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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12.23 12:38 수정일 : 2024.12.25 12:10
12. 백두대간 인문기행
고래사냥
우리들 가슴 속에는 뚜렷이 있다 한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송창식>
남쪽에서 봄바람이 불어 낙동정맥 고헌산(1,034m)에서 발현한 산과 물이 대곡천에 엎드린 거북이가 되고, 반구산 기슭에 약쑥이 돋기 시작하면 아낙네들은 들로 산으로 나물 캐러 나가고 용감한 사내들은 사슴 뼈를 갈아 만든 창이나, 할배 바람이 북쪽에서 가지고 온 청동 작살을 들고 하나둘 반구대 암벽 밑으로 모여들었다.
올해 들어 첫 고래를 잡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고래사냥은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협동 사냥이었다. 열 번 시도해 한 마리만 잡아도 온 부족이 며칠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동물은 고래뿐이었다. 일단 고래 고기는 맛있고 버릴 것이 없어 최고의 인기 고기였다. 고래기름은 등불이나 약으로 사용하고 고래 뼈는 농기구나 바늘로 아주 유용했다.
고래사냥이란 바다의 용왕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일 뿐만 아니라 남자들의 힘을 모아 부족을 지키고 두레를 결성해 농사도 짓고 사냥해 결속을 다지기에 이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바다에서 쪽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다는 것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멀리 바다 건너 왜(일본)에서도 며칠을 노 저어 우시산(울산) 앞바다까지 고래사냥을 오는데, 반구산 거지화촌(언양) 사람들은 힘들이지 않고 앞바다에 고래가 와주니 용왕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태화강을 타고 하류에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는 작은 새우등 고래가 좋아하는 먹이가 풍부해 예로부터 동해 고래들의 놀이터라고 불리었다. 옛날에는 죽어 해안가로 떠내려온 고래나, 바다의 늑대 범고래 떼에게 쫓겨 강으로 올라와 갇히는 새끼 고래를 잡았다. 고래 고기를 맛본 사람들이 직접 고래를 잡자는 마음을 먹고, 바다로 나가 고래를 직접 잡기 시작하는 데는 수백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백두산 신단수 아래 다녀온 할배 바람이 북쪽에서 청동칼과 청동작살을 가져오고부터 아주 효율적인 방법으로 고래를 잡았고, 이젠 무분별한 사냥이 아닌 개체수 보호와 암수 새끼를 구분해 사냥하는 방법이 사람들에게 교육되었다. 다 환웅천왕께 배운 홍익인간 이념이었다.
먼저 할배 바람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천왕의 삼천 관리들 모양 남자들에게 모두 산발이 아닌 두건을 쓰게 했고, 여자들은 긴 머리를 땋아 댕기를 달게 했다. 산발 머리를 손질하고 두건을 쓰자 사람들의 얼굴이 돋보였고 서로를 존중하며 생활이 훨씬 활기찼다. 고래사냥에 앞서 제일 중요한 선창잡이와 후창잡이,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 고래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칼잡이, 노를 젓는 격군들을 구분하기 위해 머리 두건에 새의 깃털이나 나뭇가지를 꽂게 했다. 바람 자신은 부족의 할배로 강치 껍질로 만든 가죽 두건을 썼다. 가죽 두건을 쓰니 한층 위엄 있어 보였고 부족 사람들도 바람의 명령을 잘 따랐고 차츰 질서가 잡혀갔다. 사람들은 바람에게 할배(한배)란 존칭을 붙였다.
거지화촌(언양) 부족은 풀로 짠 초의나 동물 가죽을 걸친 사람은 없었다. 모두 형편에 따라 삼베나 면화로 짠 옷을 입고 두건을 써 풍채나 인물이 훤했다. 모두 백두산 신단수에 강림한 환웅천왕의 삼천 관리들에게 본받은 것이라 했다.
오늘은 올해 들어 첫 번째 고래사냥이 있는 날이다. 남쪽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고 반구천에 물이 녹기 시작하면 동해에는 출산을 앞둔 고래들이 모여들었다. 암컷 고래들이 새끼를 낳고 산 후 조리식으로 우시산(울산) 연안 바닷속에 풍부하고 질 좋은 미역이 많아, 예로부터 봄이면 새끼를 낳은 고래들이 새끼 반 물 반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곳이다. 바닷물도 차지 않아 칼잡이들이 신무기 청동칼을 들고 직접 바다로 뛰어들기 좋은 때다.
