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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현대문학의 어제와 오늘

부산현대문학의 어제와 오늘 <부문 2-1> 한국 시의 서정주의와 성종화 시인의 시

작성일 : 2024.12.17 02:05

<부문 2-1>

 

한국 시의 서정주의와 성종화 시인의 시

 

 

 

(1)

 

한국문학에 대한 전통 논의는 1960년대 한국문단과 학계의 최대 관심사였다. 필자가 대학 4학년이던 1966115일에서 6일까지 이틀 동안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창립되어 휴전과 더불어 서울이 중심이 된 국내 최대의 학술단체인 국어국문학회가 주최하는 제9회 전국 국어국문학 학술대회가 경북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필자는 그 자리에 진행요원으로 차출되었다. 그 학술대회의 주제는 <국문학의 전통문제 교육문제>로 첫째 날 주제에 따른 두 분야 전통문제와 교육문제를 나누어 토론을 했고 다음날 개인발표를 했다. 필자는 모교 사범대학 특별교실에서 개최된 문학 분과에서 일을 했다. 2002년에 발간된 <국어국문학회 50>이라는 자료집에 의하면 전통문제는 고전문학의 면에서 이미 고인이 된 이태극 , 김기동 두 교수가 발표를 했다. 그리고 현대문학의 면에서 김우종 교수와 역시 고인이 된 조연현 교수가 참여하였다. 마지막으로 비교문학의 면에서 김춘수, 정한모, 서수생 교수가 참여하였다. 이 세 분들도 모두 고인이 되었고, 김춘수, 서수생 두 분은 그 당시 필자의 은사였다. 아마 이 학술대회가 그 당시의 전통 논의를 총결산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자리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에 대한 자료는 자료집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필자 역시 별다른 기억이 없지만 필자의 은사이자 시인으로 길을 열어주신 김춘수 교수의 주장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까닭은 필자의 은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주장에 비하여 참신하고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기에 많은 호응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국문학의 전통은 다른 민족의 작품들에 비하여 소재를 서정적으로 처리하는 점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말하자면 서정주의를 한국문학의 전통으로 작법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관점이었다. 그 당시의 대부분의 전통론자들이 주제론적 측면의 주장을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작법적인 면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러한 발표들이 있고 난 뒤에 많은 후학들과 비평가들이 한국현대시를 전통지향성과 모더니티지향성 즉 전통주의와 모더니즘으로 양분하는 경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70년대부터 리얼리즘 일명 민중주의 지향성까지 부각되어 지금은 3대 경향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우선 서정주의가 한국 고대시가로부터 현대시에 어떻게 작법론적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달리 말하면,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소재나 제재를 어떻게 서정적으로 처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구체적인 작품을 통하여 살펴보는 것이다.

 

(2)

 

우선 한국 현대시에 지속 적으로 나타나 있는 전통의 양상을 살피기 전에 한국의 고전시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시가인 향가와 고려가요 시조를 하나씩 인용하여 전통의 양상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이해의 편의상 현대역으로 인용하였다.

 

죽고 사는 길은

여기 있음에 두려워하고

나는 갑니다말도

못다 이르고 가는 것입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 같이

한 가지에 나고는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으, 미타찰에서 만날 내

도 닦아 기다리겠습니다.

-향가 제망매가(월명사 작) 전문

 

 

이 작품은 월명사가 여동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 형식의 향가이다. 다분히 불교적 세계관이 바탕이 되고 있으나, 이 작품을 감동적이게 하는 부분은 동기간의 인연을 한 가지에 난 잎이라고 비유하여 자연을 이입시킨 점이다. 죽음이라는 지극히 관념적인 주제를 떨어지는 낙엽처럼 어디로 가는 것을 모른다는 진술에서는 허망한 슬픔까지 자아낸다. 말하자면 죽음이라는 주제를 서정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려가요의 만전춘별사에서도 나타나 있다.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만들어

님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만들어

님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정 나눈 오늘 밤 더디 새시라 더디 새시라

-고려가요 만전춘별사앞부분

 

이 작품은 남녀상렬지사라고 불리우는 남녀간의 애정을 표현한 고려가요 가운데 가장 격정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것이다. 격렬하고 뜨거운 사랑을 차가운 얼음 위의 댓잎자리로 된 침상 즉 자연을 등장시켜 역설적이고 대조적인 이미지로 표현하여, 사랑이라는 정서를 감각화시킨 작품이다.

