솟은 산으로 천 년간 신라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마루금으로 이어진 남산은 남북 8km, 동서 4km로 길게 뻗어 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직삼각형의 매우 안정된 형국이다. 100여 곳의 절터,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 남산은 한마디로 진실된 우리의 역사이자 박물관인 셈이다.
북방 문화는 백두대간을 따라 낙동정맥 단석산에서 동으로 뻗은 마루금을 타고 내려와 역시 산기슭에 있는 나정蘿井에 터를 잡았다. 나정은 신라 임금인 박혁거세의 탄생신화가 깨어난 곳이며 양산재는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남방 토속 6촌 시조의 정착지였다.
삼국사기에는
시조의 성은 박씨, 이름은 혁거세이다. 始祖 姓 朴氏, 赫居世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기원전 57) 4월 병진(정월 15일)일에 왕위에 올랐다.
왕호는 거서간이다.
이때 나이는 열세 살이었으며 나라의 이름은 서라벌이라 하였다.
이번엔 삼국유사의 기록을 한번 보자,
옛날 진한 땅에 여섯 마을이 있었다.
진한 6부(辰韓六部) 또는 사로 6촌 이라 했는데, 신라의 기반이 된 서라벌의 여섯 부락이며, 씨족 집단으로 육촌(六村) 또는 육부촌(六部村)이라고도 했다.
3대 유리 이사금(儒理 尼師今) 32년에 개편하였는데,
양산촌을 급량부(及梁部)라 하며 이씨(李氏)
고허촌을 사량부(沙梁部)라 하며 정씨(鄭氏)
대수촌을 점량부(漸梁部)라 하며 손씨(孫氏)
진지촌을 본피부(本彼部)라 하며 최씨(崔氏)
가리촌을 한기부(漢祇部)라 하며 배씨(裵氏)
고야촌은 습비부(習比部)라 하며 설씨(薛氏)의 조상이 된다.
*
꼬끼오!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루이었다. 계림의 닭들이 일제히 꼬끼오하고 며칠을 울어대자, 여섯 촌의 촌장들이 각각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 뚝 위에 모였다. 서라벌徐羅伐에는 예로부터 상서로운 일이 있으면 여섯 촌장들이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허촌장 소벌공이 먼저 말하기를,
“6부 촌장님들 모두 모였소이다. 우리에게는 나라를 다스릴 임금이 없소이다. 하루빨리 덕 있은 분을 모셔 임금으로 삶고 나라를 세우는 일이 시급하오이다.”
6부 촌장들이 고개를 끄떡이며 뜻을 같이하자,
꼭 거짓말같이 남쪽 양산楊山 위 나정蘿井 우물가에 하늘에서 오색 무지개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놀란 사람들은 입을 모으며 말했다.
“저기를 보시오!”
“아니, 어서 가봅시다.”
사람들이 달려가 보니, 흰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는 한번 크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흰말이 올라간 자리에는 황금빛 큰 알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이 놀라 알에 다가가니 알에서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나왔다.
“오, 신기한 일이오다. 신성한 아이입니다. 동천으로 데려가 목욕부터 시킵시다.”
“예 그렇게 합시다. 어서 앞서시오. 조심하시고.”
촌장들은 모두 다 놀랍고 신기해 아이를 동천東泉에 데려가 목욕을 시켰다. 목욕을 하고 난 아이의 몸에서 광채가 나며 눈이 부셨다.
이때 사방에서 새와 짐승들이 모여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며 해와 달이 맑고 밝게 빛났다.
“촌장님들 며칠 전부터 닭들이 크게 울고, 성스러운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소이다. 이 아이를 우리의 임금 모시라는 하늘의 뜻인가 보오.”
“그러하오, 그게 좋겠소!”
사람들은 알에서 나온 아이를 임금으로 모셨다.
“우리의 임금이니 이름을 무어라고 했으면 좋겠소?”
“우리 진한 사람들은 표주박을 박朴이라고 하는데, 커다란 표주박 같이 생긴 알에서 나왔으니, 성을 박으로, 그 이름을 혁거세라고 합시다. 이는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 밝은 세상이란 뜻이며, 하나하나 풀이하면 빛날 혁, 살 거, 인간 세 란 뜻이 오다.”
6부 촌장들은 만장일치로 쌍수를 들고 좋아하며 칭송했다.
이때 혁거세는 스스로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알지거서간閼知居西干 한번 일어났다!”
거서간은 진한 말로 귀인이란 뜻이다.
여섯 촌의 사람들은 하늘이 자신들의 소원을 듣고 임금님을 내려 준 것을 소리 높여 칭송하여 “이제 천제님이 세상에 내려왔으니 덕 있는 여군을 찾아 배필을 정할 일만 남았소이다.”하고 모두 환호했다.
그날 정오 무렵, 사량리 마을의 알영 우물가에 계룡 한 마리가 나타나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그 자태가 매우 고왔다. 그러나 입술이 닭 부리처럼 생겨 보기가 흉했다.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애석해하며 월성 북쪽 시내에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키니 닭 부리같은 입술을 떨어지고 앵두같이 예쁜 사람의 입술이 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 시내를 발천撥川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하늘이 준 신령한 두 아이를 길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나왔다고 성을 박朴이라 했고 여자아이는 우물 이름을 따 알영이라 했다.
두 성인이 자라 열세 살이 되는 오봉五鳳 원년 갑자(기원전 57) 4월 병진일에 혁거세를 왕으로 알영은 왕후가 되니 갑자(기원전 57)년 4월 병진(정월 15일)일이다.
*
삼국 중 고구려 백제보다 먼저 신라가 나라를 세웠고,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992년 천년의 역사를 이었다.
필자는 그 이유를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 북방 문화와 낙동정맥을 타고 올라 온 남방문화가 접화군생한 결과라고 본다.
삼국유사에는 최치원이 말하길, 신라의 전성기에는 서라벌에 17만 8,936호요, 1,360방 55리 35금입택(부유한 아주 큰 집)있다. 제49대 헌강왕 때는 성 안에 초가집이 없고, 집의 처마와 담이 서로 닿아있어 비가 와도 맞지 않고 걸었고, 길에 노랫소리가 가득하여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남산은 신라 5악(동악 토함산· 서악 계룡산· 남악 지리산· 북악 태백산· 중악 팔공산)과는 별도로 신성시되었던 곳으로, 화백회의를 남산의 오지암亐知巖이라는 바위 위에서 열었다고 한다.
김시습이 한국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를 쓴 곳이 남산에 있던 용장사다. '금오'는 남산의 주봉 금오봉을 의미한다.
* 금오신화라는 이름은 '금오산의 신화'라는 뜻의 金鼇神話가 아닌, '금오산의 새 이야기'라는 뜻의 金鼇新話이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다스린지 61년째 되는 어느 날 왕은 홀연히 하늘로 올라간다. 이때 왕후도 따라 죽었다고 한다.
백성들은 왕과 왕후를 합장하려 했으나 커다란 구렁이가 나타나 방해했다고 한다. 이곳을 사릉蛇陵 혹은 오릉이라 부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