반구천 암벽 밑에 사람들이 모여 모두 작년 쪽배 물 새는 곳을 일일이 땜질 수리를 마쳤고 배 바닥에 붙은 따개비나 조가비를 긁어내고 불로 그슬러 달라붙지 않게 하느라 며칠 전부터 분주했다. 청동 작살 촉을 바위에 갈아 배마다 네댓 개씩 긴 장대에 달고 두 번 세 번 확인을 마쳤다. 칼잡이는 새로 받은 청동 칼을 손으로 날을 점검하고 격군들은 손에 천을 단단히 감아 고래사냥 준비를 마쳤다.
한쪽에선 어른을 따라온 동네 꼬마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를 잡아 꼬치에 끼워 모닥불에 구워 서로 먹겠다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올해 처음 시작하는 고래사냥에 약간 흥분된 표정이 역력했다. 거지화촌(언양) 부족은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 같았다.
파란 옥구슬이 박힌 강치 두건을 쓴 할배 바람은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청동 칼을 허리에 차고 가슴에는 청동 거울 달고 팔주령을 흔들며 사람들 앞에 섰다. 유난히 햇볕을 받은 청동 거울이 빛났다. 사람들은 모두 허리를 조아려 바닥에 큰 절을 세 번 했다. 바람 할배가 손을 높이 들어 팔주령을 흔들어 답례를 하자, 사냥꾼들의 시선은 반구대 암벽으로 집중되었다.
할배 바람의 고래사냥 전 주의 사항과 교육이 시작되었다. 올해 새로 뽑힌 젊은 사냥꾼들도 있었다. 할배 바람은 먼저 위쪽 그림 암벽에 새로 그려진 귀신고래를 가리켰다.
“듣거라! 이 고래 이름이 무엇이냐?”
80여 명의 사냥꾼들은 일제히 목청을 높였다.
“귀신고래라 하옵니다.”
할배 바람은 빙그레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면 말했다.
“그래, 모두 결기가 대단하구나!”
할배 바람은 두 손으로 박수를 치며 사람들을 독려하며 계속했다.
“듣거라, 몇 년 전부터 동해에 이 귀신고래가 많이 늘어났다. 이 귀신고래의 특징은 그림과 같이 수염이긴 고래다. 대부분의 고래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 하지만 범고래 같은 이빨 고래는 조심해야 한다.”
할배 바람은 위쪽 범고래 그림을 가리키며 조심을 당부했다.
“이 귀신고래를 남쪽 사람들은 쇠고래라고도 하는데 등에 긁힌 자국이 많고 흰따개비가 많이 붙어 있어 구분이 쉽고, 등지느러미가 없다. 알겠느냐?”
“예이.”
사람들은 일제히 목청을 높였다. 모두 다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사냥꾼들의 고래사냥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선두에 서는 선 창잡이가 되는 일이다. 선 창잡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뿐 아니라 특히 처녀들에게 인기가 있어 일등 신랑감이다. 고래사냥에 선 창잡이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할배 바람의 교육은 계속되었다.
“모두 다 알다시피 귀신 고래는 고래 중에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하지만 힘이 엄청나게 세니, 물에서 무엇보다 조심해야 한다. 고래 꼬리에 맞으며 바로 죽을 수도 있다 말이야.
한 번씩 하늘로 고래 뛰기를 하는 것을 모두 봤지. 정말 엄청나게 크다. 한 마리만 잡아도 우리 부족 몇 달은 고기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이다.”
바람은 두 팔 벌려 귀신고래의 크기를 가늠했고 암벽에 새겨진 귀신고래를 가리키며 입에 침을 튀기며 열심히 설명했다. 사람들은 허리와 귀를 세우고 할배 바람의 설명에 집중했다.
“듣거라, 내가 누차 강조하지만 우리는 고래를 사냥도 하지만 개체수를 보호도 해야 한단다. 요즘은 귀신고래가 늘어나서 집중적으로 잡는 것이다. 새끼 고래나 새끼를 키우는 암컷은 절대 잡으면 안 된다. 알겠느냐?”
“예이!”
할배 바람의 말을 곧 법이었다.
“이 그림을 모두 한번 잘 봐라, 고래는 새끼를 이렇게 업고 다닌단다. 새끼는 스스로 헤엄을 잘 치지 못하고, 숨을 쉬기 위해서 물 위쪽으로 올라 와야 하는데, 어미의 보살핌과 도움이 필요하단다. 그런 새끼를 잡아야 하겠냐? 안 잡아야 되겠냐?”