시조의 절창인 황진이의 작품 동짓달 기나긴 밤을역시 자연을 통한 사랑의 정서를 형상화 하고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

 

이 작품이 시조 가운데 가장 절창으로 한국인들에게 애송되고 있는 까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관념인 시간 즉 밤을 감각적 이미지로 전환시킨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초장에서 밤의 허리를 밴다든지 그것을 중장에서 춘풍이불 안에 둠으로써 봄이라는 계절과 사랑이라는 이중적 의미로 사용한 것이라든지 마지막 종장에서 구비구비 편다는 것 역시 감각적이고 이중적 의미이다. 이러한 절창에서 소재를 서정적으로 처리하는 전통적 처리 기법을 엿볼 수 있다.

 

(3)

 

다음으로 현대시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200710월 한국시인협회(그 당시 회장 오세영)는 한국시 100년의 기념사업의 하나로 작고 시인 가운데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정지용, 백석, 김수영, 김춘수, 이상, 윤동주, 박목월 등을 한국10대 시인으로 선정하여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표작을 각각 <진달래꽃>, <님의 침묵>, <동천>, <유리창>, <남신의주 유동박시봉방>, <>, <꽃을 위한 서시>, <오감도>, <또 다른 고향>, <나그네> 등으로 선정한 바 있다. 2008년 한국시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조사하여 공개한 한국인 3대 애송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서시>, 김춘수의 < >으로 조사된 바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대부분 자연을 제재로 하여 정서를 형상화한 것이다. 말하자면 소재를 서정적으로 처리한 작품들을 한국인들은 애송하고 있다. 그 가운데 두 편을 인용하여 보기로 한다.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은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진달래꽃전문

 

()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나그네전문

 

앞의 두 작품은 1920년대의 근대시와 1940년대의 현대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서정시로 고등학교 국정 교과서에도 오랫동안 수록되어 전 국민들이 애송하고 있는 시이다. 물론 앞의 조사들에서도 이러한 점이 반영되어 있다.

()진달래꽃의 경우 진달래꽃을 제재로 하고 있으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슬픔이라는 정서를 표출한 작품이다. 리듬의 측면에서 한국민요 가운데 서민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는 3음보를 독창적인 행 구분으로 적절히 소화시킨 작품인 것은 누구에게나 알려진 상식이 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측면은 리듬도 중요하지만 어조 즉 태도의 측면에서 주목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나 평론가들이 리듬에 기울어진 평가 탓으로 마지막 연의 마지막 행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를 역설적 표현이라는 지적은 하여 왔으나 시 전체의 의미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는 역설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한국 여인은 사랑을 잃고도 체념하는 전통적인 여인상이 형상화 된 것으로 파악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시 전체의 어조를 아이러니라고 파악하여 결코 체념하는 순종적 여인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를 잃지 않으려는 내포를 반어적으로 표현하였으며 그러한 다부진 여인상의 극치가 마지막 부분에서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보편화되고 있다. 말하자면 여자가 앙심을 품는다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처럼 체념과는 정반대인 어조로 파악하자는 것이다.

()나그네의 경우 역시 리듬은 전형적인 3음보격이다. 앞의 김소월의 작품에 비하여 이미지가 훨씬 감각적이며 감정이 직접 표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음악성과 회화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경우 전체적 의미구조를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질서가 시간의식이다. 달리 표현하면 시간구조이다. 이 작품에서 시간구조 파악의 가장 중요한 제재가 나그네이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보면 나그네가 남도 삼백리나 되는 먼 길을 가는 선형적 구조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그네의 가는 행위가 외줄기 길이라는 점과 넷째 연의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진 배경으로 인하여 외롭고 황홀한 길 즉 황홀한 고독이 되어 사라지지 않는 순환적 구조가 되고 있다. 그래서 나그네의 방랑이 영원한 현재로 머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미파악까지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러한 시간구조로 인하여 고향지향성 혹은 과거지향성이라는 한계는 가질 수 있다.

