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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12.17 02:00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권력 신선놀음에 나라 망한다, 정치인이 국가 발전의 최대 장애물
/윤일현
어떤 분야에서든 지도자는 다른 구성원보다 탁월한 장점이 있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개인은 운명적으로 서로 다른 신분으로 태어나지만, 신이 준 선물인 개성과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탁월함’, 즉 ‘아레테(arete)’를 성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레테는 그리스 문화의 핵심 개념이다. 아레테는 인간이 생각하고 소망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 최상의 행위, 최선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들은 육체적 아레테에 이르기 위해 몸을 가꾸고 기량을 향상해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하려고 노력했고, 정신적인 최선을 지향하기 위해 시, 산문, 연극, 음악, 그림, 연설 등을 통해 자신을 갈고닦았다. 플라톤은 아레테를 ‘인간 노력의 탁월함’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아테네인들은 아레테를 가장 잘 발휘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하려고 했다.
호머의 ‘일리아스’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아레테인 용맹을 노래한 서사시다. 일리아스는 용기와 체력의 우수성 등을 묘사하지만,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 욕망, 도덕적 딜레마 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으며, 전쟁 묘사를 통해 인간성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호머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의 또 다른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레테를 보여준다. 아킬레우스는 혁혁한 전과를 세우고 죽었지만, 오디세우스는 살아서 고향 이타카로 무사히 돌아갔다. 그는 귀향길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요정 사이렌의 유혹을 받는다. 그는 유혹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선원들에게 자기 몸을 꽁꽁 묶으라고 명령했다. 배가 사이렌의 섬 근처를 지날 때, 그가 아무리 풀어달라고 몸부림쳐도 밀랍으로 귀를 막은 선원들은 끝까지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배는 무사히 사이렌의 섬을 지나치게 되었고, 그들은 위험에서 벗어났다. 오디세우스는 지혜로운 판단력, 유혹극복의 의지, 자기 통제력뿐만 아니라 사람을 설득하는 탁월한 말솜씨란 아레테도 가지고 있었다.
‘아이아스’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이다. 이 작품에서 그리스인들은 아킬레우스 사후 ‘누가 가장 위대한가?’를 결정하여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아킬레우스에게 만들어 준 갑옷과 투구를 주어 최고 군인의 명예를 부여하려고 한다. 아킬레우스와 막상막하의 용맹성을 발휘했던 아이아스는 당연히 자기가 그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리스 연합군 중 가장 몸집이 크고 힘이 센 영웅이었다. 그는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전리품 배분 문제로 갈등을 일으켜 아킬레우스가 파업할 때,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적의 공격을 막아낸 공적이 있다. 그는 위기에 처한 오디세우스를 구출했고, 심지어 전사한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적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시신을 업고 왔다. 그런 혁혁한 공적을 알고 있으면서도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선정 결과에 책임지기 싫어 최고 전사 선정 작업을 배심원에게 맡겨버렸다.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군 앞에서 각자가 얼마나 훌륭한 전사였고, 무훈을 달성했는지 연설했다. 배심원들은 말 잘하는 오디세우스의 손을 들어줬다. 세상일이란 늘 공평하게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가 말의 예술임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허구한 날 정쟁으로 한 해를 다 보내고 급기야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라는 기상천외한 코미디 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치가에게 요구되는 아레테가 없어 분노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돌발 사건이다. 각종 청문회, 국정 감사 등을 보면 이 땅의 정치인 중엔 분노 조절 장애인이 너무 많다. 분노를 자제력 상실과 연관시키는 것은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로마 제국이 팽창하면서 지역 간, 지배 계층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분노 조절은 통치 계급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 엘리트에게 자제력과 분노 조절은 자기 관리와 처신의 핵심 요소였다. 분노 조절 실패는 정치적 고립을 의미했다. 일찍이 로마에서는 분노를 영혼의 질병으로 규정하고 가장 심각한 병으로 간주했다. 후기 로마 제국의 수사학에는 분노 조절이라는 감정 수업이 포함됐다. 우리도 국민 정신건강과 자라는 세대들을 위해 정치나 공직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업무 수행에 필요한 수사학, 인문적 소양, 언행의 품위와 품격, 분노 조절 방법 등을 가르치고 평가받게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국정 혼란의 책임을 통감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야당도 이 사태를 정권 조기 탈환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무조건 밀어붙인다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가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에는 대통령과 그 주변, 집권당 전체의 무능뿐만 아니라, 의회 독재라는 비난을 들어도 크게 할 말이 없는 거대 야당의 국정 방해도 있다. 대통령의 퇴진 방법을 두고 여야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지금, 이 판국에 비겁하게 양비론을 들고나오지 말고 즉각적인 탄핵을 주장하라 하겠지만, 한쪽이 저항하면 국익과 정치 발전을 위해 공존과 상생의 모양새를 갖춘 퇴로를 만들어 물러나게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지금 전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며, 국제 정세와 국가 안보, 경제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 시점에서 국민은 여야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내세울 수 있는 아레테는 무엇인가? 당신들에겐 아킬레우스의 용맹도, 오디세우스의 판단력, 절제력, 인내심, 자기 통제력, 상대를 설득하는 말솜씨가 없다. 불법과 탈법, 허언과 거짓, 오만과 독선, 방탄과 불통, 모독과 편 가르기를 정치인의 아레테로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들은 권력 신선놀음에 나라 망하는 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정치인이 국가 발전의 최대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아이아스’, ‘목민심서’ 같은 작품을 강제로 읽히고 독후감을 받아낸 후, 엄격한 기준으로 숙제 검사를 하고 함량 미달은 강제로 퇴출시키고 싶다. 당신들은 이게 그 누구보다 나라를 걱정하지만, 사태를 관망하며 침묵하고 있는 절대다수 국민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