“잡으면 안 됩니다. 할배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할배 바람은 이번에 청동 작살 창을 들고 설명을 이어갔다. 창의 길이가 10척 정도 되는 대나무인데 끝에는 청동으로 만든 작살이 부착되어 있었고 작살에는 긴 줄이 매달려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사슴 멧돼지 동물 뼈를 간 작살이 나 돌창을 사용했는데, 이번에 할배 바람이 백두산 신단수에 다녀오면서 가지고 온 청동 작살은 일대 혁신적이었다.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휘둥그레진 눈으로 작살 창을 보았다. 10척 장대에 꽂힌 청동 작살은 보기만 해도 위협적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두에 선 격꾼들이 소리 없이 고래 좌·우측에서 최고의 속도로 고래를 따라가야 한다. 늘 이야기 하지만 고래는 귀가 밝아 노 젓는 소리에 물속으로 숨어버릴 수도 있단다. 격꾼들 잘 알았제?”
격군들이 주먹을 쥐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거지화촌 격군들은 물개같이 아니 귀신같이 미끄러지듯 소리 없이 노를 잘 젓는다. 물 한 방울 튀지 않고 찰랑이는 소리 없이 10명이 한 사람같이 노를 잘 저었다. 그러니 귀 밝은 귀신고래도 옆에 사람들이 따라오는지 모르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도 옆 마을 우시산(울산)부족과 굴아화촌(태화강) 부족과 멀리 사로촌(경주)부족도 노 젓는 법을 배우려 반구산 암벽 밑으로 올 정도다.
“예이.”
격군들의 함성이 우렁찼다. 만족한 듯 할배 바람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선창잡이가 이 작살을 높이 들고 고래 좌·우측으로 따라 가다. 할배의 지시에 따라 순간 개구리가 뛰어오르듯 장창과 같이 몸을 공중으로 높이 날듯 벋어 체중을 실어 단번에 고래 머리 부분, 특히 코구멍 주위를 깊숙이 찔러야 한다. 고래 등이나 다른 곳을 찌르면 고래가 죽지 않고 더욱 요란하게 발버둥만 친단 말이야.”
할배 바람은 긴창을 벋어 반구대 암벽 귀신고래의 콧구멍 부분을 가리켰다.
“선창잡이가 성공하면 바로 할배의 지시에 따라 줄잡이는 줄을 풀기도 하고 잡아당기기도 해야 한다. 후창잡이가 창을 들고 선창잡이 모양 2차로 고래 머리 아가미부분을 깊숙이 찌른다. 쪽배에서는 파도가 쳐 몸의 중심 잡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중심을 잡고 단번에 뛰어 올라, 머리 부분을 정확하게 깊이 찔러야 한다. 특히 물에 뛰어들 때 고래의 꼬리를 조심 또 조심 피해서, 얼른 배에 올라타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각자의 목숨이고 안전이다. 알겠느냐?”
할배 바람의 실전과 같은 교육은 매번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고래를 고통 없이 단번에 잡는다는 것과, 새끼와 새끼를 키우는 어미는 잡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누차 강조했다. 이 원칙은 반구천 거지화촌 부족 뿐만아니고 생서량촌(서생) 부족 멀리 사로촌(경주) 등 대부분의 부족이 지키는 불문율이었다.
고래사냥 교육을 마친 거지화촌 사람들은 아낙네들이 아침부터 솥단지에 펄펄 끓인 돼짓국을 한 그릇씩 받아 삼삼오오 둘러앉아 게 눈 감추듯 배를 채웠다. 점심을 든든히 먹은 고래잡이 사냥꾼들은 각자의 쪽배에 나누어 타고 반구천을 따라 동해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강 주변에는 고래잡이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의 대대적인 환송을 받았다. 아이들은 맛있는 고래 고기를 상상하며 입에 침을 흘렸고, 남편의 무사 안전 귀가를 걱정하는 아낙네들의 당부를 응원 삼아 쪽배 선단은 미끄러지듯이 급류를 타고 태화강 동해로 향했다.