일찍이 정지용은 박목월의 시를 가치 있게 보아 문장지 추천사에서 북에는 소월 이 있다면 남에는 목월이 있다고 하였다. 이 두 사람의 몇몇 작품들은 한국 서정시의 빼어난 절창이 되고 있는 점은 틀림이 없다.

 

(4)

 

다음으로 현역 시인 세 사람의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두 사람은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대학교 재학시절인 1960년대 중반 일간지 신춘문예로 데뷔하여 이제는 시력 50년을 넘어 원로 시인이 된 시인들이고, 한 사람은 1950년대 말 진주개천예술제 한글시백일장의 히어로이자 그 당시 학생문단의 유명 시인이었으나 그동안 생활전선에서 시달리다가 만년에 복귀하여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다.

우선 두 시인의 데뷔작을 살펴보기로 한다.


()나이 스물을 넘어 내 오른 산길은

내 키에 몇 자는 넉넉히 더 자란

솔숲에 나 있었다.

 

어느 해 여름이던가.

소고삐 쥔 손의 땀만큼 씹어낸 망개열매 신물이

이 길가 산풀에 취한 내 어린 미소의

보조개에 괴어서,

 

해 기운 오후에 이미 하늘 구름에

가 영 안오는

맘의 한 술잔에 가득 가득히 넘친 때 있었나니,

 

내려다 보아, 매가 도는 허공의 길 머리에

때 알아, 배먹은 새댁의 앞치마 두르듯

연기가 산빛 응달 가장자리에 초가를 덮을 때

또 내려가곤 했던 그 산길은

내 키에 몇 자 는 넉넉히도 더 자란

솔숲에 나 있었다.

-강희근 산에 가서(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전문

 

()해어스름, 구름 뜨는 언덕에

너를 기다려 서겠노라

잎 트는 山家 달샘 퍼내가는 바람아

 

알록달록 실 내어

앞산 바위나 친친 감고

댓가지 풀잎에 피리 부는 바람아

 

꿈꾸는 이파리의 아우성을

하늘에 대어 불어 넣고

보일 듯 말 듯 그림 그리어

강물에 풀어가는 바람아

 

감기어라 바람아, 끝의 한 오리까지도 와

기다리며 굳은 모가지에 휘감겨

네 부는 가락에 핏자죽을 쏟아놓아라.

 

허물리는 살빛을 바람아 감고 돌아

네 빛 진한 빛의

뜨는 달의 눈물을 그려 봐라.

 

너를 기다려 어두움에 서겠노라.

어디선가 맴도는 바람의 울음아

-문효치 바람 앞에서(196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전문

 

강희근(1943-) 시인과 문효치 (1943-) 시인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기생이다. 그리고 미당 서정주(1915-2000)시인의 제자들이다 이 둘은 1965년과 1966년 연이어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을 대학 재학 중에 누렸다. 강희근 시인은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거쳐 명예교수이고 시 창작과 이론을 겸비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 동안 낸 저서만 해도 시집과 시론집이 40여권이나 된다. 그리고 국제펜클럽한국본부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지냈다. 문효치 시인은 1966년 한국일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 2관왕이었으며 중등학교 교사를 거쳐 일찍 명예퇴직하고 시창작과 시창작 지도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과 한국문인협회이사장을 지낸 바 있다. 문 시인은 2012년 시전집을 낸 바 있으나 아직도 왕성하게 시작활동을 하여 자주 시집을 내고 있다. 문 시인 역시 40여권의 저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시인의 데뷔작의 제재는 각각 바람으로 역시 자연을 서정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앞 세대의 시인들에 비하여 훨씬 건강한 정서를 노래하고 있으며, 감각적 이미지의 형상화 능력은 데뷔작부터 참신하다. 시작 60주년이 다 되어가고 80을 앞 둔을 지금도 한국 시의 전통인 서정주의를 고수하며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고 있다.

()산에 가서의 경우 강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경남 산청의 아름다운 숲이 시적 공간이 되고 있다. 시적화자 가 진술하고 있는 체험은 강 시인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를 쓸 즈음인 20대에 어린 시절의 체험의 공간인 산길을 간다. 그러면서 이 시는 마치 액자 소설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 첫째 연과 마지막 넷째 연은 20세 넘은 시간이고 둘째 셋째 연은 유년기 즉, 어느 해 여름의 시간이다. 이러한 이중 구조로 인하여 이 시의 감각적 이미지는 더욱 짙은 정서를 가지게 된다.

