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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12.09 09:09 수정일 : 2024.12.09 09:11
<부문1-10>>
이계선 시인의 짧은 생애와 시 세계
- 제자를 진심으로 사랑한 교사, 그리고 시인
이계선(1963-2015)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아직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지금(2015년 7월) 그를 대학에서 가르친 내가 그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시인과 나의 인연은 1982년 3월 그가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은 학과 모임에서 서부경남 특유의 사투리로 자기소개를 하여 좌중을 온통 웃음바다를 만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는 신군부에 의하여 실시된 대학졸업정원제도가 유지되고 있던 때이라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은 학사경고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인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바로 중학교 교사로 임용되었다. 그리고 나의 후배 안병호(진주고 47회, 부산공대 출신, 효원 엔지리어링 대표)사장과 결혼하여 두 아들의 어머니로 성실히 가정을 꾸려가는 한 편 대학원 공부도 두 군데나 하였다. 대학 재학시절에는 공부 때문에 문학에 뜻을 두지 못했으나 교원들의 문학동아리에서 10여년간 시창작 수업을 하여 시단에 데뷔한 성실하고 노력하는 시인이었다. 그러던 2008년 연구실로 그의 제1시집 『뒤란이 있는 집』이 배달되었다. 양장본으로 제목 자체부터 토속성을 가진 시집이었다. ‘뒤란’은 사전에는 ‘집 뒤의 울안’이라는 뜻으로 정의되어 있으나 좀처럼 보기 드문 순수한 우리 말이다. 경상도에는 오히려 옛말인 ‘뒤안’으로 알려진 어휘이다. 이 시집에는 그가 만나거나 부대끼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표제시인 「뒤란이 있는 집」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가 그의 고향인 경남 사천시 사남면 와룡산 뒷편의 산기슭 마을 가천리의 고향집을 동경하는 듯한 전원지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2011년 내가 남강문학회 회장을 맡은 2년차에 모두다 연로하고 일할 사람이 부족한 우리 회에 이 시인을 재무 담당 사무차장으로 거의 강권하다시피 영입하였다. 그 때부터 자주 보는 사이가 되었다. 서면에서 임원회를 마치면 그의 차로 해운대 마린 시티의 집에까지 가기도 했다. 그의 집은 연산9동이었으니 지나고 보니 내로서는 염치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치의 병으로 먼저 간 대학동기의 이야기며 큰 아들이 영국유학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남편 친구이자 나의 고등학교 후배들의 가족들과 여행한 이야기 등… .
2012년 초가을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들었다. 그리고 나서 곧 흉선암이 발견되어 서울로 항암치료하기 위해 자주 오르 내리기 때문에 사무차장을 그만두어야겠다고 하여 사무 인수인계로 서창국 사무국장과 분주했다. 한편 제2시집 『바다가 보이는 계단』이 발간되었다는 소식과 출판사 배재경 사장으로부터 시집 제작 중에 갑자기 발병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도 듣게 되었다. 학교를 그만 둘 때에는 그렇게 심각한 것인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내랑 나눈 대화에서도 아들 영국 보내는 이야기와 앞으로의 여유로운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갑자가 병마가 덥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후에 주로 문자로 그 동안의 경과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항암치료를 마치고 요양하기 위하여 연산동 아파트를 떠나 양산시 원동면 배내골로 이사를 했다는 소식도 알아 남강문학회 주소록을 위하여 통화도 하였다. 흉선암의 예후는 좋지 않다는 것은 알았으나 아직 젊기 때문에 이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금년(2015)1월 22일 남편 안병호 사장으로부터 사망 소식을 들었다. 부랴부랴 서창국 사무국장과 정재필 선배님과 같이 양산부산대병원 영안실로 갔다. 상주는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큰 아들과 갓 제대한 대학생 둘째 아들이었다. 영정 사진 속의 이 시인은 인정스렵게 웃고 있었지만 우리는 너무 일찍 이 세상을 떠난 이 시인의 죽음 앞에서 남편과 두 아들에게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곳에서 뜻밖에 문상온 고등학교 동기 백종흠 (경남교원연수원장과 마산교육장 역임)시조시인을 만나 그가 이 시인의 고성 상리중학교 은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중학교 시절의 이 시인의 똑똑하고 리더십 있었던 모습도 듣게 되었다. 문상하고 돌아오는 길은 겨울 바람도 불어 신산하였다. 정 선배님의 경우 중학교 다니는 외손녀의 은사라는 개인적 인연 때문에 댁으로 돌아가 이 시인을 추모하는 시 한 편을 지어 남강문학 카페에다 올렸다.
이 시인의 작품세계는 앞에서 제1 시집 『뒤란이 있는 집』에 대하여 언급할 때에도 잠시 지적했지만 제 2시집 『바다가 보이는 계단』 역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김광수 작가가 해설에서도 언급한 바이지만 남편, 어머니 그리고 가족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의 시편이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사로서 제자들, 그것도 모범생이나 공부잘하는 제자들보다 여러 가지로 상처받은 제자들을 사랑하는 시편들이 많다. 대표작으로 수록하는 「영아가 보고 싶다」는 조손가정에서 비록 할머니가 아이들의 먹거리인 쪽자 장사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했던 제자 ‘영아’에 대한 이야기가 시적 제재가 되어 있다. 그러한 영아가 결혼까지 하고 돌바기 아이를 업고 이 시인의 직장인 학교로 찾아올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는 점은 그의 교사 생활이 얼마나 성실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겨울 방학인데도 이 시인의 장례식장을 구름떼처럼 찾아온 여학생들이 생각난다. 시 「영아가 보고 싶다」는 단순한 후일담이 아니라 어머니가 컴퓨터학원 강사인 돌바기가 자라 학생이 된 시적 현재까지 형상화하여 시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정말 이렇게 현실을 긍정적으로 본 성실한 교사 시인을 53세라는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보낸 우리로서는 너무나 전도유망한 시인이자 유능한 남강문학회 젊은 일꾼을 잃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애석하다.
<양왕용/ 시인, 부산대명예교수>