거지화촌 8척의 선단은 태화강을 빠져나와 동해로 미끄러지듯이 진입했다. 선두에 할배 바람이 타고 각 쪽배 마다 선창잡이 1명 후창장비 1명 줄잡이 2명 격군 8명, 12명이 탄 쪽배 선단은 80여 명 정도였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없었다. 선두에 선 할배 바람의 눈에 우시산(울산) 앞바다가 그림같이 펼쳐졌다. 미풍에 두루마기 자락이 흔들렸고 파도가 없어 바다가 면경 같았다.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과 멀리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그런데 수평선 위로 뭔가가 빽빽하게 떠 있었다.
“아니!”
우시산(울산) 앞바다에 시커먼, 분명 고래는 아닌 것 같은데 고래만 한 쪽배들이 빽빽하게 바다에 떠 있었다. 고래사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쪽배가 한둘이 아니다. 한눈에 수를 셀 수도 없었다. 바다는 고래 피로 피바다가 되어 피 냄새가 바닷바람을 타고 진동했다. 무분별한 고래사냥이었다. 아니 씨를 말리는 고래잡이 현장이었다. 붉은 피를 마구 흘리며 강이나 육지 쪽으로 피신하는 새끼 고래가 할배의 선단 쪽으로 마구 몰려왔다. 배를 뒤집고 둥둥 떠 죽어있는 새끼 고래도 있었다.
앞선 할배 바람이 선두에서 급히 손을 들어 따르는 배들도 급히 정지시켰다.
“멈춰라!”
눈 밖은 선창잡이가 급히 아뢨다.
“할배님! 왜놈들입니다.”
뒤늦게 발견한 후창잡이가 겁을 먹고 또 아뢨다.
“할배님! 왜놈들의 배가 수백 척은 될 것 같 습니다. 얼른 강을 따라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놈들은 사람 고래 가리지 않습니다.”
왜놈들이었다. 가끔 바다 건너 왜놈들이 우시산(울산) 앞바다까지 고래사냥을 오지만 이렇게 떼거리로 수백 척이 몰려온 적은 처음이었다.
눈이 밝아 늘 선두에서 창을 든 선창잡이도 겁을 먹고 단번에 할배 바람에게 고했다. 할배 바람은 눈을 부릅뜨고 신중하게 팔을 벌려 단번에 명령을 내렸다.
“거지화촌의 용감한 전사들이여. 물러서지 마라. 배를 횡으로 연결하고 장창을 높이 들고 북을 울려라!”
할배 바람의 명령에 북이 울리자 8척의 쪽배는 횡으로 꼬리에 꼬리를 맞대고 사냥꾼들은 장창을 높이 들었다. 할배 바람은 다시 명령했다.
“봉화를 높이 두 번 올려라!”
봉화를 올려 우시산(울산)부족과 굴아화촌(태화강) 부족에게 긴급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새끼 고래만 골라 정신없이 잡던 왜선들은 거지화촌(언양) 바람 할배의 선단을 발견하고 잠시 우왕좌왕하는 듯했으나 이내 뒤로 물러나는 듯했다.
할배 바람은 청동칼을 높이 들고 사람들을 독려했다.
“용감한 거지화촌 전사들이여. 절대로 물러서지 마라. 지금 우리가 물러서면 왜놈들은 이제 자기 안방 모양 우리 바다에서 고래사냥을 마구 해 고래 씨를 말릴 것이다. 우리 바다, 우리 고래는 우리가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 배를 횡으로 연결해 세를 과시하고 모두 장창을 들고 당당하게 맞서라!”
선두에 선 선창잡이가 급히 다시 고했다.
“할배님 과부족입니다. 우리는 겨우 8척인데 왜놈들은 셀 수도 없습니다. 일단 돌아가 굴화지촌(태화강)과 우시산(울산) 군사들을 모아서 방어함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선창잡이가 일단 후퇴를 몇 번이나 아룄다. 하지만 할배 바람은 단호했다.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겁을 먹고 물러서면 왜놈들은 기가 살아 더욱 날뛸 것이다. 아마 어제부터 고래잡이를 한 것 같은데, 왜놈들은 새끼 고래를 몇 마리 잡았으니 분명 돌아갈 것이다. 지금쯤 놈들은 물과 식량이 바닥나 분명 선제공격 못 할 것이분명하다. 무엇 하느냐, 북을 울리고 빨리 선단의 열을 세우고 장창을 높이 들어라.”
할배 바람의 명이 떨어지자, 북을 울리며 거지화촌 선단은 횡으로 대열을 갖추어 왜선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리고 신속하게 연기를 피워 하늘 높이 봉화를 두 번 연속으로 올렸다.
