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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 58.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작성일 : 2022.04.05 04:3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윤일현

 

 

다양한 매체가 우크라이나 전황을 라이브 중계처럼 매일 보도한다. 참혹한 광경을 보며 어린 시절의 전쟁 영화 관람 방식을 떠 올린다. 전쟁의 원인이나 영향을 따져볼 능력이 없으니 우리 편은 무조건 정의의 화신이자 선이고 상대는 나쁜 놈이고 악이었다. 지금 우리도 그와 비슷하다. 우크라이나군의 분투와 선전(善戰), 러시아군의 패퇴 소식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러시아군 사상자가 수만 명에 달한다는 보도에 일순간 통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소스라치게 놀란다. 러시아 병사는 무슨 죄가 있는가. 희생된 우크라이나 민간인과 어린이 소식에 분개하다가 진흙 속에 묻혀있던 러시아 병사의 시신이 수백 구 발견됐다는 보도에 몸서리를 친다. 폭력과 살인을 다룬 영화를 반복적으로 접하면 실제로 일어난 폭력과 살인사건을 별 충격 없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비슷한 장면을 되풀이해 봄으로써 신선함과 충격이 사라지게 되는 현상을 이미지 중독이라 부른다. 나 자신의 이미지 중독이 놀랍기만 하다.

 

세상의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 중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곶()이 그렇게 돼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나 그대 영지(領地)가 그리돼도 마찬가지.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전체 인류 속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영국의 성직자이자 시인인 존 던(1572~1631)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그가 이 시를 쓸 당시 영국에서는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가 살던 마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교회에서 종을 울렸다. 그는 조종(弔鐘)이 울릴 때마다 또 누가 죽었는가 보다라며 궁금해했다. 시인 자신도 전염병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병석에서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며 그게 바로 자신을 위한 종소리임을 깨닫고 이 시를 썼다. 그는 남이 죽는다는 것은 순전히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헤밍웨이는 이 시를 인용하며 같은 제목의 소설을 시작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자유는 삶과 죽음을 걸고 싸워야 하는 주제이며 온 인류의 형제애는 불가피한 현상이 된다라고 주장하며 인류애와 연대의 가치를 호소했다.

 

톨스토이의 에세이집 죽이지 마라는 그의 비폭력, 반전사상을 담고 있다. 이 글을 쓸 당시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팽창정책을 추구하던 서구 열강이 국가 간 분쟁을 무력으로 해결하던 시기다. 그들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채우고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했다. 톨스토이는 전쟁을 떠받치는 기둥이 애국심이라고 말하며 애국주의의 맹목성과 허상을 파헤쳤다. 그는 애국심을 국가적 책략 도구이자 미신으로 간주했고, 애국심으로는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애국주의는 인위적으로 인간에게 접목된 부자유스럽고 퇴행적인 감정이며 어떤 견제도 불가능해 인류가 겪는 폭력적 병폐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는 애국주의는 자신의 조국과 민족에 대해 과도한 충성심을 불러와 타 국가와 민족을 지배하려 하며. 정복한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폭력을 행사하게 한다고 했다. 그는 애국주의를 벗어나야 폭력도 침략전쟁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바라보며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와 세계 곳곳에서 힘을 발휘하는 비뚤어진 애국심과 배타적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전쟁터로 끌려간 청년들의 무고한 희생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추위와 굶주림, 죽음의 공포라는 극한 상황에 던져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젊은이들이 겪는 생지옥의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나는 누구인가? 저들의 죽음은 나의 죽음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가? 존 던의 시구를 다시 소리 내어 읽어 본다.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전체 인류 속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 울리는 저 조종이 다음은 나를 위해 울릴 수 있다.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하며 희생된 민간인과 군인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