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문학 수프

인문학 수프

<인문학 수프 /재미로 보는 주역> 16. 산 아래 바람처럼, 선갑삼일(先甲三日)

작성일 : 2022.03.31 12:54

 

16. 산 아래 바람처럼, 선갑삼일(先甲三日)

/양선규

 

 

현대의 권력은 선거를 통해 창출됩니다. 선거가 이루어지는 양태를 보면 그곳 권력의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바른 권력은 바른 선거에서, 비뚤어진 권력은 비뚤어진 선거에서 태어납니다.

어제는 친한 친구 부부와 몇 시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카페에 앉아서 그렇게 두 집 식구만 오래 이야기를 나눈 것도 오랜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정치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서로의 정치관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라는 결론을 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정치를 해서 높은 자리에 가게 되면 뇌구조가 아예 바뀌게 되어서 인간미가 상실되는 것 같다는데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소년등과 해서 높은 자리에 올랐던 고교 후배 한 사람이 언젠가 제 연구실까지 찾아와서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관직에서 물러나 집에서 한거할 때 고향 선배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제는 사람이 좀 보이시는가?”라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자리에서 물러나 이런저런 소외를 경험하니 인간을 되돌아보게 되더랍니다. 그런 이야기를 불원천리 저를 찾아와서 하는 까닭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외로울 때는 누구나 옛친구를 찾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겠지요.

 

선거가 있을 때면 산 아래 바람처럼정치하는 이들은 순하고 선선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닙니다. 순풍(順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원하던 소기의 권력을 얻고 나면 그들의 눈에서 사람이 사라집니다. 보이는 건 우중(愚衆)들뿐, ‘, 돼지들이거나, 그저 교언영색에 속아 달라는 대로 준 생각 없는 표 한 장들만 있을 뿐이지요. 평생 생각 이전에 오는 감성에 의존해서 살아온 한 사람의 문학인으로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권력을 만드는 바람은 다른 바람들과 무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좋은 바람이든 나쁜 바람이든 결과에 대한 을 분명하게 전달합니다. 누가 이길 것인지, 어떤 편에서 대세를 가져가고 있는지가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요즘 또 한 판의 선거판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나라의 대표적인 두 대도시의 수장을 뽑는 선거가 치러지고 있고 안에서는 한 조직의 수장을 뽑는 선거가 치러지고 있습니다. 안에서 하는 선거는 작은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제법 큰 자리(차관급)를 결정하는 선거입니다. 실제로 자문을 구하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인사치레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에는 전혀 감이 안 옵니다. 전번과는 많이 달라요.”라고요. 개중에는 두 번째 출마해서 저를 찾아온 이도 있습니다. 그 분에게는 전에는 누가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렸죠?”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후보자들 중에서 평소 가까이 지내던 이들에게는 좋은 말들이 많이 들리더라.”, “자신감을 가지고 좀 더 과감하게 사람들과 소통해 보라.”와 같은 덕담을 던집니다. 아마 저와 그런 덕담을 나눈 분 중에서 누군가가 최종적으로 산 위에서 아래로 바람을 내려 보내는 자가 될 것으로 예측은 하고 있습니다. 작은 선거판, 특히 너무 작은 선거판에서는 표와 사람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표는 사람이 가지고 있지만 표를 행사하는 것은 악마입니다. 작은 판에서 큰 권력을 만들어낼 때는 항상 인간의 저급한 본성을 흔드는 악마의 디테일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합니다. ‘선거 마귀가 항상 기승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최후의 승리까지 그들의 것은 아닙니다. 열이면 열, ‘선거 마귀들과 함께 해서 권력을 잡은 자들은 살아서 치욕을 맛봅니다. 권력은 유한하고 살아남아서 부지할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지요. 가까이는 제 주변에서, 멀리는 나라 일에서, ‘군자유종을 하지 못 해서 비인간으로(제대로 사람들과 교유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을 지금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주역 열여덟 번째 괘는 산풍고(山風蠱)’, ()괘입니다. 경문은 고는 크게 형통하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며, 법령에 앞서 사흘을 두며 법령의 뒤에 사흘을 두느니라.’(蠱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입니다. 산 아래 부는 바람처럼, 순탄한 치자의 처세를 강조합니다. 법을 만들 때는 철저히, 단호하게 하지만 그 법을 시행할 때는 유순히, 공손하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효사(효사)는 주로 아비, 어미의 일로 비유를 삼고 있습니다. ‘아비는 뜻의 계승을 어미는 중용의 도를 강조하는 데 주로 사용됩니다.

 

육오는 아비의 일을 하니 영예로우리라. (六五 幹父之藁 用譽)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 163]

 

아비의 일은 덕을 승계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야 산풍의 형세를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이번 괘가 주는 교훈은 덕을 승계하여 공손하게 일을 마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선거에 빗대어 말하자면, 선거에 이겨도 교만하지 않고 표를 구걸할 때의 마음을 끝내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며, 설혹 지더라도 표를 주지 않은 이들에게 눈을 부라리지 않고 공손하게 일을 마쳐야 한다는 뜻이겠습니다. 표를 던지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던진 표가 사표가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꾸고 힘 있는 곳으로, 속보(速步), 발걸음을 옮겨 앞 다투어 줄을 서는 추태는 부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에서든 후갑삼일은 미덕인 것 같습니다. 아비의 일을 덕으로 승계하고 유()로 가운데 처하며 위력에 맡기지 않는 일, 그것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선거로, 권력을 만들어내는 자들의 도리라 하겠습니다. 산풍고(山風蠱! 후갑삼일(後甲三日)!!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