순간 동해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맞섰고 멋모르고 모여든 갈매기들도 숨을 죽였다.
우시산(울산) 앞바다에서 기세등등하게 마구잡이로 새끼 고래 위주로 사냥하던 왜선들은 잠시 멈칫하더니, 거지화촌의 선단이 8척인 것을 확인하고 작은 쪽배 하나가 속도를 내어 다가오고 있었다. 수백 척의 왜 선단은 일단 약간 뒤로 물러나며 관망하는 듯했다. 분명 공격할 의사는 없는 듯했다.
할배 바람은 한 손에 청동 칼을 쥐고 뱃머리에 올라섰다. 파도에 쪽배가 많이 흔들렸지만 7척 키의 할배 바람은 두 다리를 벌려 중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두루마기 자락만 휘날렸다. 분명 쪽배 하나가 오는 것을 봐서 싸울 뜻은 없고 뭔가 전할 말이 있는 듯했다.
왜의 작은 쪽배에는 훈도시 하나 달랑 찬 키 작은 사람들이 10여 명 있었다. 손에 무기는 안 들은 것으로 보아 공격할 의사는 분명 없는 듯했다. 사람들은 며칠을 바다에서 파도와 악전고투를 했는지 눈이 퀭한 게 몰골이 피골이 상접했다.
할배 바람은 일단 청동 칼을 내리고 당당하게 섰다. 왜 쪽배는 할배 바람의 배에 맞대며 연신 “미즈, 오미즈” 하며 손으로 물을 마시는 시늉을 했다.
할배 바람은 저들의 뜻을 단번에 알아듣고 사람들에게 명했다.
“여봐라, 저들에게 물을 주어라.”
“할배님 저놈들에게 물을 줘요? 당장 쫓아버립시다.”
선창잡이가 눈알을 부릅뜨며 할배에게 대들듯이 말했다.
“아니다. 빨리 마실 물을 주어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실 물을 모두 저 사람들에게 주어라. 우리와 싸우려고 온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다만 살아가는 방법이 우리와 다르고 고래를 잡는 방법이 우리와 다를 뿐이다. 우리가 저들에게 마실 물을 줘 돌려보내면 머지않아 저들도 깨우치고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저 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면 사나흘은 걸린다. 많은 물이 필요할 것이다.”
할배 바람의 명에 따라 거지화촌 선단은 가지고 온 물을 물통 채 넘겨주었다. 저들은 아리가도 아리가도를 몇 번이나 외치며 멀어져갔다.
동해 우시산(울산) 앞바다는 고래 피바다가 되어있었다. 여기저기 죽은 고래 새끼가 둥둥 떠다녔다. 멋모르는 갈매기 떼가 새까맣게 날아와 죽은 고래 새끼에게 달라붙었다. 사람들은 갈매기를 쫓고 죽은 새끼 고래 몇 마리를 회수하여 반구천으로 돌아갔다.
할배 바람은 배 안에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들 내 말 잘 들어라. 우리가 물을 주지 않으면, 저들은 돌아가면서 분명 남쪽 생서량촌(서생)이나 기장, 다다나(다대포)쪽에 들러 식수를 보충하며 노략질을 할 것이 분명하다. 왜놈들은 아직 법도 없고 질서도 없다.
우시산 앞바다에 새끼 고래가 많다는 것을 저 사람들도 잘 알고 여기까지 사냥을 오는 것이다. 큰 고래는 잡아도 바다 건너 자기 마을까지 끌고 갈 수가 없고, 흑요석 돌창으로 큰 고래는 사냥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새끼 고래 위주로 사람들이 직접 벌 떼같이 달려들어 새끼 고래만 잡고 있다. 작은 배에 실을 수 있는 새끼 고래 위주로 사냥을 하는 것이니 나무랄 수 있겠느냐? 자기들 나라에서 여기까지 삼사일 이상 목숨을 걸고 왔을 것인데. 우리도 강치를 잡기 위해 사오일 걸려 동쪽 바위섬까지 간 일이 있지 않은가?
돌아가 빨리 우시산 할배들과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
할배 바람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굳은 표정으로 말은 없었고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만 휘날렸다.
갈매기 몇 마리가 돌아가는 거지화촌(언양) 선단을 따라오며 고래 고기를 나누자고 끝까지 외쳐 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