()바람 앞에서는 감각적 이미지의 참신성에서 60년 이전 세대의 서정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다. 사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물을 등장시켜 바람의 존재를 인식하게 한다. 그러나 문효치 시인의 경우 바람자체에다 을 잎혀 감각화하면서 바람이 주도하는 상상력을 전개시킨다. 그리고 바람을 시적청자로 설정하여 의인화하면서 바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 역시 참신한 발상이다. 그러함으로 인하여 바람에 옹달샘이 물결치는 것이나 대나무 잎이 바람으로 소리내는 것들을 더욱 신비롭게 상상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두 시인은 젊을 때부터 전개하는 개성적 상상력이 50여년 동안 시를 쓰면서 더욱 심화되고 세련되어 한국 현대시의 서정주의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필자는 성종화(1938-) 시인의 출판기념회 석상에서 정지용의 추천사를 빗대어 평안도 정주에는 소월, 경상도 경주에는 목월이 있다면 경상도 진주에는 수석(성종화 시인의 호)이 있다고 한 바 있다. 그는 1955년 진주고등학교 2학년 시절 개천예술제( 그 당시는 영남예술제) 한글시백일장에서 자화상이라는 작품으로 전국에서 몰려온 쟁쟁한 학생문사들을 물리치고 장원의 영광을 누렸다. 그 이듬해 설창수 시인이 주관하는 연간지 영문(14)에 추천 과정을 거쳐 195711월에 발간한 15집에는 특집 한국현대시 46인선에 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 생활인으로 법조공무원 일에만 충실하다가 2010년에 제1시집 고라니 맑은 눈은(문학사계)을 낸 후, 2012년에 제2시집 간이역 풍경(작가마을)을 내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 3 시집 뒤뜰에 피고 있다(2016,청어)와 시선집 오두막집 이야기(2018,한국문연)를 낸 바 있다. 뒤뜰에 피고 있다는 서울의 일간지들에 광고가 크게 나온 바 있다. 그의 시는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서정주의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시집 가운데 모 문학방송에서 전자책으로 제작된 것은 접속 수가 많아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디지털 방송에서 가장 아날로그 적인 그의 시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는 현실은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시는 박목월의 초기시를 방불케 하나 박목월보다 오래 살아 인생의 원숙한 경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다. 이제 그의 제3시집에 수록된 작품 가운데 두 편을 골라 그의 서정주의의 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두 개의 화폭이 천천히 다가온다

 

한 폭은

잔설이 쌓여 있는 먼 산으로

 

또 한 폭은

햇볕 바른 과수원 길을 따라서

 

봄이 오고 있다

 

새마을호열차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풍경을 완상하며 넘는다

 

추풍령 재를

-추풍령의 봄전문

 

예전에 가장 빠른 열차였던 새마을호가 이제는 KTX 때문에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페이스 북, 카톡 등은 해외에 있는 사람들과도 실시간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모두들 속도감을 지향하나 성 시인은 오히려 앞의 시와 같이 느림을 추구한다. 필자는 제 3 시집 해설에 이러한 특성을 느림의 시학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 시에서 시적화자인 성 시인은 새마을호를 타고 추풍령을 넘으면서 차창 밖의 풍경을 완상한다. 사실 KTX를 타면 속도감 때문에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볼 수 없다. 말하자면 KTX의 승객들은 속도감을 즐기면서 여행의 시간을 단축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새마을호의 승객들은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할 수 있다. 성 시인은 풍경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소 환상적인 두 폭의 풍경 속에서 봄이 오는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이 작품보다 더 느림의 시학을 추구하는 작품으로는 완행열차가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간이역마다 짐 부려도/언제나 만원이다 완행열차는//느리게/느리게라는 부분에서 느림을 만끽하고 있다.

여러 인문학자나 미래학자들은 정보화시대의 속도감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느림을 추구하라고 하고 있다. 성 시인의 시에서처럼 KTX보다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성 시인의 작품들은 박목월의 초기 시가 당대에 끼친 영향 못지않게 오늘날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성 시인의 작품들은 속도감에 피로해진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지나친 이념지향성의 시와 난해하기 짝이 없는 모더니즘의 시보다 더욱 실감나게 다가갈 것이다.

성 시인의 작품들 특히 느림과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작품들은 절제된 시어들로 시인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 않는 어조를 사용하고 있다. , 사물에 대하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의 감동이 절실하지도 않을 수가 있다. 그러나 다음의 작품은 이러한 단점이라면 단점인 점이 청산되고 있다.

 

 

흰 눈은 내려서 쌓이고

 

쉼 없는 붓놀림

선지宣紙 위 화필이

 

산 아래 마을이 저녁연기에 고즈넉하고

다랑이 논들이 눈발에 흐려져 오면

 

산기슭 소나무 군락은

짙은 운무에 묻혀 가구나

 

월아산* 정상의 아침

 

진주사람 산을 내려가며

지난밤 겸재*가 그려두고 갔나보군

 

*월아산月牙山;진주시 금산면에 있는 산(해발471m)으로 산 중간 질마재 사이로 달밤에 보는 산세 가 어금니 같다 하여 월아산이라 이릅니다.

*겸재; 정선의 호 조선 후기(1676-1759)의 문신, 화가, 대표작으로 <인왕제색도>(국보 제261),<금 강 전도>,<석굴암도>,<노산초산도> 등이 있습니다.

 

_진경眞景 산수화전문

 

이 작품은 시인이 친절하게 각주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성 시인의 고향 진주에 있는 월아산에 눈 내리는 풍경을 형상화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산에 눈이 내려 점점 하얗게 변하는 풍경을 형상화 한 것이다. 따라서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어울려진 정지된 배경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것으로 성 시인의 작품으로는 보기 드문 다소 동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눈이 내리는 풍경을 조선 시대의 천재 화가 정선鄭敾의 화필로 비유한 점에서 야단스럽지는 않지만 선비이면서 화가 정선의 작품 제작 과정과 그의 작품에 대한 문화적 소양을 가진 독자들은 비록 사대부 집안 출신이었지만 그 자신이 몸소 경험한 명소들과 여행한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는 그 나름의 개성을 성 시인의 작품과 대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성 시인은 80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고 있는 부산 근교의 산은 물론이고 지리산도 매년 종주하고 있다. 아마 이 시도 월아산의 겨울 산행에서 느낀 바를 시로 창작하였을 것이다.

이 시는 그의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차분한 어조보다 다소 흥분하는 어조를 가지고 있다. 과감히 생략된 서술성과 다른 작품들이 문어체 어조를 가지고 있는 데 비 하여 구어체 어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감정까지 이입되어 있다. 즉 넷째 연의 마지막 부분 묻혀 가구나가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시 속의 등장인물인 진주 사람이 직접 혼잣말 하는 것까지 지난 밤 겸재가 그려두고 갔나보군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풍경은 마치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전통적인 풍경화가 아니라 풍경 속에 사람이나 화가가 직접 등장하는 정선과 동시대의 개성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화자의 어조가 다분히 입체적이라고 볼 수 있다. 월아산 공원에 이 시를 시비로 세운다면 많은 등산객이나 관광객들이 감동적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최근에 발간한 그의 제 3 시집뒤뜰에 피고 있다(2016,청어)와 시선집 오두막집 이야기(2018,한국문연)가 박목월의 서정시를 이어 받았다는 측면에서 한 걸음 나아가 그 나름의 개성을 충분히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바로 앞에 인용한 진경眞景 산수화처럼 동적인 이미지의 서정시를 많이 창작하여 또 다른 시집이 발간되기를 소망하여 본다.

 

(5)

 

한국시의 전통은 서정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소재를 서정적으로 처리한다는 말이 되겠다. 이러한 서정주의는 향가와 고려가요, 시조를 거쳐 현대시의 절창인 김소월의 여러 작품과 박목월의 초기작으로 어어져 오고 있다. 그리고 2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로 1965년과 1966년 데뷔한 강희근 시인과 문효치 시인의 서정주의는 선배 시인들보다 훨씬 세련되고 시적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시대마다 한국인의 심금을 울린 서정주의를 기조로 한 작품은 진주고등학교 시절부터 개천예술제 한글시 백일장에서 이름을 떨친 성종화 시인의 최근의 작품에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그의 전자시집이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점에서 21세기 인공지능시대에도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양왕용/ 시인/ 부산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